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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잎 May 05. 2024

<학급경영> 내려놓기

지난주 월요일 아침.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다가 집에 있는 아기 미끄럼틀에 발을 부딪쳤다.


"아얏!!"


부딪치자마자 발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아기 놀아주랴 출근준비 하랴 정신이 없던 터라 "한동안 멍이 들겠구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출근을 했다.


시험기간인지라 2시간 시험 감독을 하고 퇴근을 하려는데 이상하게 아침에 다쳤던 발의 감각이 이상했다. 발을 못 디디겠는 욱신욱신함과 찌릿찌릿함이 온몸에 퍼졌다.


그냥 타박상이겠거니 하고 넘기려 했으나 안 되겠다 싶어 퇴근길에 바로 정형외과로 향했다.


엑스레이를 찍자마자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 없이도 비전문가인 나조차 내 발이 어떤 상태인지 알 것 같았다.

엑스레이 상에 매끈하게 쭉 이어져있어야 할 선이 어딘가 뚝 끊겨있었다  


"아이고, 골절이네요. 다치자마자 바로 오시지, 어떻게 일하다 오셨어요. 많이 아프셨을 텐데..."


그렇게 6주 동안의 깁스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5월은 학교 학사일정 중 가장 많은 행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달이다. 거기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담임에, 순회교사에, 학생자치회 담당 교사이기에 더욱 정신없이 바쁠 5월이었다.


그런 내가 골절이라니. 6주 동안 깁스신세라니.


같은 학년부 선생님들께서는 시간강사라도 구해서 한 달이라도 병가를 내고 쉬라 하셨다. 내 몸만 생각해서는 정말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절뚝절뚝 거리며 수업을 오고 가고 이 발로 45분 동안 수업을 해야 한다니. 붙으려던 뼈도 안 붙을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장점이자 단점인 성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쓸데없이) 투철한 책임감'이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도 책임감 때문에 내 몸이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또 그 책임감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결국 병가를 쓰지 않기로 했다.


학급 학생들은 하나같이 담임인 나를 걱정해 주고, 복도에 담임선생님이 보이기만 하면 저 멀리서도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부축해 주었다.

'그래, 이렇게 도와주는 아이들이 많으니 6주쯤이야 잘 보낼 수 있겠어.'


하지만 호기롭게 생각했던 이 마음과 달리, 발은 생각보다 많이 무리가 되었는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다친 발이나 안 다친 발이나 둘 다 저릿저릿하니 쥐가 날듯 아프고 무릎까지 시큰해질 지경이었다.

 




사실 나는 책임감이라는 이유로 담임으로서 학급경영을 할 때에 담임인 나의 목소리를 낼 때가 많이 있었다. '학급 자치'시간에도 학생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자치'가 아니라 담임인 내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 적이 많았었다.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마음속 한편에는 학생들에게는 아직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부모가 어린 자식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하나하나 다 해주려 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도 있는데, 담임인 나는 우리 반 학생들에게 매번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를 정성껏 잡아 요리까지 해서 입에 넣어주고 있던 것이다.


이번에 발을 다치고 나서야 학급 내 여러 상황에서 담임인 나를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담임의 역할을 내려놓고 학생들의 역할을 세워주고 믿어보기로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학생들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교사인 나보다도 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방법으로 학급을 이끌어가고 계획하고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학급 단합이 필요하다며 학생들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더니 45분 동안 학생들이 직접 진행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다친 담임선생님이 조종례 시간에 늦게 들어오실 것을 대비해 학급 회장, 부회장이 알아서 교탁 앞에 나가있기도 했다. 대의원회의를 앞두고는 학급 친구들의 의견을 한 명도 빠짐없이 살뜰히도 물어봐 전교 회장단에 야무지게 전달하기도 했다.


 

학생들 스스로 진행한 학급 자치 시간



담임으로서 책임감은 가지되 부담감을 살짝 내려놓으니, 그제야 학생들의 모습이, 학생들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담임인 내가 학생들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학생들 또한 담임인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학생들을 위해 해주는 수많은 것들 그 이상으로 학생들도 나와 우리, 우리 학급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한히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고, 교사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만큼의 퀄리티나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결과를 떠나 본인들이 직접 계획하고 시행하는 그 모든 과정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끔 이렇게 살짝 내려놓고 담임도 학생들에게 기대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물고기 잡는 법을 알고 있을지도, 아니 이미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할지도 모른다. 다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교사로서 교사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학생들을 믿고 기다리고 기회를 주면 학생들의 능력이 보인다.


이번주에는 우리 반 학생들이 또 어떤 의젓하고 기특한 순간들을 만들어 줄까.

마치 내 자식을 키운 것 마냥 우리 반 학생들을 쳐다보며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아이고, 이제 다 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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