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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몌 May 10. 2024

출발선에 발을 맞추고, 해운대


2020년의 10월도 여느 가을처럼 파아란 하늘빛을 드러내었다. 내 삶 중 가장 화사한 옷을 입었고 가장 예쁘게 화장을 했다. 반가운 사람들과 기쁜 인사를 나누고 한 사람과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식도 그렇게 무사히 끝났다. 동시에, 그것은 아주 긴 여정의 시작이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멀리 신혼여행을 가지 못하고 부산 근처에서 짧은 호캉스를 보냈다. 거기서 부산으로 돌아오면서 맨 처음 들린 곳이 해운대였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짐을 풀고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바다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저녁식사와 함께 마신 맥주는 무척이나 시원했고, 가을에 접어든 바다는 여름보다는 꽤 한산했다. 우리는 바다를 핑계 삼아 그 한산한 바다를 걷고, 곱씹었다.



아침엔 일찍 일어났다. 태양을 머리에 이고 있는 노오란 모래사장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사진을 찍었고 바닷물 대신 모래에 발을 담갔다. 선선한 바람이 목을 휘감았다. 바다는 하늘만큼이나 새파랬다. 어디에 눈을 두어도 좋은 날이었다.



해운대에 가지 않은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찬란했던 그날들은 차츰 무르익어 좀 더 나은 행복과 일상이 되어가는 중이기에 해운대의 그날 아침이 아주 많이 그립지는 않다. 하지만 이따금씩 그날의 온도를 떠올린다. 더우면서도 선선했던 바다, 지금처럼 맞잡은 두 손, 많이 걸어도 아프지 않던 다리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나는 나를, 우리를 그날의 아침으로 보낸다. 시간을 거슬러 보내어진 우리는 그 시간이 현재인 것처럼 숨 쉬고, 말하고, 달린다. 출발선에 발을 맞추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해운대역>


부산 2호선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로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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