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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몌 May 29. 2024

꽃 헤는 봄, 너의 안부



잘 지내냐는 말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 아무것도 없는 서랍처럼, 남은 물이 없는 유리잔처럼, 파도가 없는 바다처럼 공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에게 묻는다, 잘 지내?



몇 번의 봄이 영원처럼 돌아올 때쯤이면 생각한다. 정말이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이제는 과거형인 나의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잘 지내고 있는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을 거듭한다 해도 완벽한 결론에 도달할 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쨌든 알고 있는 건 모르는 게 아닌 거니까, 남은 건 인정하는 것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닿을 수 없는 무언가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던 겨울을 보내는 일은 꽤나 힘이 들었다. 몸에 걸친 외투는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고 원하는 건 봄 아니 심지어 더운 여름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엇이든 떨쳐내고 씻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시간이 가길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정작 여름 앞까지 온 지금, 안부라도 물을 수 있었던 그 겨울이 그리워진다. 



이 밤, 흩어지는 꽃무리를 떠올린다. 우리가 아무런 의미를 떠올리지 않고도 살아낼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한다. 덩달아 봄까지 꽃잎처럼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그 시간이 아쉽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 현재의 시간에 우리들은 이미 다 사라지고 없다. 



어느새 너의 안부, 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슬프지 않아서 슬픈 일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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