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잎 Mar 31. 2024

<학급경영>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학창 시절 나 자신에게 화가 날 때가 종종 있었다.


바로 엉덩이힘과 성적이 비례하지 않았을 때이다. 화장실을 가거나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 계속 앉아서 공부만 하는데도 성적이 안 나올 때가 있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공부만 하느라 쉴 수 없는 엉덩이에 미안할 정도였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본인도 답답하셔서 그런지 나에게 돌머리가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그 이후로 나는 나의 공부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누구는 1시간만 공부하고도 성적이 잘 나오는데 하루종일 공부하고도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효율적인 공부법과 자기주도학습법을 터득했고, 시간이 흘러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때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죽어라 공부해도 점수가 나오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했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듣고도 채점할 때 장맛비가 우수수 내리는 학생들을 보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들의 속 터지는 기분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았다.


혹은 정반대로 아예 공부에 손을 뗀 학생들, 아니 공부를 시도조차 해본 적 없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해보기도 전에 좌절한다고? 해보기도 전에 포기한다고? 해볼 생각조차 안 해본다고?"  


담임으로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학창 시절, 답답한 마음에 쥐어뜯은 내 머리카락 수보다는 학생들의 머리카락 수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공부를 시도조차 해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는 최소한 시도라도 해보게 하고 싶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단 한 번도 성취감을 경험해 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가수 에일리의 "보여줄게"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떠나간 옛 애인에게 고하는 사랑 노래를 우리 반 학생들이 놓쳤던 수많은 교과 점수들에 대입해 보았다. 그동안 붙잡지 못했던 떠나간 옛 점수들을 향해 당당히 나는 이제 달라졌다고, 놓쳤던 그 점수들을 이제 다 잡을 수 있다고 외치게 해 주리라.  


그렇게  우리 반 학생들과 일명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자기주도학습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었다. 바로 "수업시간의 변화"와 "자기주도학습의 변화"이다.


학생들은 가장 기본적으로 수업에서의 모습이 변화해야 그 이후의 변화가 연달아 일어날 수 있다. 단 한 번도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학생들,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 혹은 수업시간에 면학분위기 훼손등으로 교과선생님들로부터 잦은 지적을 받던 학생들에게는 수업시간과 관련된 <변화, 성장, 발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다. 이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의지를 보인 학생은 본인의 도전과제를 적고 매 수업시간 해당 도전과제를 잘 해냈는지 교과선생님께 성취도와 응원한마디를 받아오면 된다. 담임인 나는 미리 우리 반에 들어오시는 모든 교과선생님들께 메시지를 드리며 부탁을 드렸다. 우리 반의 모 학생에게 이런 미션을 주었는데 교과시간에 관심 어린 시선으로 잘 지켜봐 주시고 조금이라도 이전과 나아진 모습들이 보인다면 칭찬과 격려의 한마디를 적어주십사 말이다. 


3월 마지막 주, 우리 반 한 학생과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학생은 매 시간 수업시간에 자는 바람에 교과선생님들이 얼굴 한번 보는 게 소원이라는 학생이었다. 학생과 상담 후 "수업시간에 졸거나 엎드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기"라는 도전과제를 학생이 직접 설정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는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나아지고 있는 변화의 모습을 보고자 함이기에 성취도 C가 많이 나왔다고 해서 혼나거나 꾸중을 주지 않았다. (면학분위기 훼손과 관련해서는 이미 학급차원에서 별도의 지도가 들어간다)


성취도 C였던 교과의 수가 나중에 몇 개로 줄게 되는지, 성취도 A를 받게 될 날이 오게 되는지가 핵심이다.


첫날에는 5개 과목에서 C였는데 둘째 날에 4개 과목, 셋째 날에 3개 과목으로 C의 개수가 줄고 심지어 넷째 날에는 성취도 A에 체크된 교과가 2개나 늘게 되었다.


교과선생님들의 응원한마디도 날이 갈수록 한 줄 한 줄 늘어가기 시작했다. 담임인 내가 학생에게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매시간 꾸중 듣고 지적당하는 게 익숙했을 학생에게 칭찬이 익숙해지게 하고 싶었고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성취의 기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교과선생님들께도 우리 반 금쪽이 같은 이 아이에게도 칭찬할 거리가 차고 넘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마치 내 자식이 칭찬을 받는 것처럼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긍정효과이다.


이제 그 학생은 시키지 않아도 다음날에 프로젝트 미션 종이를 인쇄해 달라고 먼저 교무실에 찾아온다.

 





<변화성장발전 프로젝트>가 공부를 해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첫 성취감을 느끼게 한 수업시간 프로젝트라면, 두 번째 <자기주도학습 프로젝트>는 공부를 해왔지만, 성취감을 느꼈던 경험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학생들을 위한 성취감 회복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학창 시절의 나와 같이, 엉덩이힘과 성적이 비례하지 않던 학생들에게 공부법 진단을 해주고 프로젝트 신청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1대 1로 자기주도학습 솔루션을 주는 방식이다.


어떤 학생들은 1회 상담으로 끝나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일일/주간체크 혹은 정기코칭 등의 방식으로 꾸준하게 자기주도학습을 이어갈 수 있게끔 도와준다. 아무리 내가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해도 강제로 시킬 수는 없기에 신청서를 나눠주고 신청한 학생들에 한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올해도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신청을 해주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생각해 내고 학급 아이들과 진행했었던 2017년도.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던 학생이 있었다. 교무실은 혼나는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서 교무실 출입조차 꺼려하던 학생이었다. 그 학생과 몇 날 며칠 진지한 상담 끝에 처음으로 자기주도학습이라는 것을 가르치게 되고 위에서 언급했던 두 가지 프로젝트를 포함해 다양한 1대 1 미션들을 진행했었다.


학생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난생처음 성취감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교과선생님들께 칭찬이라는 것을 처음 받기 시작했다. 하루는 학생 학부모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선생님, OO이가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해서요." 

"네? 아니요, 학교에서 아무 일 없었고 너무 잘 지내다 갔는데 무슨 일이시죠 어머니?" 

"저는 얘가 한 번도 집에서 교과서를 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글쎄 집에 왔더니 얘가 방에서 교과서를 펴고 공부를 하고 있어서 놀래서 전화드렸어요." 

"아~ 제가 무슨 미션을 줬는데 그거 해내려고 아마 하는 걸 거예요. 기특하네요 어머니~ 많이 칭찬해 주세요" 


한참을 그 학부모님과 학생이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는지를 설명드렸다. 


눈에 보이는 점수가 다가 아니다. 


학생들 스스로가 본인을 포기하지 않고 본인의 능력을 믿을 수 있게 하는 것, 혹여나 끝내 이루지 못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노력에 후회 없이 박수를 쳐주며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 그리고 지켜보는 다른 이들도 그런 노력을 하는 학생을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고 응원해 줄 수 있는 격려를 보내 주는 것. 


사소하지만 이 작은 변화를 바랐을 뿐이다. 


이 작은 변화로 우리 반의 많은 학생들이,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을 믿지 못하던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들을 향해 

이제는 당당하게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라고 외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이전 13화 <학급경영> 우리 반이 나로 인해 좋아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