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단상 20
얼마 전 어느 방송에 가수 박인희 씨가 나왔다. 진행자의 소개에 따르면 박인희 씨는 1981년 당시 인기 절정이었을 때 가수 생활을 그만두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가, 그로부터 35년 뒤 잠깐 귀국한 후 이번에 8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왔다고 한다. 1970년대 대학 다닐 무렵 박인희 씨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 싱어송라이터 1세대에 속하는 박인희 씨는 맑고 잔잔한 목소리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끝이 없는 길>, <방랑자>, <모닥불> 등 그의 서정적인 노래들을 듣고 따라 불렀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이다. 알다시피 <목마와 숙녀>는 박인환의 시를 박인희 씨가 음악을 배경으로 낭독한 것이고.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이 쓴 시를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인 노래다. 방송에 나온 박인희 씨는 옛날 한창 활약하던 시대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1946년생이라니 우리 나이로 셈하면 올해 79세이다. 도저히 80을 눈앞에 둔 ‘할머니’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 여전히 ‘앳되고 청순한’ 얼굴이었다. 백발의 머리는 연륜을 느끼게 하면서도 우아한 멋을 더했다. 참 곱게 늙으셨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들었다. 나이 들어서도 이렇게 곱고 우아한 분들을 가끔 보게 된다. 세월이 한참 지나 다시 음반을 내고 간간이 대중들과 만나는 가수 정미조 씨도 그렇다. 이렇게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은 대중에게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이라는 특성상 아마 일찍부터 자기 관리가 철저했던 데서 오는 결과이겠지만, 그 못지않게 나이 들어서도 부단히 자기 자신을 연마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그 활력에서 오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노래뿐만 아니라 그림도 그리고 책도 내는 가수 최백호 씨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청바지에 라운드 티, 그 위에 캐주얼 재킷을 걸친, 듬성듬성한 수염에 다듬지 않은 반백의 머리는 결코 치장한 것이 아닌데도(그게 그분의 컨셉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또한 ‘곱게 늙는’ 노년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꼭 대중을 의식해야 하는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된 차림의 노인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옷차림에서 그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청바지를 입고 백팩을 멘 노인을 보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고 멋진 모자를 쓰고 머플러를 하고 다니는 분들도 많다. 특색 있는 안경이나 가방, 신발 같은 것으로 자신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기도 한다. 요즘은 잘 볼 수 없지만 예전에 고향에 가면 여름에 새하얀 모시 한복을 빳빳하게 풀을 먹여서 다림질해 입은 어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런 모습 또한 내게는 곱게 늙은 노인들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돌아가신 지가 60년에 가까운 내 할머니도 그랬다. 담배를 참 맛있게 피우시던 할머니는 말년에 서울의 막내아들 집에서 사셨는데 깔끔한 한복 차림에 돋보기를 끼고 역사소설을 즐겨 읽으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예순아홉이던 해 어느 날 아침 밥상에서 숟가락을 놓자마자 쓰러진 후 바로 돌아가셨으니 운명하실 때까지 어떤 추한 모습도 남기지 않은 할머니였다.
곱게 늙는다는 게 외적인 모습에만 한정되는 건 아닐 것이다. 겉모습을 아무리 가꾸고 치장하더라도 내적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그건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온화함, 고결함 그리고 자신감 같은 것이 없다면 곱게 늙었다고 하기 어렵다. 사고에 융통성이 없고 고루하며 나이를 앞세워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드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소위 ‘꼰대짓’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을 위해 늘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포용하고 이해하는 마음 같은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자기가 살아온 흔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얼굴에서 그 사람의 교양과 인품을 짐작하기도 한다. 그것은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내적인 모습은 하루아침에 갖춰질 성질은 아니기에 젊어서부터 가꾸고 길러야 할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늙어서도 어느 정도의 ‘사치’는 부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적인 여유가 곱게 늙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까지 말할 수야 없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고통받거나 각박한 생활에 내몰리면 넉넉한 마음을 갖기가 어렵다. 당연히 자신감이나 자존감도 낮아지게 된다. 그런 모습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나타나기 마련인데 말하자면 ‘그늘’ 같은 것이다. 물질이 꼭 행복과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만회할 기회가 부족한 노년의 궁핍이 고단한 삶의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물질과 행복의 비례라고 적고 보니 언젠가 일본의 어느 작가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오른다. 인도를 여행하던 그 작가는 변두리 어느 허름한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아침에 우연히 창문 밖을 내다보다 목격한 것을 적은 것이었다. 그 동네는 인도의 최하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거주지였다. 이른바 불가촉천민 계급이다. 판잣집 같은 낡은 집 앞에 젊은 부부가 앉아 있었다. 집 앞 좁은 골목은 오물로 지저분하고 바닥은 진창이었다. 그런데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서 나란히 붙어 앉아 즐거운 듯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젊은 부부가 행색은 남루했지만 얼굴은 어찌나 밝고 행복해 보이던지 오랫동안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고 했다. 저 끔찍한 가난 속에서 살면서도 저들을 저리도 밝고 환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이곳이 인도이기에 가능한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장면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읽은 것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아마 인도 같은 나라에서라면 꼭 경제적 여유가 곱게 늙는 중요한 요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멀거니 바라본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 그나마도 하얗게 센 초췌한 모습. 깡마른 얼굴, 본래부터 숱이 적었던 것이 이제는 거의 다 없어지고 희끗한 ‘무늬’만 남은 눈썹. 아무리 보아도 ‘곱게 늙은’ 얼굴은 아니다. 후하게 점수를 준다고 해도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얼굴은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그랬던지 모른다. 대학 졸업한 지 30년쯤 되었을 무렵 우연히 연락이 된 어느 후배가 ‘형의 늙수그레한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으니 말이다). 여유 있고 온화해 보이지도 않는다. 시간이 한참 늦은 지금에 와서야 곱게 늙는 일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은 진작부터 준비했어야 하는 일이다. 몸도 마음도 미리미리 가꾸고 관리했어야 하는 것이며 경제관념도 젊어서부터 차곡차곡 대비했어야 하는 것이다. 내면적인 교양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것저것 욕심내며 중구난방으로 대들기만 했지 맺은 결실은 별로 없다. 그저 허둥지둥 하루하루를 쫓기듯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주어봐야 낙제점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않겠는가.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 동안에라도 ‘곱게 늙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다짐을 해 보는 이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