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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잎 Feb 04. 2024

<학급경영> 딸린 아이가 30명입니다.

수업 관련한 내용을 마치고, 이제 학급경영 "담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수업보다는 훨씬 더 다이내믹한 상황이 많이 펼쳐지기에 수업과 관련해서는 하룻밤을 꼬박 새워 이야기할 수 있다면 학급경영과 관련해서는 일주일을 꼬박 새워서 이야기해도 부족할 수 있다. 교사로서 마음의 준비, 멘털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학급경영이다.


2017년, 중등교사로 임용된 때부터 휴직 전까지 단 한 해도 담임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그리고 담임을 했던 그 모든 해에 나는 "중학교 3학년 담임교사"였다.



누군가 나에게 결혼여부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가물가물해서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가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난다.


"결혼이요? 애가 30명인데요."


미혼시절에도 "딸린 애가 30명인데요." 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나였다. 매년 담임을 해오던 나는 단 한해도, 단 한순간도 내가 맡은, 우리 반 아이들을 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 손에 맡겨진 1년만큼은 그들은 나의 제자이기 이전에 나의 자식, 나의 아이들이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자식을 어찌 내 자식과 똑같이 생각할 수 있겠는가. 초임시절에는 자녀도 없었던 때이기에 자식이 무엇인지, 모성애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였다. 그런 내가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엄청난 인류애도 아니고 내가 성인군자여서도 아니다. 나의 천직이 교사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던 때, 일명 "답 없는 아이들"을 참 많이도 만났다. 남들은 그 학생들을 보며 "답이 없다."라고 말하며 혀를 내두르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들이 답이 없는 게 아니라 답을 모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답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에 답을 알 수 없었고 그렇게 그들은 세상 앞에 본인들이 누구인지 소개하기도 전에 마치 누가 정해준 것 마냥 그냥 답이 없는 아이들이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유가 어찌 됐건 일명 "답 없는 아이들"이든 "답 있는 아이들"이든 내 자식이 아니고서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으랴.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내 자식 또한 정말 답 없는 하루하루의 연속인데 말이다.)


남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르침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은 수없이 많이 찾아온다.


중학교 3학년쯤 되니 이미 키를 훌쩍 넘어가는 학생들도 있다. 키와 머리가 커진 만큼 본인들도 어른과 같다며 어른처럼 행동하려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커봤자 학생들은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아이이다. 미성숙하고 불안하다. 그렇기에 어른이 필요하고 가르침이 필요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해진 답은 없다지만, 그 살아가는 길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물음표들에 스스로 정답을 찾아갈 수 있는 내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내가 마주치게 될 사람들과는 어떠한 최소한의 예의와 태도가 있어야 하는지, 살다가 길을 헤매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어떠한 지혜가 필요한지,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을 때 어떻게 다시 일어나야 할지 등등, 수많은 물음표들에 스스로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범답안 정도는 그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될 수많은 어른들이 "답 없는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이다. 모범답안을 그대로 따라 할지 새로운 답을 도출해 낼지는 그들의 선택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어른이 삶으로 보여줄, 가르쳐 줄 의무가 있다고 말이다.  


부모조차 그 일이 버거울 수 있기에 남의 자식으로 여기면 교사인 나는 학생들과 마주치는 수많은 순간에 얼마나 많이 그들의 손을 놓고 싶을까. 그래서 그들을 내 자식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이 속상하게 한 날, 반 아이가 큰 사고를 쳐서 여기저기 같이 불려 다니느라 정신없던 날, 수없이 내려놓고 싶었던 그 많은 담임으로서의 날들에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네이고 또 되네이며 학교에 갔다.


"이래나 저래나 이미 내 품 안에 들어온 이상 너희는 내 새끼들이다. 잘못된 일을 하면 내가 제일 먼저 누구보다 크게 혼낼 것이고, 기특한 일을 해도 내가 제일 먼저 알아줄 것이고, 사랑을 줘도 내가 제일 먼저 줄 것이다. 사랑을 받아본 적 없다고? 그러면 내가 넘치게 줄 테니 마음껏 받아봐. 그리고 사랑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 배워봐."





아침 조회가 끝난 쉬는 시간에 칠판 한구석에 짧게 반아이들이 볼 수 있는 편지를 적어놓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날도 우리 반 수업이 없는 날이라 종례 전까지는 교실 들어올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아 조회를 마치고 "예쁘고 멋진 내 아가들"로 시작하는 편지를 써놓고 나왔었다. 몇 시간 만에 종례시간에 반으로 들어왔더니, 아침에 내가 써놓았던 편지 옆에 아이들의 답장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우리 엄마"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들 등본에 '나'라는 엄마는 없지만, 담임인 나를 "엄마"라고 적으며 내 편지에 라임을 맞춰놓은 아이들의 답장을 보며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부모가 되었고 그들은 나의 자식들이 되어가며 우리는 함께 한 해를 살아갔다. 어느 해에는 30명, 어느 해에는 32명, 어느 해에는 34명, 어느 해에는 29명......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사랑을 모르던, 사랑을 말할 줄 모르던 아이들이 사랑을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올 때까지. 내가 먼저 그들에게 사랑을 흘러넘치게 줄 수 있도록, 오늘도 부족한 내 마음 그릇에 사랑을 가득 담아 본다.


.

.

올해 새 학기에는 내 찐 자식과 더불어 몇 명의 새로운 아들, 딸들이 생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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