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은희 Oct 10. 2023

온전한 쉼

날개를 접고, 쉬다.

고추 잠자리 한 마리, 곁을 틈 타는 줄도 모르고 쉬고 있다. 오랜 비행에 지쳤을까. 기척에도 놀라지 않고 쉬고 있다. 온전히 자신을 위해 쉼을 갖는 용감한 잠자리다. 어렸을 때 고추 잠자리를 잡아 오래오래 날개를 쥐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손에 축축하게 배인 땀때문에 잠자리의 날개는 젖었고, 놓아주었을 때 더는 날지 못했다. 잡힌 날개 때문에 버둥거리다가 날개와 몸통을 잇는 부분에 상처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자리는 쌩쌩 하늘로 날지 못하고 놓아준 자리에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창공을 향해 더는 날갯짓 하지 못했다. 죄책감을 처음 맛보았던 유년의 기억은 가을마다 찾아와 나는 고추 잠자리를 별반 반가워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눈에 담은 온전한 쉼의 잠자리는 평온해 보였다.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단잠에 빠진듯 미동도 없는 모습, 이제 살금살금 너를 쫓지 않을게. 너의 쉼을 결코 방해하지 않을게. 햇살과 바람을 신뢰하는 예쁜 고추 잠자리야^^

이전 02화 빛의 거미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