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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재 Dec 31. 2021

고향 떠나 서울

Where should I go back?


"알수록 더 모르겠는 건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갈수록 더 아득해진 건

자 돌아갈 곳은 어디

If I go back where should I go back?"

- 새소년 <집에>



신년을 맞아 어김없이 나의 고향, 포항으로 향하는 ktx 안이다. 오전 12시,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도 햇빛은 꽤나 기운차게 빈틈없이 기차 안을 메우고 있다.



고향이란 낱말을 쓰거나 말할 때면 이따금씩 겸연쩍은 기분이 들어 다시 한번 그 낱말을 곱씹어 본다. 고향은 왜인지 몇십 년은 살아왔던 곳, 그래서 그곳과 나를 떼어낼 수 없는 곳, 어쩔 도리 없이 스미는 그리움이 있는 그런 곳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만 쓸 자격이 있는 말 같다. 포항과 나의 솔직하고 내밀한 관계를 하나하나 뜯어본다. 우리 어떤 사이지?



그런데 고향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이란다. 오잉. 알고 보니 김 빠지게 쉬운 단어였다. 단순히 내가 자란 곳을 고향으로 불러도 된다면 이제 고향에게 무덤덤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고향의 세 번째 정의가 마음에 걸린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서울에 살기 시작한 지 초반쯤, 가끔씩 오랜만에 포항에 찾아가면 그제야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비로소 몸이 편히 뉘어지고, 숨조차 가볍게 쉬어지는 듯한 그런 느낌. 어쩌면 지금보다 사무치는 마음의 고향이 그때 내게는 있었던 것 같다. 며칠이 지나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에는 울적했다. 여태까지 나와 별 문제없던 서울이 마치 삭막한 무법지대, 감정의 황무지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몸이 편히 뉘어지고 숨이 가볍게 쉬어지는, 그런 곳은 다름 아닌 서울이 되었다. 포항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무색하게, 이제는 서울에 도착해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가뿐한 발걸음으로 서울행 ktx에 오른다. 그 가벼운 마음을 처음 느꼈을 때에는 서울에 완전히 적응한 내가 기특했다. 그런데 그건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내 과거가 묻혀있는 나의 고향에 대한 정과 그리움을 그때부터 맘 속에서 잃어버렸다.



종종 출신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는다. '고향은 포항이에요'라고 답할 때마다 부쩍 멀어진 우리 사이를 떠올리며 포항에게 괜스레 무안해진다. 고향을 밝히면 거의 모두가 '경상도 사투리를 하나도 안 쓰시네요?'라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건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 말투부터 마음에까지도 나에게 고향이란 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지금 서울에 있는 집과 나는 둘도 없이 가까워졌지만, 이제 포항에 있는 내가 자라온 집은 더이상 나의 안식처가 아니다.



ktx는 이제 곧 종점, 포항에 다다른다. 기차에 내려서 포항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면 차를 끌고 마중을 나온 엄마가 있을 거다. 오늘 포항에 오기 위해 아침부터 부리나케 준비를 했다. 그렇게 2시간 반을 달려왔는데도 고향은 내게 계속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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