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가 4) 구 갓생러 현 개백수의 셀프수련
요즘 글이 안 써진다. 그 말인즉슨 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퇴사한 뒤로 대강으로 몇 차례 요가 수업도 나가보았는데, 요가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의문들이 머리에 떠올랐을 뿐 요가에 대해서는 오히려 생각이 없어졌다. 나는 이 상황이 이른바 '요태기', 즉 요가에 대한 권태기가 온 것일까 막연히 생각했다.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과 매일 9시간의 노동,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는 일도 요원한 주 5일의 일정을 소화할 때는 없는 시간을 빼서 60분씩 주 2일 가는 요가 수련이 굉장히 소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재택하는 집사람과 털짐승 가족들과 매일 같이 종일 붙어있는 생활을 두 달 정도 지속하니까, 똑같이 주 2일 60분씩 가는 요가까지 어딘가 루즈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직을 조금 긴 호흡으로 준비하기로 결심한 탓에 정확히 말하면 '구직자'보다는 '수험생'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우리집 인간 둘은 이런 내 상태를 '개백수'라고 부른다). 여하튼 덕분에 30대 초반에 늦은 학부 10학기를 학점은행제로 이수하는 중이다. 24학점, 총 8과목을 소화하느라 개백수 생활도 결코 널널하지는 않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하고 물 끓여 차 한 잔 내려서 오전에는 인터넷강의를 먼저 수강한다. 아침 7시부터 공부를 시작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9시 전에는 시작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강의만 들으면 땡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돌았는데, 이제는 이미 몇 주차가 흘러서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복습하느라 시간이 꽤 걸린다. 그 외에는 내가 맡은 요리와 장보기와 같은 가사일을 하고, 고양이들과 강아지를 케어한다. 가끔은 밤에 에어컨이 안 나오는 차를 끌고 운전 연수도 나간다.
사실 이 정도면 백수 치고 그리 해이(?)하지만은 않은 하루 일과인데, 이게 맞을까 하며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은 본격적인 수험생활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 집중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요가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이런저런 아사나는 완성까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더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그래서 요가 수업을 가는 날 외에, 홀로 셀프수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결심을 먼저 하니 집에서 매트를 깔 수는 있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이나 기타 따라 할 가이드 없이 쌩으로 혼자 하는 수련은 처음이었다. 명상으로 시작할 때는 일단 비교적 잘 되는 후굴 위주로 해볼까 생각했는데, 웬걸, 몸은 처음부터 오랫동안 어려웠던 쿠룬차사나부터 시작했다.
2년 전에는 다리가 펴지지도 않고 달달 떨며 등으로 간신히 끌어당기기만 했던 동작. 이제는 힘이 어느 정도 생겨서 나름 그 맛을 느끼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홀로 하는 수련 중에는 어딘가 내 아사나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 시작한 후굴 동작들도 그러했다. 몸통이 유연한 편이라 요가원에서는 조금만 몸이 풀리면 우르드바 무카까지 쉽게 이어지고 시원하게 아사나에서 머물렀는데, 집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목을 뒤로 넘길 수가 없었다. 어차피 고개를 뒤로 넘기면 다른 곳에 무리가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 안되는 아사나들을 조금씩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주 열심히는 아니고, 딱 그날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날 수련을 마치고 난 느낌은 딱 이랬다. '시도한 건 좋았는데, 혼자 하니까 너무 널널한 거 아냐?'
어린 나에게 엄마가 했던 말이 있다. 아직까지 생생한 걸 보면 이것이 나라는 인간의 깊은 중심에 자리잡아버린 게 틀림 없다. 그 말은 '한 번 할 거면 제대로 해라'다. 어릴 때 엄마를 도와 집 안을 청소하겠다고 청소기를 밀었는데, 대충 보이는 데만 슬슬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엄마가 한 말이다. 다음 사람이 또 손 대지 않게 한 번 할 때 제대로 하라고. 이것은 내게 '하나 마나하게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다'는 반작용을 낳았다. 퇴근하고 60분 요가를 한 뒤에는 땀범벅이 되어서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던 노동자에게는 이런 오랜 원칙이 있었다. 번아웃을 피해 도망치듯 퇴사한 지난 4월 이후, 이 원칙은 정말 오랜만에 일시정지되었다.
하지만 조바심은 남았던 거다. 이렇게 천천히, '하나 마나 한 것처럼' 해도 되는지. 물론 나는 지금 딱 그만큼밖에 해낼 수 없는 상태이지만, 그래도 되는 건지. 나를 채찍질해서 더 빡세게 달려야 하는 게 아닌지. 뱅뱅 도는 이런 의문을 그만두기까지, 두 개의 콘텐츠와 한 권의 책이 도움이 되었다. 먼저는 정신과의사 정우열 씨가 '갓생'에 관하여 말한 유튜브 동영상과 한 생활체육인이 쓴 칼럼이다. 정우열 씨는 갓생이 결코 더 멋지고 바람직한 생활이 아니라고, 그저 누군가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리듬을 고수하는 것일뿐 거기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후자의 칼럼에서는 엄청난 무게를 들거나 한번 하고 나면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는 운동보다 '힘들지 않고 시간을 충분히 들이는' 에너지 활용 6단계 중 2번째에 해당하는 낮은 단계의 트레이닝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운동 퍼포먼스를 향상시킨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들었던,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같은 이야기다.
나머지 한 권의 책은 다른 주제와도 연결되는 거라 여기서는 잠시 넘기고, 위의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내가 뒤늦게 찾은 여유에 대해 계속해서 품던 의심을 정리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진짜로 내가 노력을 안 해서 하는 합리적 의심이 아니라, 무언가를 계속하는데 여전히 잘 못하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데에서 나온 조바심이었다. 생에 처음 해보는 분야의 공부는 당연히 단번에 이해되지 않았고, 내 몸만 살피면 되었던 요가인에서 처음으로 내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따라오는 분들을 살피는 지도자가 되어보니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느낌에 부담도 느꼈다. 도로 위 온갖 자동차와 보행자를 살피면서 내 고물차를 긁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야 하는 운전 연수는 그중 가장 어려웠던 일로, 핸들을 잔뜩 돌리고 브레이크를 푸는 게 무서워 눈물도 찔끔 흘렸다.
목적지 없이 일단 열심히 달렸던 지난 10+@년. 더 이상 못 달리겠다고 쓰러져 드러누울 지경에도 빨리 일어나야 한다며 나를 어떻게든 일으켜세웠던, 도파민 떨어질 일 없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달리기에도 요령이 생겨서 노동과 요가, 요리와 여러 즐거움을 지칠 것 같은 타이밍마다 주입하며 그 뺑뺑이를 돌렸다. 갓생이 별건가? 내달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하루 일과에 꾹꾹 채우면 '갓생'이 되는 것이다. 휴식과 레저라고 생각했던 일들조차 그 사이클을 돌리기 위한 연료였다. 그놈의 갓생이라는 트램폴린에서 잠시 내린 지금, 땅 위에서도 구름 위인 듯 어색한 '개백수생'을 천천히 걸어보려고 한다. 내내 신나게 뛰고 달리다가 갑자기 슬렁슬렁 걸어보자니,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다. 달리기만 해서 잘 걷지를 못하게 되었다니, 어딘가 이상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주로 못하는 일들로만 하루를 채우며, 그 사이사이에 가족들과 매일 확실한 사랑을 나누는 개백수의 생. 어쩌면 이 생활이야말로 그동안 내게 없었던 삶의 목적지인지도 모르겠다.
놀랄 만큼 열심을 다하지 않는 셀프수련 역시, 계속해볼 생각이다.
사진은 글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글도 슬렁슬렁 퇴고도 안하고 올려봅니다 개백수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