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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가까운 산(20)

by 김헌삼 Mar 19. 2025

 선경 용아릉 장행(長行)     



  3년 전 단풍철을 맞아 설악산의 공룡능선(恐龍稜線)을 15시간에 걸쳐 계속 산행으로 힘겹게 완주한 일이 있다. 산행의 막바지에는 기진하고 다리 힘이 완전히 풀리다시피 하여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엄청난 일을 해냈는지 꿈만 같다.

  그런데 용아릉(龍牙稜)은 이보다도 더 힘이 들고 국내 산행코스로서 가장 어렵고 험하다 해서,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고 있었다. 큰 산 오르기의 어려움을 스스로 잘 아는 처지이고, 물론 험난한 암벽을 타본 경험도 없다. 더욱이 요즈음은 조금만 높은 곳이라도 오르고 내릴 때 무릎관절에 통증이 심심찮게 일곤 하여 장시간 산행으로 큰 무리가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럼 에도 나이 들어갈수록 살아생전에 다른 많은 보통사람도 흔히 하는 일을 나도 한번 부딪쳐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마냥 억제만 하고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한 살이라도 더 들기 전에 실행에 옮겨야 그만큼 덜 힘들 것이란 판단이었다. 마침 10월 초 좋은 때에 연휴가 있어 이때 저지르기로 마음을 굳혔다. 물론 리더를 동반할 것이며 리더의 주문과 지시사항을 침착하고 성실하게 추종한다면 못할 것은 없잖으냐 하는 오기도 내심 발동하였다. 최악의 경우 포기하더라도 현장에 가보고 거기서 결정하겠다는 생각이었다.

  10월 2일 밤길을 달려 용대리 백담사 입구에 내린 시각은 이튿날 새벽 3시 40분경이었다. 당초 계획은 체력비축과 시간 절약을 위하여 여기서부터 백담산장까지는 산장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언제 그렇게들 몰려와 있었는지 이미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머릿수를 보니 차례 오기를 기다리려면 언제가 될지 몰라 걷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그래서 1시간 반가량의 시간과 이에 상응하는 체력소모가 추가되었다.

  수렴동대피소. 이곳은 예사의 대피소가 아니라 용아릉과 구담계곡, 가야동계곡으로 행로가 갈라지는, 그래서 갈라지기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중요한 길목이다. 정말 여기서는 과감하게 용아릉을 타기로 마음을 굳힐 것인지 아니면 우회로로 빠져 안전한 계곡 길을 취할 것인지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피소 바로 옆 ‘등산로 아님’ 팻말이 박혀있는 곳이 바로 용아릉으로 향하는 길이라 했다. 등산로가 아니라면 선계(仙界)로라도 들어서는 문이란 말인가. 그렇잖으면 이 말을 곧이들을 정도의 초보자라면 이곳으로 진입할 생각을 버리란 뜻인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용아릉 길로 들어서니 처음부터 급격하게 치솟아 오른다. 그렇게 몇 차례나 많이 오르고 조금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기암절벽의 상단부에 붕 떠 있듯이 까마득히 높은 곳에 도달해 있었다.

  개구멍바위 통과가 피치 못하게 닥친 최초의 시련이었다. 수십 길인지 아니면 수백 길이 되는지 그 밑을 도저히 제정신으로 내려다볼 수 없는 절벽에 납작 엎드려 낮은 포복으로 만이 겨우 한 몸을 통과할 수 있게 파인 사이로 2,3 미터 거리를 현기증 나는 낭떠러지를 끼고 기어서 빠져나가야 하는 외통수. 개구멍바위는 바로 이런 곳이었다. 물론 각 산악회 리더들이 합동으로 자일을 설치해놓고 양쪽에서 신경 쓰고, 그 줄을 한 가닥의 생명 끈처럼 부여잡고 지시에 따라 아주 짧은 시간 움직여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길게 느껴지고 오금이 저리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곳을 무사히 지나고 안도의 한숨을 채 내쉬기도 전에 닥친 80도 이상의 직벽은 보조 자일에 의지해서 오르는 것이었다. 만약 여기서 몸의 중심을 잃고 줄을 놓치며 기우뚱했다가는 그것이 곧 이 세상을 하직할 터이었다.

  우리가 올라서서 가게 된 곳은 드높고 우뚝 솟은 바위 능선의 연속이어서 전망이 그지없이 좋다. 철이 좀 이른 것은 아닐까 염려되었던 심산유곡의 단풍은 지금이 한창이어서 현란한 색채의 조화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왼편 깊숙이 가야동계곡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멀리 높다란 절벽 위에 한적하게 앉은 암자가 오세암(五歲庵)이라 했다.

  이 암자에는 부녀가 기거하고 있었는데 어느 해 겨울, 아버지가 겨우 다섯 살 된 딸을 혼자 두고 식량을 구해온다고 나갔더란다. 그러나 아버지가 출타하자마자 몇 날 며칠을 두고 눈이 한없이 펑펑 쏟아져 그만 길이 끊겨 오도 가지도 못하게 되었더란다. 그 딸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굶고 지쳐 쓰러진 자리에 자는 듯이 죽었단다. 그래서 이 암자를 오세암이라 한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오른쪽 설악의 서북릉이 둘러친 까마득한 저 아래 구곡담계곡에는 곳곳에 폭포와 담소(潭沼)가 줄줄이 이어져, 이 몸에 날개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날아 저 맑디맑은 물에 푹 담그고 싶은 충동이 인다. 앞쪽 건너편으로는 상단이 들쭉날쭉한 병풍을 자연스레 펼쳐놓은 듯한 바위 절벽이 이어 뻗어 나가고 있는데 칼날 위를 밟고 가듯 원색의 점들이 절벽 윗부분, 좁은 바윗길 가운데로 개미 떼처럼 이동하고 있다. 저것이 내 또한 따라야 할 도정(道程)이라 생각하니 저절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때마침 까마귀 두어 마리가 지나며 까악까악 내는 쉰 소리는 사신(死神)의 부름처럼 써늘하게 와 닿는다. 여기를 왜 왔던가, 지금이라도 되돌아갈 수는 없는가 하는 상념들이 어지러이 교차한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험난한 코스를 겪으며 순간적으로 갖는 우발적인 잡상(雜想)이고, 계속하여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말고 이 험로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공룡능선코스는 북한산만큼이나 큰 산을 몇 개씩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에 차차 체력이 소진되어간다면 용아릉은 급격한 절벽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 다니며 간을 졸이는 형국이었다. 공룡릉을 선이 굵고 뭉툭한 편이라 본다면 용아릉은 섬세하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위에서 손을 잡아주거나 밑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올라서기 힘든 바위, 그중에는 혹시라도 손을 놓쳤다가는 그것으로 영원의 나락 속에 빠져들 만한 어려운 곳들과 간간이 맞닥뜨렸다.

  이 코스를 아마추어가 보조자일 장비만 갖춘다면 단독으로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극히 위험스러운 무모한 행위일 것이다. 우리 같은 초심자가 용아릉을 오를 때 지켜야 할 세 가지 기본수칙이 있는데, 그 첫째가 노련한 경험자를 동반하는 것이다. 둘째는 20미터 이상 되는 보조자일을 지참할 것이며, 끝으로 안개 끼거나 비 오는 날은 피할 것 등이다. 앞의 두 가지는 산악회 리더를 동반하였으니 자동으로 해결되었으나 기상에 대하여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는데 마침 오늘 날씨가 비올 확률 50퍼센트라는 예보대로 비를 만날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한 어중간한 상태다. 찌푸려 있기만 하던 하늘에서 마침내 고사목 지대를 지날 즈음 하나둘 빗낱이 듣기 시작하였으나 어려운 코스는 대충 마친 뒤여서 그나마 퍽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봉정암(鳳頂庵)을 지척에 두고 20여 미터의 수직 벽 하강. 용아릉코스의 마지막 난관이라 한다. 아래를 보려니 짙은 안개가 밀려와 시야를 가려 얼마나 깊은지 막막하다. 그 속으로 몸을 디밀 때 까마득한 나락으로 빠져드는 듯한 공포감을 떨쳐낼 수 없다. 오로지 한 가닥의 줄에 모든 것을 걸고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는 팔이 경직되어 쥐가 날 지경이다.

  오후 3시경 봉정암에 이르러서야 이제 더 이상의 난코스는 없을 터라 안도의 한숨을 쉰다.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 지 12시간 가까이 흘렀고 험난한 코스에서만 9시간을 보낸 셈이다. 무릎은 미리 압박보호대를 감아두어 통증이 악화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봉정암에서는 하늘이 완전히 터진 듯 굵은 빗방울이 잦아져 우장을 갖춰야 했다.

  다른 팀들과 달리 우리는 봉정암이나 주변 산장에서 숙박하지 않고 당일 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처음에는 무리가 아닌가 걱정했으나 참 잘한 일이었다. 연휴가 낀 황금주말에는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는 게 편안하게 누워 자는 것이 아니라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끼어 앉아 뭇사람들의 온갖 살 냄새를 맡으며 겨우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밤이 어서 지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 경험자의 말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모두 비 맞은 축축한 몸들이니 땀과 범벅이 된 퀴퀴할 상황은 직접 겪지 않아도 상상이 어렵지 않다.

  봉정암에서도 1시간가량 더 걸어 중청산장까지 올라가야 하산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눈이 쾡 하도록 시장기를 느끼고 있음에도 요기다운 요기는 거기 가서 해야 걷는 부담이 덜할 것이다. 그래 계속 강행군하자니 허기 달래기가 몹시 힘들다. 험난한 코스를 지나며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데다 긴장감이 풀어진 탓인지 열 발자국만 걸어도 주저앉아 쉬고 싶고, 또 앉으면 깜빡 졸음이 엄습한다. 이토록 힘겨운 산행은 난생처음 해보는 것이다.

  사탕 한 알을 입에 넣으니 원기가 다소 회복되는 기분이다. 봉정암에서 중청까지는 평탄한 오름이었지만 막바지라서 그런지 가장 힘겹게 느낀 구간이었다. 중청산장 앞에서 지참해온 도시락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나서야 겨우 살 것 같았는데 벌써 5시가 지나니 제대로 쉴 시간도 없다. 이제부터는 내림 길이지만 갈 길은 멀고 더욱이 그 많던 일행들은 모두 어디로 뿔뿔이 흩어졌는지 기이하게도 주변에 보이는 사람이 없어 마음이 바쁘다. 다만 줄곧 같이 다닌 한 동료와 둘만이 서로 의지하여 하산을 서두른다. 비는 어느새 그쳤지만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로 곧 어둠이 깔릴 것이다. 특히 나는 어두워지면 꼭 필요한 랜턴을 빠트리고 온 것이 상당히 신경 쓰인다. 새벽 산행 시에는 여러 사람들 틈에서 앞뒤 불빛을 보고 따를 수 있었고 또한 차차 밝아올 무렵이어서 전혀 문제가 아니었으나 지금 하산 길에는 어쩐 일인지 우리 둘만이 남은 상태여서 걱정이 태산 같다. 다만 동료의 조그마한 손전등이 유일하게 길 밝힐 등대와 같은 것이었으므로 어둠이 짙어 오기 전에 최대한 내려가며 시간을 벌어야 한다.

  식사 후 에너지가 재충전되어 체력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1시간반 여가 흐르자 주위는 완전한 어둠에 휩싸인다. 우리는 손전등의 희미한 불빛 하나에 모든 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 불빛마저 다한다면 오도 가지도 못하거나 길을 잃고 헤맬 판이어서 극도의 공포감 속에서, 연신 큰소리로 소속산악회를 외치며 우리 존재를 알리도록 노력하는 한편 행여나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작은 불빛의 범위는 극히 한정되어 자연 더듬거리게 되고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하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다른 일행과 너무 처져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만이 늦어져 이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 기다리다 가버리지는 않을까? 이런 심란한 생각들 때문에 더 큰 소리로 부르며 내닫기를 계속하자 결국 아스팔트길이 나타나고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우리 리더 중의 한 사람을 만나며, 아직 몇 사람이 안 내려왔다는 말을 듣고서야 이제는 푹 쉴 수 있다는 안도감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장장 16시간에 걸쳐 대미를 본 용아릉 산행. 요소요소 아찔한 순간들을 생각하면 다시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숙원의 일을 해냈다는 것은 대단한 성취감일 뿐 아니라 어렵고 고생스러움을 견뎌냈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뿌듯한 추억으로 오랫동안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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