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잎 Mar 03. 2024

<학급경영> 우리 반 키잡이는 누구

학급임원선출

3월 초에 진행되는 다양한 학급 자치 행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행사를 꼽으라면 바로 "학급임원선출"이다.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담임으로서 학급 회장 부회장을 선출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에 속한다.


학생들 또한 학급임원선출을 담임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학생들 중에는 학급임원선출을 인기투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 자신의 투표권을 가치 없이 만들어버리는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학급 회장단에 어떤 학생들이 선출되느냐에 따라 그 반의 분위기와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학급 측면에서도 학급임원선출은 중요하지만, 학생들 개개인 측면에서도 학급임원선출은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의 나이에 민주적인 선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단순히 투표를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거의 결과가 본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몸소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학급임원선출이다.


그렇기 때문에 담임으로서 나는 학급임원선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생들이 민주적인 선거를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여 본인들의 손으로 직접 학급을 이끌어갈 회장 부회장을 뽑을 수 있도록 선거의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후보로 나오는 그 위치가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를.

투표를 하는 자신들의 손이 얼마나 가치 있는 손인지를.




담임인 나조차 학급임원선출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냥 학교에서 안내하는 일정에 따라 후보를 받아 투표를 진행했을 뿐 그 어떠한 교육도 진행하지 않았었다.


그 결과, 회장에 적합하지 않은 학생이 당선되었고, 그 학생이 회장으로 있었던 한 학기는 모두에게 힘든 학기가 되었다. 담임인 나에게도, 그 학생을 직접 뽑았던 학생들에게도, 우리 학급에 들어오시는 교과선생님들에게도 모두가 힘들었던 한 학기였다. 


그 해 이후로 나는 학급임원선출, 선거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교육을 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선거의 중요성을 교육해야 한다.  


중학생들은 재미를 추구하고, 긴 연설 같은 설명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아무리 선거의 중요성을 말로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 스스로가 선거의 중요성, 리더의 중요성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교사의 직업병이 또 발동했다. ( 9화 교사의 직업병 참고)


길거리를 가다가도 TV를 보다가도 선거와 관련된 내용이 없나 찾게 되었다. 몇 날 며칠을 선거 관련한 생각으로 빠져있던 때에 문득 '무한도전'이 생각났다.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가 많기로 유명한 예능 프로 '무한도전'이 생각난 것이다.


바로 무한도전의 <조정특집>이었다.


출처 : mbc 무한도전 공식홈페이지

  



무한도전 중에서도 몇 번이나 다시 보기를 했었던 최애 특집 중에 하나가 '조정특집'이었다.


여러 감동 포인트들이 있긴 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총 9명이 탄 배에서 키잡이 역할을 했던 '콕스' 정형돈 때문이었다.  


조정 경기를 보면 열심히 노를 젓는 8명의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노를 젓는 사람들과 반대로 앉아 유일하게 결승선을 바라보며 노를 젓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콕스'이다.


콕스는 노를 젓지 않는 대신, 배의 방향을 책임지고, 팀원들의 호흡과 밸런스 등을 맞춰주며 무사히 배가 완주할 수 있도록 하는 일명 리더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조정 선수들 모습이 우리 학급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콕스의 모습에서 학급 회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콕스의 역할에 따라 배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라인을 이탈할 수도, 어떠한 돌발상황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해 무사히 결승선까지 완주할 수도 있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힘들게 노를 젓고 있는 팀원들을 위해 본인 또한 목에서 피가 나도록 크게 구령을 외치며 팀원들의 사기를 높여주기도 한다.


학급 회장의 역할도 콕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결승선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아 콕스만을 바라보고 있는 팀원들처럼 학급 학생들 또한 몇몇 행사들이나 상황들에 있어서는 담임교사나 회장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가 있다.


단합이 필요한 순간에 학급 학생들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또한 콕스와 같은 회장의 역할이다. 콕스의 구령에 따라 팀원들이 움직이듯, 회장의 행동과 태도에 따라 학급이 움직일 수 있다. 담임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EC%88%98%EC%97%AD%EC%97%90-%EB%B3%B4%ED%8A%B8%EB%A5%BC-%




학급임원 투표 당일.


나는 학생들에게 무한도전 조정특집의 마지막 회를 꼭 보여준다. 마지막 대회 당일의 경기를 보면 콕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영상을 보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너희들이 탄 배가 아무렇게나 라인을 이탈하고 결승선에 채 닿기도 전에 포기하기를 바라지 않지? 조정선수들과 우리 학급의 모습이 다르지 않아. 우리는 결승선이 보이지도 않은 채 뒤돌아 앉아야 해. 오직 콕스만을 믿으며 콕스의 리드에 따라 배를 움직여야 하는데 아무나 콕스가 되어도 상관없을까? 너희들이 배의 키를 아무나 잡게 해도 정말 괜찮을까?


우리 배의 키잡이, 우리 반의 키잡이. 누가 되어야 할지, 내가 누구한테 나의 몸과 나의 배와 나의 노력을 맡기어도 될지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 키잡이로 인해, 우리 배의 완주 여부가 결정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진지하게 투표하자. 그리고 후보로 나온 후보자들 또한 너희들의 손에 우리 반의 방향이 결정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책임감 있게 후보로 나왔음을 다시 기억하길 바란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 후 당선자가 결정된다.


당선자가 결정되고 나서는 무한도전 조정특집에서 콕스가 아니었던 다른 자리의 팀원들의 영상을 다시 보면서 학급 임원이 아닌 나머지 학생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 본다.


혹시 회장단만 믿고 아무것도 안 하며 손 놓고 편하게 있을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조정경기 마지막에 결승선을 통과하며 녹초가 된 무한도전 팀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누구 한 명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역량으로 함께 노를 저었다. 결과가 어떻든 말이다. 


결승선에 도착하자마자 콕스였던 정형돈이 눈물을 흘리며 '노를 그만 저으라'는 구령과 함께 모두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때 정형돈과 가장 맞은편에 마주 보고 앉아있던 유재석이 눈물을 흘리며 콕스였던 정형돈에게 한마디 전한다.


"미안해. 형돈아 장하다. 잘했어."




임원이 아닌 나머지 학생들의 역할 또한 이런 게 아닐까. 결과가 어떻든 우리의 역할은 열심히 노를 젓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말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우리 또한 서로에게 이 말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고맙다. 장하다. 잘했어."


1년 동안 한 학급에서 동고동락하며 지내다 보면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있을 수 있고 단합을 해야 하는 대회에서  기대하지 못한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 잘못된 결과가 있을 때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도 하고 누군가의 탓으로 상황을 돌리기도 한다. 그게 회장단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담임교사로서 나는 학생들이 누군가를 욕하고 탓하기 전에 각자가 먼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는가를 돌아보았으면 했다. 그래서 투표 결과 당선된 학생들의 당선 소감을 듣고 나서 나머지 학생들에게도 꼭 당부의 말을 전한다.


회장, 부회장의 역할 매우 중요하지만 나머지 학생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이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같이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함을, 목에서 피 맛이 나도록 구령을 외쳐준 리더를 위해 우리 또한 그들에게 장하다고 잘했다고 고맙다고 말해주어야 함을 말이다.   




올해도 개학 첫 주에 임원선출 공고를 하고 바로 후보자 등록을 받아 선거운동을 시작한다.


올해의 우리 반 키잡이인 콕스는 누가 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콕스와 함께 열심히 노를 저어갈 우리 반 학생들의 모습이 기대된다.

.

.

우리도 한 학기가 지나고, 1년이 지나 노를 그만 저어도 되는 그때에 서로 토닥이며 말해주자.

"수고했어. 우리 진짜 잘했어. 장하다. 고마워!"   

이전 11화 <학급경영> 3월 새학기 준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