8장. 나는 왜, 그룹마다 다른 사람이 될까?

'리더'와 '팔로워' 사이, 그 아찔한 줄타기

by msg


여러분은 친구들 무리 속에서, 주로 어떤 '역할'을 맡으시나요? 어떤 모임에서는 분위기를 주도하는 '리더'였다가, 또 다른 모임에서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는 '관찰자'가 되는, 그런 경험 없으신가요?


저는 이 '역할의 변화' 때문에 꽤나 오랜 시간 혼란을 겪었습니다. 정말 오랜 친구들, 저의 한없이 찌질하고 모자랐던 시절까지 모두 기억하는 그들 사이에서 저는 웬만하면 "다 좋아"를 외치는 '예스맨'이자 팔로워입니다. 그들에게만큼은 기대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20대 중반부터 시작된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저는 '리더'의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약속을 잡고, 모임의 방향을 정하고, 때로는 그 모임의 목적에 맞춰 실제 업무까지 이끌어가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는, 제가 리드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리더'와 '팔로워' 사이, 그 아찔한 줄타기


이 혼란은 제 안의 '리더'와 '팔로워'가 충돌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가 정말 이 그룹을 이끌 자격이 있을까?', '저들은 나의 과거를 모르니까 나를 따르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습니다. 팔로워에 익숙했던 사람이 리더가 되어보니, 과거에는 괜찮다고 여겼던 모든 부분이 불안하게만 느껴졌죠.


'진짜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사실 단순한 불안감에서 이런 고민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 불안함이 결국 저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주변에 성질을 부리며 상처를 주는 못난 짓으로 이어지다가, 도저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역할은 '고정된 나'가 아니라, '상황에 맞는 옷'이다


오랜 고민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사회적 역할은 고정불변의 정체성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갈아입는 '옷'과 같다는 것.


우리는 모두 사회적인 동물이고, 내가 속한 작은 모임 하나하나의 성향과 특성에 따라 나의 필요는 달라집니다. 조직의 규모, 구성원들의 역량, 그들과의 조합, 그리고 그 환경에 놓인 나의 상태까지.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나의 역할, 즉 내가 입어야 할 '옷'이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나 똑같은 '나'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나'라는 정체성이 역할에 의해 흔들린다면, 나는 역할에 의해 정의되는 사람인데, 생각해보면 그 어떤 누구도 모든 집단에서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모든 집단에서 같은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은 강박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예를 들어 누구나 가족 구성원으로서 아버지, 어머니일 때도 있으나, 그 이전에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었죠.


그럼 그들이 어머니, 아버지일 때와 딸이자 아들일 때 역할이 같았을까요? 다를 수밖에 없죠. 그렇다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인의 자아가 변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역할에 따른 성장은 동반할 수 있겠지만요. 즉, 우리는 속한 집단에 따른 역할의 변화에 어떻게 내 역량을 충분히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에너지를 관리하는 현명한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이 수많은 '옷'들을 어떻게 입고 관리해야 할까요? 저는 두 가지 전략을 세웠습니다.


첫째, 지금 입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최선을 다해 소화한다. 때로는 나에게 맞지 않는, 불편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할에 대해 불평만 하는 대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경험이 바로, 내가 정말 원하는 '옷(역할)'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만들어주는 가장 확실한 투자이니까요.


우리는 가끔 '맞지 않는 옷'과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역할에 한번은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할이 부여되기까지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고, 일말에라도 그 선택에 나의 책임이 있다면 최대한 그 역할 수행에 노력을 해봐야 안 맞는 옷이었는지 입기 싫은 옷이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영상 외주업을 할 때, 저에게는 편집과 음향에는 전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촬영을 하고 조명을 만지고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편집과 음향에 대한 기본 지식이 더 디테일한 결과물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기 싫은 역할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기르면 언젠가 그것이 성장의 양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겁니다.


둘째, 여러 옷을 갈아입기 위해, '에너지'를 현명하게 분배한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집단에 속해있습니다. '친구로서의 나', '리더로서의 나', '가족으로서의 나' 등 각각의 역할에 100%의 에너지를 쏟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시간, 돈 등은 모두 한정된 자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치를 정확히 측정하고, 특정 집단에서 내가 소비할 수 있는 양을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할 것인지 설정하는 겁니다. 주의해야 하는 건 ‘나는 여기서는 여기까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정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그 에너지만으로 해야 할 일을 다 해낼 방법을 찾는 것이지, 에너지의 총량을 핑계로 할 일을 피해도 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드리고 있는 거죠.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최고의 '대화 전략'이 되는 이유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책에서, 제가 이렇게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간단합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맞춰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누구를 만나도 대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는 어쩔 수 없이 기브앤테이크를 동반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예: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 분위기를 띄우는 유머 담당)을 내가 먼저 충실하게 수행해주면, 상대는 나에게 심리적인 빚을 지게 됩니다. 그렇게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고 나면, 이후에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주도하고, 내가 얻고자 하는 바(진솔한 이야기, 깊은 교감 등)를 훨씬 수월하게 얻어낼 수 있는 거죠.


어쩌면 나의 사회적 역할을 어느 정도 정해두고, "저는 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 좋아해요"라며 일부러 나의 포지션을 먼저 흘리는 것도, "나는 당신에게 이런 역할을 해줄 수 있으니, 당신은 나에게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나요?"라고 묻는 고도의 대화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역할'을 스스로 정의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이러한 고민과 깨달음이 끝난 후, 저는 더 이상 역할의 혼란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번 소속된 곳에서, 내 역할이 닿는 곳까지는 어떻게든 끝을 보는 끈기가 생겼습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며 에너지를 보존하니, 역설적으로 남들보다 훨씬 많은 작업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죠.


결국 저에게 가장 맞는 옷이 뭐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때에 따라 다르다'입니다. 그리고 어떤 옷이든 다양하게 입어보고 소화하면서, 그 경험이 다른 옷을 입었을 때의 나를 어떻게 성장시킬지 살펴보는 것. 그 경험들이 쌓여 언젠가는 제가 꽤 장시간 정착할 수 있는 옷이 생기겠죠. 아직은 저에게 딱 맞아서 머물러 있을 옷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떤 옷을 입어도 그 옷에 맞는 수행능력을 보여줄 자신감이 붙어가고 있는 상태가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을 먹은 후로는, 그 어떤 역할을 맡아도 불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사회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내가 사회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 사이를 충분히 메꿔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이름의 '옷'을 입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역할이 마음에 드시나요?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다양한 '사회적 자아'와 그에 대한 고민을 나눠주세요.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더 유연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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