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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재 Nov 24. 2021

그다음 세계로 가는 길

더 거대한 세이프존을 위하여


코로나19로 영화관 가기가 망설여지는 요즘,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은 망설임 없이 나를 이수역 아트나인으로 향하게 했다. "이 영화는 한 번 보면 퀴어영화지만, 두 번 보면 가족영화, 세 번 보면 여성영화, 네 번 보면 인생영화가 될 것입니다."라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비비안 님의 추천사에 이 영화가 두배는 더 궁금해졌다.



<너에게 가는 > 성소수자의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결국  성소수자 아이들의 부모가 , 특히 어머니로서의 여성들에 대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씨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감명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에게 가는 > 핵심 서사인 성소수자와  영화의 추가적인  다른 훌륭한 시사점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성소수자 부모 연대 활동가 비비안과 그녀의 아들 예준



영화 속에 폭력적인 장면은 하나도 없지만 내러티브 전체가 구조적인 폭력에 쌓여있다. 도저히 개인이 맞설 수 없는 육중한 폭력에 짓눌리고 곪아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서로의 안전장치가 되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위로와 앨라이(ally)는 누군가에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세이프존이 된다. 나도 이 영화를 보는 순간에 세이프존을 느낄 수 있었다. 성소수자와 앨라이의 서사를 이렇게 큰 스크린에서 사람들과 함께 보고 있는 그 순간은 아주 '안전한' 경험이었다. 적어도 이 영화관 안에는 혐오 정서를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감각 때문일 것이다.



'일반' 기득권층은 소수자의 삶을 결정지을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도 본인이 '일반' 아닌 '이반'임을 인식하고 있는 소수자들은 각자만의 습관으로 어딘가 항시 긴장되어 있다. 이들을 향한 세이프존은  많은 사람을 위해야 하고,  넓어져야 한다. 자신의 차별 경험을 바탕으로 아트웍을 진행하는 성소수자 아티스트 '제람' 말이 떠오른다. "각자 작은 불빛을 켜서, 서로를 식별하고, 서로의 안전한 등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에게 가는 길>은 세대를 넘어 어떻게 다양한 연령대의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모두 안아주는 시선으로 말이다. 현재 10대부터 30대는 각자의 의견은 상이하지만, 퀴어의 존재와 문화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부모 세대는 퀴어 문화와 함께 자라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이 차이로부터 갈등이 생기지만, <너에게 가는 길>은 그렇지 않다. 부모는 성소수자 자녀가 가진 타인의 시선이라는 피로감을 이해했고 자녀는 부모의 표면적 반응의 바탕엔 무지가 있음을 이해했다. 각자의 세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역사를 가졌음을 이해하고, 같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로 나아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  성소수자 부모 연대의 활동가이신 비비안 님과 나비님의 성소수자를 향한 인정과 이해를 넘은 경지의 모습은 너무나 따뜻하게 멋지다. 타인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의  조각을 바치는 그녀들의 모습은 인간을 초월한 ()으로 다가온다. 인간이 인간을 뛰어넘는 순간은, 온몸과 마음으로 자신을 넘어 타인을 진심으로 감내하는 용기를  때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가히 세대 갈등의 장이다.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것을 양보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가지려 하고, 신세대는 기성세대를 '틀딱'과 '꼰대'로 이름 짓고 자신의 인생에서 배제시켜낸다. 하지만 <너에게 가는 길>은 전혀 다른 것을 보여준다. 둘은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고,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사회의 부패와 모순을  변화시키고자 자신의 인생을 건다. 또한 둘은 영화 내내 전혀 분리되지 않고 같은 세계를 살아가면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동시대적인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그 연대가 어떤 시너지를 가져오며 어떻게 서로를 위한 세이프존을 만들어내는지가 영화 내내 아름다운 영상들로 나타난다. <너에게 가는 길>은 세대 화해의 영화이다.



관람하면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 한결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창피함을 지울 수 없었다. <너에게 가는 길>을 보기 전에는 퀴어 담론에서 호모 섹슈얼, 에이 로맨틱 등 섹슈얼리티 영역에 더 많은 감수성과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한결님의 이야기가 내 마음으로 왔고 트랜스젠더를 위한 목소리의 확대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숙명여대의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 입학 포기 사건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 크게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반'과 기득권을 향한 반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가 트랜스젠더를 향해 '일반'이고 기득권이며 폭력이라는 것을 상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일면 소수자이고 일면 기득권자이며 모두가 노인이란 약자로 나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감수성은 필수적이다. <너에게 가는 길>처럼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의 소수자 서사를 보게 되면 언제나 새롭게 반성하고 자중해야 할 중요한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즐거움이나 유쾌함 같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나를 더 ‘안전한’ 사람으로, 누군가의 무기력과 피로감의 원인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가까워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발견들에 기꺼이 창피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안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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