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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재 Nov 11. 2021

안경

내 얼굴이라는 것


콘택트 렌즈 인생 14년째,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안경을 썼다. 하도 눌러쓰는 습관 때문에 코를 만지면 작게 움푹 들어간 촉감이 느껴진다. 몇 년 전부터는 안경을 쓰는 시간과 렌즈를 끼는 시간이 비슷한데도 내 뼈가 원래 이런 것처럼 그 시절은 내 얼굴에 있다.


 

어릴 때부터 안경을 껴야만 내 얼굴이 보일 정도로 시력은 점점 더 떨어졌다. 맨얼굴을 보는 시간은 우리 집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와 전신 거울 앞에 바싹 붙어서 로션을 바르는 때뿐이었다. 내 얼굴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나중에 크면 안경을 벗어야 할 텐데 그때는 어떡하지?' 초등학생 동안의 고민이었다.



중학생 1학년 어느 날에 엄마는 일회용 콘택트 렌즈를 몇 개 사왔다. 며칠을 주저하다가 하루는 처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안경을 벗고 렌즈를 착용했다. 그 하루의 기억은 몇 개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쌍꺼풀 짙은 친구의 놀란 표정, 반 친구들이 내 손목을 잡고 누군가에게로 데려가는 장면.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듣는 얼굴에 대한 칭찬은 신기했고 갑작스러운 관심에 쭈뼛거렸지만 내심 짜릿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얼굴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가져오는 것인지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집 밖에서 절대로 안경을 쓰지 않았다.


 

그동안 전혀 중요하지 않던 내 얼굴이라는 것은 이제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다. 안경을 쓴 내 모습은 이상했고 몇 개월 뒤엔 화장을 하지 않은 내 모습도 이상했다. 중학생 때 생긴 외모 강박은 고등학생 때까지 계속됐다. 그건 매 순간 괴롭다기보다 잔잔히 무의식에 남아 어떤 삐뚤어진 습관과 자의식을 만들었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땐 몹시 예민해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얼굴이 예쁜 사람이고 싶었고 새로운 사람들이 내 얼굴을 아주 예쁘다고 생각하길 바랬다. 하지만 나는 얼굴이 조금 예쁜 편인 평범한 학생일 뿐 시대를 풍미할 절세미인은 결코 아니었기에 당연하게도 그건 항상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나조차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스무살이 되면서 빠른 속도로 외모 강박에서 벗어났다. 자신을 극복한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는 강력한 충격요법이 되어 내 스스로를 극복하게 했던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에게 탈코르셋은 각자마다 특정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은 경외심 그 자체다. 그 여성들이 무서웠다. 그 날카로운 초월의 자각을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지, 그리고 행동할 수 있는지가 무섭게 존경스러웠다.



그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프레임 자체를 깨고 나가는 생각이자 그때까지 없던 사고방식의 창조였다. 나는 그야말로 각성됐고 계단을 두 칸씩, 세 칸씩 뛰어 지하에서 지상으로 빠르게 올라왔다.


 

의식적으로 조금씩 화장을 덜어내다가 처음으로 맨얼굴로 수업을 들은 날 하굣길에 엄마와 했던 전화를 기억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숏컷을 하고 햇빛 좋은 신사동을 혼자 걸어다니던 그 기분은 아직도 내 안에 있다. 내 얼굴이라는 건 내가 가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전에 내 얼굴이라는 건 나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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