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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재 Jan 07. 2023

무례하시군요

좋은 게 좋은 거라구요?

언어는 그 사회의 역사와 함께 자란다. 과거와 현재가 시시각각으로 소통하면서 언어는 지금까지 부를 수 없던 것을 부르기 위해 창조되기도, 혹은 과거에는 불렀던 것을 부르지 않기 위해 폐기되기도 한다. 변화무쌍한 언어의 세계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잊히지 않고 불리는 것을 우리는 관용구 혹은 속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떤 관용구들은 모든 언어의 운명대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재평가받은 뒤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관용구가 하나 있다면 이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좋은 것 = 좋은 것'이라는 이 의미 없이 동어를 반복하는 관용구는 왜 만들어져서 아직도 쓰이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 좋다는 게 어떤 것에 좋다는 건지, 거기서 좋은 건 과연 누구인지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갔던 수만 가지 일들이 썩어 문드러져 나는 고약한 냄새를 맡는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말 뒤에 숨은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 지향적인 권력은 누구의 얼굴인가. 내가 아는 건 그것이 청년 여성이나 발달 장애인, 트랜스 젠더, 청소 노동자 같은 이들의 얼굴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중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닌 사람들은 누구인가? 중립적이다 못해 내실이 없어 텅 비어 보이기 까지 하는 이 연기 같은 말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익숙한 폭력으로 들리는 사람은 정말 누구인가.



몇 달 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 '좋은 게 좋은 거지' 정신 따위 쓰레기통에 박아 버리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무례함들을 물리치며 살고 싶다고. 그게 얼마의 에너지가 드는 일이든 내가 무례한 바로 그 사람에게조차 마땅히 행하는 딱 그 정도의 존중과 예의를 나도 받아내고 싶다고. 나의 존엄, 그리고 비슷한 무례함에 처할 그녀와 그의 존엄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으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그것을 위협하는 일은 결코 '좋은 거'가 되어선 안된다고.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별 볼일 아니여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무례한 사람들에게서 나의 존엄을 지키는 일에 갈수록 취약해진다. 그 순간에 어느 정도가 적당한 대응인지 고민하다 순간이 흘러 버린다. 그래, 그 '적당'을 지키고 싶어서 결국 나의, 여성들의, 젊거나 어린 사람들의, 성 소수자들의, 페미니스트들의, 딸들의 인간다움은 지키지 못한다.클럽에서 성추행을 한 또래 남성에게,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으려는 나를 아무렇지 않게 밀어버리던 연장자들에게, 게이의 존재는 상관없지만 주변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던 선배에게, 결혼할 생각이 있냐는 말에 비혼주의라고 대답하자 "너 뭐 되는 척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라고 말한 50대 남성에게, 자신이 나를 때렸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자랐으니 폭력을 후회하지 않는다던 가족에게 그 말과 행동은 무례한 것이고 내가 당신을 존중하는 만큼 당신도 그래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사과를 받아야 했다. 그게 힘이 드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 모든 일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나오면 안 됐었다.



그들의 무례함은 흘러간다. 일상 속에서 별 볼일 아닌 일인 듯 여기저기서 구정물처럼 흐른다. 그걸 파도처럼 맞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들이 아주 미쳐있거나 이상한 사람이었다면, 지킬이 아니라 하이드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우리를 지키기 쉬웠을까. 무례한 그들도 그때서는 발악하는 우리를 보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자기를 위로하며 몸을 굽히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게 될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조그맣고 귀엽던 한 친구가 최근 독일의 전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 지구 멀리서 그녀가 맞닥뜨리는 무례함들을 물리치며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여성이자 동양인으로 타국에 살면서 그녀는 성 차별과 인종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나라면 그 순간들을 또다시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무기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오만한 관점을 신경 쓰지 않거나 두려워하기보다 그럴 때마다 성실히 무기를 꺼내 들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그들이 왜 차별적이고 무례하며 한마디로 구린 인간인지 설명하면서 그녀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웃기게도 그 후에 당황하는 이는 오히려 그들이다. 그들은 무례함을 물리치는 동양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전사는 사과를 받아낸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동양 여성들이 그 사과를 받는다.



내가 지나쳐온 무례함들을 떠올려 본다. 나 또한 그들의 무례함이 그저 졸졸 흘러갈 수 있게 방관한 사람들 중 하나였음을 알아챈다. 아프고 두렵게 알아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에게 좋은 것인지 생각하며 결코 내가 아니었음을 인식한다. 무례함을 물리치는 일은 자기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일 뿐만은 아니다. 나와 비슷한 또 다른 이름 모를 이들의 존엄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전사가 된 친구처럼 나도 우리를 위해 무례함에 대항하는 무기를 쥐고 싶다. 그리고 무례함과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정중하고도 치명적이게 나의 것을 휘두르고 싶다. 더 이상 우리의 일상에 구정물이 흐르지 못하도록 아름답게 휘두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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