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많은 우리 학교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교무실에 와서 재잘재잘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간다. 그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들도 교무실 출입을 못하는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 시험문제 출제기간이다.
중학교 1학년때는 자유학년이라는 이유로 지필평가를 보지 않았고, 중학교 2학년때는 인생 첫 시험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시험을 봐왔던 학생들.
반면,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맞이하는 시험기간은 이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그리고 담임으로서도 학생들 스스로가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몸소 느끼길 바랄 때가 있다. 마냥 천진난만 신난 학생들이 아니라 이제는 좀 진지해질 필요가 있달까.
제대로 된 학교 시험은 고작 1년을 경험한 게 다인데 벌써부터 본인은 공부 쪽이 아니라며 지레짐작 포기해 버리는 학생들이 있다. 혹은 중학교 2학년때의 성적을 보고 방심하고 자만하며 시험을 쉽게 여기는 학생들도 있다.
나는 학생들이 공부에 대해 포기하지도, 자만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학생들에게 중학교 3학년은 "단순히 고입을 앞둔 시기가 아니라, 고등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라 말할 때가 있다. 이 1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고등학교 생활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시험기간이 되면 더욱 분위기를 조성하며 포기하려 하는 학생에게는 다시 도전할 용기를, 자만하려는 학생에게는 넘어질 수 있는 경각심을 알려주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급 자체에서 학생들에게 용기와 경감식을 주는 여러 장치들을 제공하곤 하는데, 그렇게 시험 한 달 전 우리 반의 시험 준비 프로젝트 기간이 시작된다.
1. 스터디플래너
작심삼일 타파하기!
1대 1 상담을 해본 결과 스터디플래너를 작성해 본 경험이 있는 학생은 전체 학생의 1/5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것을 돕고 싶었다.
희망자에 한해 담임선생님께 스터디플래너 체크리스트를 검사받고 응원의 코멘트와 작은 간식을 보상받게끔 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아침 조회시간마다 전날 자신이 계획하고 공부한 스터디플래너 내용을 검사받기 위해 줄을 섰다. 처음 목표는 작은 사탕일 수 있지만 끝은 꾸준함과 성취감이 따라오니 이보다 더 달달한 보상이 있을까 싶나 보다. 담임인 나는 그저 응원의 코멘트를 열심히 달아줄 뿐이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 만들어준 주간 스터디플래너
2. 시험공부 인증샷 이벤트
공부의 핵심은 성취감 느끼기!
누군가 나의 힘듦을 알아주고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다. 학생들도 그렇지 않을까?
별거 아닌 작은 이벤트이지만, 학생들 또한 응원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한 이벤트이다. 학생들이 그날 공부한 내용을 사진 찍어서 담임선생님에게 보내면 우리 반에서 진행하는 mvp 스티커를 보상하고 작은 간식도 함께 보상해 주기로 했다.
문제풀이 사진이든, 교과서에 밑줄치고 암기하고 있는 사진이든 어떤 사진도 괜찮다.
그저 여기 한 사람,
너희가 늦은 시간까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아봐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여기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시험공부 인증샷 이벤트
3. 배워서 서로주자
남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 때 더 큰 가르침을 얻는다!
지금은 경쟁사회라고도 한다.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
입시전쟁에 뛰어들게 될 고등학교 입학 전에, 중학교 때만이라도 학생들이 서로 함께, 같이 성장해 가는 기쁨을 느꼈으면 한다.
그래서 "배워서 서로주자" 이벤트를 생각해 냈다. 학급 뒤에 시험 범위에 해당되는 과목들 이름이 쓰여 있는 백지를 붙여놓고 공부한 학생들은 해당 과목에 기억나는 중요 개념 등을 적도록 했다. 그러면 내용을 적은 학생들은 해당 내용을 한번 더 복기시키고, 다른 학생들은 오며 가며 그 종이를 읽고 한 번이라도 내용을 눈에 익힐 수 있도록 했다. 교과서를 한 번도 펴보지 않은 학생들은 화장실 가는 짧은 시간이라도 친구들이 적은 종이를 훑어보며 중요 개념이라도 읽어볼 수 있도록 말이다.
정승환 작가님의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라는 책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어서 학급 칠판에 적어놓은 적이 있다.
나는 서서히 자라고 있지만 내 앞을 가로막은 벽은 훨씬 빠른 속도로 자라난다는 게 문제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라려고 노력하는 것은 언젠가 그 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힘으로 무리라면 함께하는 방법이 있다.
내 힘이 부족하면 옆 사람과 함께 조금 더 높은 곳으로 향하자. 작은 나와 네가 함께 '우리'라는 이름으로 힘차게 벽을 뛰어넘자.
우리, 조금씩 살아 움직이자.
우리 반 학생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혼자만의 힘으로 무리라면 함께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작은 나와 네가 함께, '우리'라는 이름으로 힘차게 벽을 뛰어넘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혹은 한두 번의 실패로 이미 모든 것을 다 해보았다고 나는 여기까지라고 단정 지어버리기 전에, 멈추지 말고 살아 움직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