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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잎 Jan 28. 2024

<수업> 교사의 직업병

모든 직업마다 그 직업에 따른 직업병이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교사의 직업병은 하루에 몇 시간이고 수업을 하면서 약해진 목 관련 질환, 오래 서있으면서 종아리에 무리가 오게 되는 하지정맥류 등이 있을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교사의 직업병은, 이런 것이 아니다. 물론, 목 아프고 다리 아프다. 편도염은 기본이고 아프면 무조건 목부터 붓는다. 이러한 질병적인 부분의 직업병 말고 습관적으로 고칠 수 없는 고질병 같은 직업병이 또 있다.


나에게 직업병은 어딜 가나 시도 때도 없이 수업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는 "수업병"이다.




 제2외국어 수업의 특성상 언어적인 부분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요소도 수업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문화수업을 진행할 때면 학생들로 하여금 언어뿐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사람, 문화를 배우면서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수업이다 보니 문화수업에도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다.


문화를 배우기에는 그 나라의 문화를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기에 직접 그 나라를 가보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수학여행도 아니고 일반 수업에서 몇십 명의 학생들이 다 같이 중국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제한적인 상황인 교실 안에서 학생들에게 '간접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교과서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학생들의 경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교과서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중국어 교사인 내가 내 삶 속에서 "어쩌다 발견한 중국의 모습"들을 학생들에게도 소개해주고 경험하게 해주는 편이다.


나의 경험을 학생들의 경험으로 이어지게 하다 보니, 나의 일상은 수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어쩌다 발견한 중국  


결혼 전,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데이트하던 중에도 이 직업병이 발현되기도 했다. 양꼬치가 먹고 싶어서 맛있다는 양꼬치 맛집을 찾아갔었다. 메뉴판을 열자마자 중국어로 쓰여있는 음식 이름들을 보고 수업에 보여줘야겠다며 주문도 하기 전에 메뉴판 첫 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사진부터 찍곤 했다. 음식 사진은 기본.


몇 년 전 남편과 강남 데이트를 갔다가 우연찮게 홍콩식 밀크티를 파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원래도 밀크티를 좋아하던 터라 밀크티를 맛나게 사 먹어보고는 또 갑자기 학생들 생각이 났다. 이 맛을 나만 느낄 수 없다며 한입씩이라도 학생들에게 맛보게 해 주겠다고 밀크티 몇 병을 바리바리 사간 적이 있다. (이쯤 되니 남편은 수업 보조가 될 정도로 내 수업자료 찾는데 많은 일조를 하는 편이다.)


휴직 중에도 나의 수업병은 여전했다. 휴직 중인 나를 보러 오겠다며 이미 대학생이 된 졸업생 제자가 집 근처로 찾아왔었다. 집에서 아기 육아하느라 요즘 MZ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몰랐던 내게, 제자는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그중 이건 무조건 드셔봐야 한다며 제자는 탕후루 가게로 나를 이끌고 갔다.


탕후루.....


중국 교환학생을 갔을 때, 중국 여행을 갔을 때, 심지어 대학교 축제 때 중국학과 포차에서 팔던 그 탕후루였다. 내 인생에 수도 없이 많이 스쳐 지나갔던 탕후루. 그동안 '과일은 과일 그 자체로 먹는 게 제일이다'는 내 신념에 설탕 옷을 입은 탕후루는 단 한 번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그런 탕후루를, 중국어 교사가 되니 학생들한테 수업자료로 보여줄 생각에 들떠 사진부터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탕후루의 자태가 그날은 어쩜 그리 영롱해 보이던지......



제자와 함께 처음으로 사본 탕후루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중국에서 촬영한 장면이 나오거나 중국어가 한마디라도 나오게 되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보던 영상을 일시정지 해놓고 수업자료로 쓸 생각을 한다. 어떤 드라마, 어떤 영화, 어느 장면에 무슨 말이 나왔는지 어느 단원, 어느 수업에서 보여주면 좋을지 기록해 놓는다. 수업자료를 만들기 위해 TV를 보기 시작한 게 아니라 단순히 여가를 즐기기 위해 TV를 켰지만 마무리는 꼭 수업 생각으로 끝이 난다.


이쯤 되면 일상 속에서 수업을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었으니 이 수업병은 나에게 아주 고질병 중에 고질병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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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선생님은 이렇게 수업에 진심이란다. 너희들이 존재하는 한, 선생님의 이 병은 고칠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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