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웨딩준비기 - 셀프웨딩촬영(2)

우리 모습 그대로

by 세잎

이전 편에서 준비한 촬영소품들을 가지고 본격적인 웨딩촬영다운 촬영을 시작했다.




사실 셀프웨딩촬영이 말이 셀프웨딩이지, 전문 작가님과 함께 진행되는 스튜디오촬영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우리는 단 며칠로 끝나는 것이 아닌, 1년에 걸쳐 진행된 촬영이었고 촬영과 관련한 그 어떠한 전문 기술이 없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삼각대만 준비하고 삼각대 리모컨은 준비하질 못해서 타이머를 누르고 수십 번 왔다 갔다 뛰어다닌 적도 있다. 예쁘게 묶은 머리와 왁스로 열심히 올린 머리스타일이 망가지는 건 기본이었다. 하두 왔다 갔다 뛰어다녀서 머리는 망가지고 땀은 범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망가진 사진 속 우리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함박웃음을 띄고 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 좋아서 그런지 그렇게 망가진 모습도 마냥 좋았다.


그렇게 시행착오도 있고, 완벽하게 예쁘고 멋진 모습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프웨딩 촬영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단지 결과물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바로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해 준 그때의 남자친구, 현재의 남편인 '나만의 키 작은 키다리아저씨'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 작은 키다리아저씨인 이유는 매거진 2편, 7편에 나와요^^)


셀프웨딩촬영을 제안한 그때부터 촬영을 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그는 단 한차례도 귀찮은 내색, 힘든 내색,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오히려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촬영을 준비하며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




보통 결혼과 관련해서 셀프로 무언가를 한다 하면 여자가 많은 것을 준비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였다. 처음 아이디어를 제시한 건 나였지만, 그는 나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며 오히려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준비해 주었다.


봄 촬영 때의 일이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아직 웨딩촬영이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때였다. 그래도 이전처럼 단지 데이트 중에 우연히 찍는 사진이 아닌, 나름 커플옷을 맞춰 입고 웨딩촬영에 적합할만한 예쁜 장소를 찾아다니는 정도였달까.


그날도 특별히 '선유도 공원'이라는 장소를 미리 선정해서 장소와 잘 어울리는 커플룩도 맞춰 입고 촬영을 계획했었다. 내가 준비한 것은 잘 다려진 커플옷정돈된 헤어, 나름 정성껏 화장한 셀프 메이크업 정도였다. 이번에는 삼각대 리모컨도 제대로 준비했겠다 별 걱정 없이 약속장소에서 그를 만났는데, 몸만 준비해 간 나와는 달리 그의 가방에는 이것저것 다양한 촬영 소품들이 잔뜩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가렌더, 헤어 장식, 하트 조각, 심지어 비눗방울까지. 도라에몽 가방처럼 여러 소품들이 이것저것 끊임없이 나왔다.


그는 단지 여자친구의 말에 공감하며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더 이입하여 이 모든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세심한 준비성에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이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길 잘했군.

봄 촬영의 우리. 그가 준비해 온 가렌더.




여름에는 춘천에서의 셀프 촬영을 진행했다.


당시 차 없이 뚜벅이 커플이었던 우리는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가서 '제이든 가든'과 '김유정역'에서 사진들을 남겼다. 날씨는 더웠지만 푸릇푸릇한 자연의 모습이 우리와 닮은듯하여 묘하게 기운이 나고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 어느덧 촬영에 재미를 붙이던 때라 장소도 척척, 포즈도 척척, 웨딩 촬영 다운 촬영을 척척 해나갔다.



춘천 제이드가든
춘천 김유정역에서 찍은 모습을 일러스트화.




사계절 셀프웨딩촬영의 마지막이 될 하이라이트 가을 촬영.


가을 촬영은 특별히 마지막이니 만큼 우리 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더욱 잘 남기기 위해 친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해 함께 촬영을 가게 되었다. 이전에는 삼각대를 두고 열심히 둘의 모습을 남겼다면 이번만큼은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남겨주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전문가의 기술은 아니더라도 그저 우리 둘이 걸어가는 모습,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 등등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을 담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을 촬영지는 고등학교 졸업앨범 촬영으로도 가보고, 가족들과 어렸을 적부터 자주 놀러 가던 과천 대공원 산책로로 정했다. (과천 서울대공원, 놀이동산, 현대미술관 세 곳이 산책로를 따라 이어져있다.)


도와준 친구 덕분에 이전에 단둘이 삼각대 두고 찍던 사진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고도 역동적인 사진들을 많이 남기게 되었다. 똑같은 포즈지만 전신사진, 상반신 사진, 얼굴 사진 등 다양한 사진들을 남길 수 있었다.

친구가 찍어준 우리 모습.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잘 나온 사진들을 뒤로하고 우리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고 좋아한 사진은 따로 있었다. 그 사진은 바로 정형화된 사진도 아니고, B컷의 느낌으로 친구가 그냥 말없이 찍어준 우리 둘의 모습이었다. 얼굴도 채 나오지 않은 뒷모습의 우리였다.



다음 촬영 스폿으로 이동하던 우리의 모습



산책로가 꽤 길어서 한 곳에서의 촬영을 마치고서는 다음 장소까지 열심히 걸어가야 했는데 걸어가는 우리 둘의 모습을 친구가 틈틈이 뒤에서 찍고 있었다. 그날엔 이 사진이 찍힌 줄도 몰랐다. 집에 가서 친구가 보내준 사진들을 보는데 이 사진에서 '진짜 우리의 모습'이 느껴졌다.


예비신부, 예비신랑. 우리 둘은 이 촬영의 주인공이었지만 우리의 짐을 같이 들어줄 이모님도 스텝분도 없었다. 촬영에 쓸 소품도, 돗자리도 삼각대도 우리가 직접 들고 걸어 다녔다. 누가 봐도 웨딩촬영을 하는 것 같이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신부와 신랑인데 양손에는 짐을 한가득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으니 주변에서도 신기하듯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것이 우리 모습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 손 꼭 붙잡고 나아가던 우리 모습. 무거운 책가방 나눠 들고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일부러 꾸미지 않고, 서로 애써 예뻐 보이려 하지 않던 우리 모습. 어떠한 상황이든 기다려주고 같이 발맞추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던 우리 모습. 그게 우리였다.


우리의 그 모습들이 이 사진 한 장에 그대로 담겨 있는 듯했다.





대공원에서의 촬영이 있기 일주일 전. 나는 이런저런 걱정을 했었다. 촬영하기로 한 날의 일기예보가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나름 촬영 때 입으려고 드레스도 구매하고 정장에 나비넥타이도 준비했는데 야외촬영 중 비라도 내리면 어떡하나. 사진이 예쁘게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남자친구가 이렇게 말했었다.


비가 오면 어때~ 괜찮아!
비 오는 날 비 맞는 모습도 그저 우리 모습의 하나일 뿐인걸.


잊고 있었다. 우리가 셀프촬영을 하려던 이유.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담고자 했던 그 마음을 말이다. 촬영을 하면서 괜스레 욕심이 나고 나도 모르게 그저 예뻐 보이는 사진이 좋은 사진일 거라는 착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던 내게 그는 우리의 초심을, 나의 초심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 것이다.


비 맞는 모습도 우리, 북적북적 사람들 틈에 있는 모습도 우리, 비바람에 머리 흐트러진 모습도 우리. 다 우리일 텐데.


그 장소에 우리 두 사람, 우리 둘이 함께 있다는 것. 중요한 건 그 시간을 함께하고, 함께 남긴다는 것을 그로 인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마지막 촬영에 대해 가지고 있던 걱정, 고민들이 싹 없어졌고 마지막까지 촬영을 즐길 수 있었다. 때마침 날씨도 화창해지고 말이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고민을 놓치지 않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음을 마지막 촬영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찍은 사계절의 우리 모습은 그 어떠한 편집 없이, 보정 없이 그대로 인화해 결혼식 당일 포토월에 전시하게 되었다.


어쩌면 다른 신부들처럼 아름답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을 수 있다. 오히려 못나보였을 수도.


하지만 그 모습들이 우리가 평생을 함께 살아갈 인생의 시작인 결혼식에서 우리가 보여주고자 한 우리의 모습이었다.



1578725047749-5.jpg 결혼식 당일 포토월에 펼쳐 놓은 우리의 셀프 웨딩 사진들







셀프 웨딩 촬영을 마치고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결혼을 하고 함께 살다 보면 더 많은 고민들과 더 많은 힘든 날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도 변함없이 지금처럼 나 한 짐, 너 한 짐 함께 짐을 나눠지고 그저 같이 손 붙잡고 걸어가면 될 거라고. 남들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방향으로 함께 발맞추어 나아가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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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리마인드 웨딩 촬영은 전문 작가님과 함께하자는 말도 함께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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