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 >에 대하여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내 품에 안겼을 때를 기억한다. 아기는 내 품에 안기자, 마치 하소연하듯이 울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아이들은 주로 운다'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아이의 울음도 그저 그냥 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와 10년 넘게 살다 보니, 이제는 그때 울음이 어떤 의미였을지 알 것 같다. 그것은 정말 하소연이었을 거다. '나는 아까 태어났는데 왜 이제 안아주는 거냐'는 하소연, '그 사이에 내가 얼마나 허전했는지 아느냐'는 하소연, '지금이라도 엄마의 냄새를 맡게 돼서 안도가 되지만 왠지 모르게 서럽다'는 하소연 등등등..
아이는 지금도 그렇다. 학교에서 축제를 하는 날, 부모가 정해진 시간에 어련히 자신을 보러 다녀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우리가 복도로 들어서자 아이는 "얼마나 기다렸는데~" 라며 며칠을 기다렸다는 표정으로 반갑게 달려온다. 그렇게 다가오는 아이를 생각하면, 나는 아이가 처음 내게 안겼을 때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그 울음은 "얼마나 기다렸는데~"와 정말 느낌이 똑같아서 웃음이 피식 난다.
아이가 하소연하듯이 울면, "엄마 보고 싶었쪄~? 엄마도 우리 딸이 마니마니 보고 싶었쪄~" 하면 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아이가 태어나던 때 나는 그런 대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 내가 '아이 둘을 키우게 된 이유'는 아마도 '하소연을 하거나, 하소연을 받아주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중요한 것인지'를 알아야 했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농담 섞어 얘기할 능청도 생겼다. 그만큼 아이들은 자라며 하소연을 많이 한다는 의미인데, 아이들만 그럴까. 아이 키우며 나도 하소연할 게 정말 많긴 했다.
하소연을 하고, 필요한 위로나 공감을 받게 되니, 그 이전에 내가 얼마나 우울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의 울음이나 하소연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고 있었으니, 아기의 울음이나 하소연이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워서 긴장하거나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시간들이 쌓여 이제는 드디어,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이 나에게 다가오며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정확하게 떠오르게 되었다.
“세상에 나오니, 엄마 냄새가 있다가 없다가 해서 이상하지. 우리 딸이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있는 걸 연습하네? 엄마가 꼭 안아줄게.. 잘 태어났어! 보고 싶었어~~~~~!!! “
이 자연스러운 마음을 만나고, 나의 환영을 담은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확신이 담긴 말을 해줄 수 있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비로소 우리가 만났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이런 요즘은 매일이 생일 같다는 생각도 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