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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Feb 21. 2024

엄마, 일하지 말고 맛있는 밥 해줘

< 불만 >에 대하여 


시기의 문제였지, 언제 한 번은 이 말을 들을 것 같았다. 이런 말에는 뜸을 좀 드리고 반응해야 되는데, 열 템포는 쉬었다가 답했어야 했는데, 내가 선급했다. "왜?"라고 질문을 해버렸으니.



엄마 밥이 맛없어!



충동적으로 튀어나간 내 질문은 하수의 것이었고, 솔직하고 담백하기 그지없는 아이의 대답은 고수의 것이었다. 정수를 찌르는.


만약 내가 '맛있는 밥'을 차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면, 그 노력의 크기만큼 나는 아이의 말에 기분이 나빴을 거다. 본격적인 결투가 시작되는 거지. 그런데 다행히 요즘 내가 차리는 밥상은 노력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쏜 화살은 나를 비켜갔다. 화살은 비켜갔지만, 결국 흔하고 흔한 문장으로 아이의 말에 답을 하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이 대화에서는 처절하게 패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속으로. OTL



그럼 그럼, 원래 밖에서 먹는 밥이 맛있지



아이의 말이 그냥 '반찬 타령'이었다면, 이렇게 글로 쓸 만큼 뒤끝이 길진 않을 거다. 그저 아이에게 먹고 싶은 것을 물어서, 레시피대로 손을 움직이면 그만이다. 그런데 엄마 인생이 1-2년도 아니고, 내가 만드는 밥이 요즘 어떤 상태인지는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잘 알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아이의 '결투 신청'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진 않다.



요즘 내가 만들어내는 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밥이다.



이건 일단 나에게만 그랬다는 건 인정해야겠다. 나의 요즘 부엌 생활은 예전보다 더 체계가 잡혀가고 있었고, 내어 놓는 메뉴도 전보다 늘고 있었고, 이리저리 날뛰던 맛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만드는 기분이 흥겨울 지경인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밥이 아이에게는 맛이 없었다니? 그렇다면, 즐거운 밥이었다는 건 나에게만 그랬던 걸로 한다. 그리고, 아이가 말한 문장을 이렇게 바꿔 읽어 본다.



엄마, 일만 생각하지 말고, 나 좀 바라봐
요즘 엄마의 정은 맛이 없어!



음, 이거군! 이제야 아이의 말에 수긍이 된다. 맛이 없을 수 있다. 요즘 내가 줬던 시선과 잔소리들이 아이에게는 썼을 거다. 내 속이 복잡해서 그것을 보살피느라, 아이에게 가는 정은 가뭄에 단비 정도였을 거다. 그마저도 불안이나 걱정과 버무려져서 아이에게는 잔소리로 나가곤 했으니. 밥 먹을 때라도 종알 종알 종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아이에게 "먹고 말해라, 상대방이 밥을 먹을 수 있게 식사 예절을 갖춰라 등등등" 아이를 가르치기 바빴으니, 아이는 밥맛이 떨어질 만하다. 밥투정은 결국 정투정이라더니, 첫째의 밥투정도 다르진 않아 보인다.


아이들은 엄마가 아플 때는 참고 있다가, 엄마가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면 바로 알아차리고 그간에 참았던 힘듦을 토해내며 투정을 부리더니만! 이번에도 그 공식이 딱 맞아떨어진다. 내가 이제 좀 마음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첫째가 '정투정'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이야, 엄마가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밥맛이 좋아지는 건 아니야



대신, 엄마가 일을 마치면, 네가 원하는 공놀이를 하자. 우리 같이 인형 놀이도 하자. 대신 밥 먹을 때는 식사 예절을 갖춰서 적당히만 말하기! 왜냐하면, 엄마는 일이 하고 싶거든! 밥도 정신 차려서 먹고 싶고! 너도 나중에 아이 낳고 기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엄마에게 자신의 일을 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신의 밥을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물론 엄마는 너희를 무척 사랑해.


아이에게는 이렇게 모든 문장을 말하진 않을 예정이다. 그보다 나는 일에서 성과가 좋든 나쁘든 오늘의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내일의 나를 믿는데 더 힘을 쓰고 싶다. 일손을 딱 놓고 나가서 아이와 공을 차다 보면 나도 상쾌할 것 같으니까. 주문해 놓은 고양이가족 인형이 오면, 아이와 30분 정도? 그것도 버거우면 5분 정도? 놀아줄 생각이다. 모든 것을 잊고! 나도 그러고 싶으니, 이번에는 아이에게 엄마의 정이 쓰진 않을 게다. 룰루.




퇴근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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