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과잉 사고

Overthinking의 굴레

by 연월

'조조코믹스'는 여러 인물의 회사생활 속 로맨스를 다룬 웹툰이다. 하지만 이런 로맨스 사이에서 유독 내 기억에 많이 남은 인물이 있었다. 자신의 나이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도 쉽게 자극받고 상처받는 캐릭터였다. 예를 들어 동료가 '우리 나이쯤 되면 그 정도는 눈치로 알지!'라고 말하면 '나보고 나이 들었다는 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부분도 그냥 넘어가짐 못하고 속상해하다 보니 댓글에는 캐릭터가 너무 오버다, 혹은 유난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런 반응들이 더 의외였다. 어떤 부분에 열등감이 생기거나 자존감이 떨어졌을 때 사소한 부분에도 급발진하고 혼자 땅굴 파는 경험은 다들 한 번쯤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늘 그런 사고흐름에 사로잡혀 산다. 많은 구김살이 있겠지만, 가장 크고 쉽게 자극되는 건 아무래도 나이와 취준생 타이틀이다. 옛날에는 아르바이트에서 나보다 어린 직원들과 일할 때 나이를 희화화하며 농담거리로 삼곤 했지만, 결국 자해하는 꼴이라 그만둔 지도 한참 됐다. 의도치 않게 나에 대한 말은 일절 꺼내지 않는 과묵한 동료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은 누군가 나이를 묻는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머릿속엔 수십 가지 부정적인 대답이 떠오른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이 질문에는 늘 '그 나이까지 그러고 있어?'라는 비난이 숨어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건 결국 내가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었다. 게다가 나이 질문 다음은 99% 하는 일 질문이다. 그 질문에 겨우 대학원 다닌다고 대답하고 자리를 피하지만 속으로는 그냥 백수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이나 한동안 교류가 없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는 피하게 된다.


취준생 타이틀은 더 커다란 과잉 사고 대상이다. 언젠가부터 오전부터 낮동안에 돌아다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이 나이에 한낮에 돌아다니는 건 백수라는 걸 광고하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다. 밖을 돌아다니면서도 내 또래 사람들이 없는지 열심히 찾았고, 주변에 노인과 중년층뿐이라는 걸 의식하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불편할 지경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어휴 쓸모없는 백수새끼'하며 눈치를 주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대학생처럼 보이고 싶다는 마음에 화장을 하고 다니기도 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떨 수가 없다. 자존감이 떨어질수록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지고 점점 더 겉모습에 신경 쓰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자꾸 불합격 통보가 들려오며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요즘은 모든 사고가 과잉발달되고 있다. 어떤 감정을 느껴도 내가 자격이 있나 싶어 꾹 참기 일쑤고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땐가 하는 자괴감이 덮쳐온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같이 간단한 취향도 '백수주제에 주는 대로 먹지 뭔 말이 많냐'하는 생각이 들어 선뜻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린다. 힘내자는 고시생 친구의 메시지에 해낼 자신이 없어 답장을 하지 못하고, 요즘엔 다 늦게 취업한다며 격려해 주는 동기의 말에 속으로는 '내가 취업이 늦었다는 거네?' 하면서 좌절한다. 나이 들었다는 말을 들을까 봐 좋아하는 노래도 밝히지 못하는 웹툰 주인공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와중에 하는 일도 없는 백수주제에 징징댄다는 말을 들을까 봐 혹은 이 상황이 괜찮은 척하려고 늘 긍정적으로 말하고 밝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저녁 강의를 듣기 위해 학교에 가다가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나날들의 연속이다.


그중에서도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건 점점 지원을 주저하는 내 모습과 아무 기대가 없는 미래이다. 점점 눈을 낮춰서 지원하고 있음에도 쉬이 열리지 않는 문을 바라보며 여기마저 안되면 어쩌지, 내가 이 정도도 안 되는 구나하며 바닥을 깨닫는다.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게 두려워서 차라리 지원을 안 하고 싶다는 생각도 커지고 불합격 통보가 무서워진다. 이런 굴레는 무망감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자원이 된다. 지원을 하면 할수록 기대가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증발한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지원서를 썼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이것마저 안 하면 정말 쓸모없이 홀로 고여있을 것만 같아서. 떨어질 게 뻔하다는 예감에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지원서를 내고 나면 허탈함과 자괴감이 몰려오지만 그조차도 이제는 익숙하다. 그냥 이렇게라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덜 초조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바닥을 두드리며 이곳이 끝인가 확인해 보는 중이다. 끝인지 아니면 조금 더 내려갈 여지가 남았는지.



이전 18화자아성찰 지옥에서 벗어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