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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잎 Mar 17. 2024

<학급경영> 우리 반이 나로 인해 좋아진다

1인 1역

김은주 작가님의 <1cm>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세상이 나로 인해 좋아진다 "


하루의 절반 이상을 생활하는 곳이 학교인 학생들에게는 세상이 곧 학교이자 자신들의 생활공간인 학급, 반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 문장이 이렇게 보이기도 했다.


우리 반이 나로 인해 좋아진다.


여기서 "나"는 담임교사인 내가 아니라 학생들 개개인을 의미한다. 나는 우리 반 학생들이 이렇게 생각하길 바랐다. 우리 반이 자신들로 인해 좋아질 것이라고.



지난 화 <우리 반 키잡이는 누구>와 관련하여 이틀 전에 학급임원선출이 무사히 끝이 났다. 다행히 학급임원선출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학생들은 성숙하고도 진지하게 선거와 투표 전 과정에 임했다. 결과 또한 학급 인원 모두 인정할 수 있는 학생들이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진정한 학급 임원이 선출되고 나면 나머지 학생들이 착각하는 것이 생긴다.


"회장, 부회장이 알아서 하겠지."

"궂은일은 다 회장, 부회장이 할 거야."


<1cm> 책에 나온 문장을 변형한 "우리 반이 나로 인해 좋아진다."가 학생 개개인의 "나"가 아니라 학급임원 두 사람으로 끝이 나버린 셈이다.




"우리 반이 회장, 부회장으로 인해 좋아진다."


틀린 말은 아니다. 회장, 부회장은 학급을 더 나은 학급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회장, 부회장만이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그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본인들 또한 우리 학급의 일원이자 더 나은 우리 반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많은 선생님들께서 학생들 모두가 잊고 있는 그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1인 1역"을 부여하시곤 한다. 나 역시 학생들 모두가 우리 반을 더 나은 반으로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 1인 1역 활동을 하기로 했다.


회장, 부회장처럼 모든 학생들에게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주어 자신의 역할에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개학 첫 주에 1인 1역 표를 제공하여 본인이 원하는 역할을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적도록 했다. 본인이 직접 선택한 역할이어야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1인 1역 신청서


1순위가 겹치지 않은 학생들부터 역할을 부여했고, 1순위가 겹치는 경우 해당 학생들끼리 모여 다음 순위로의 변경 및 조율을 하여 25명 모두 최종 역할을 정하였다.


본인이 어느 부장이고 어떤 역할을 우리 반을 위해 해야 하는지 잊지 않기 위해 쪽지로 한번 더 본인의 1인 1역 내용을 상기시켜 주었다.


                                                                            






우리 반은 매달, 그달의 mvp 학생을 뽑는다.


우리 반을 위해 봉사한 경우, 교과시간에 수업을 열심히 한 경우, 선생님이나 친구들을 잘 도와준 경우 등등..


다양한 경우 mvp표에 스티커를 붙여주고 매달 스티커가 가장 많이 붙여져 있는 학생이 그달의 mvp 학생이 된다. mvp학생에게는 담임선생님이 소정의 상품을 주고 생기부에도 해당 내용을 적어준다. 결정적으로 학기말 모범상, 선행상과 같은 행동발달표창 대상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유치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학생들은 칭찬스티커를 받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선행을 하기도 하고 mvp 학생이 되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한다.


1인 1역 역시 마찬가지이다.


1인 1역을 훌륭히 해낸 학생들은 그달의 mvp 학생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담임인 나는 학기 초에 이러한 몇 가지 사항들을 학생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만 해주면 굳이 내가 관여를 하지 않아도 학급은 아주 잘 돌아가게 되어있다.


어른이 모든 걸 관여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담임이 할 역할은 그저,

아이들의 좋은 모습을 한번 더 발견해 주고, 한번 더 웃어주고, 한번 더 칭찬해 주고, 그들의 역할을 한번 더 믿어줄 뿐이다.






1인 1역이 정해지자마자 "레크리에이션 부장"이 학급 친구들과 하고 싶은 게임이 있다며 기획안을 적어서 가지고 왔다. 게임을 생각해 오라고, 기획안을 써오라는 얘기도 한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교과선생님들께서 우리 반 수업태도를 적어주시는 수업태도표를 관리하는 "수업태도표 부장"은 체크를 깜빡하고 가신 교과선생님이 계시기만 하면 바로 쉬는 시간에 부리나케 교과선생님을 따라가 체크를 받아낸다.


다른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


아주 작은 역할만 해내더라도 웬만해서는 스티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매달 그달의 mvp 학생은 한 명으로 정해지지만 스티커를 하나라도 받은 모든 학생들에게 잊지 않고 칭찬과 보상을 함께 해주려고 한다.



세상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로 인해 세상이 나아짐을 보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

자신의 재능, 자신의 성향, 자신의 상황,
이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아내고 그 이유를 염두에 두며
그 이유대로 움직여라.

신은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신을 세상에 내놓을 정도로
한가하지 못하다.

-<1cm> 중에서


그저 다른 누군가가 해주기만을 바라고 자신의 역할은 잊은 채 살아가는 학생들이 아니길 바란다.


1인 1역을 함으로 단순히 역할이 주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감을 기억하며 한 명 한 명이 우리 반에서 중요한 존재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꾸중이 익숙했던 학생들에게 칭찬이 익숙해지도록 하기.'

'받는 행복만 누리던 학생들에게 주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담임으로서 나 또한 이 역할들을 잊지 않고 꾸준히 해가려고 한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 반이 자신들로 인해 좋아질 수 있음을, 자신들이 그만큼 대단한 사람임을, 나중에 학교를 졸업해서도 세상을 좋아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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