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 오른 곳, 진주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가수 강산에의 명곡이다.
여기 또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 아니 예비역이 하나 있다. 이건 나의 두 번째 군번이 생기는 이야기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21개월 간 국방의 의무를 잘 마쳐놓고는 제 발로 군문(軍門) 앞을 서성이고 있을까.
사실 현역병 때도 직업군인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입대할 때는 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내다 보니 고되지만 매력적인 부분이 분명 있었다. 가장 큰 건 조직이 좀 끈끈하고 으쌰으쌰 하다는 것. 근데 이건 내가 부대와 선임들을 잘 만나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대학생활이나 인턴, 알바를 할 땐 찾아볼 수 없던, 군대만의 그 스스럼없는 분위기가 좋았다. 아마 서로 뿌리가 같기 때문이 아닐까?
다들 입대날의 그 씁쓸한 기분을 느꼈고, 훈련소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처음 보는 사람이더라도 서로 다른 부대 이야기를 들으면 '와, 우리 부대는 안 저래서 다행이다..' 혹은 '와, 우리 부대만 이러는 거였네?' 하는 등 신기하고 리스펙하게 된다.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우르르 달려들어 다 같이 구르고, 끝나면 다 같이 시원하게 드러눕는 것. 거기서 오는 투박하고 구수한 전우애가 좋았다.
그때 애진작에 현역부사관으로 갈 수도 있었으나 20대 초반에 겪은, 군 안에서의 경험만으로 흔히 '군뽕'에 취해 내 미래를 결정해 버리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보류했었다.
그래서 일단은 전역하기로 했고, 마침 복학하는 학기의 등록금을 해결해 두고 입대했으니 그 한 학기를 마저 다녀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군대 생각이 난다면, 다시 돌아간 사회에서마저도 군대 생각이 난다면! 그때 재입대를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스물넷이니까.
그렇게 학교를 다시 다니는데, 뭔가 갑갑하더라. 전공 특성상 대학원을 거의 반필수로 가야 했는데, 석사과정 선배들 지내는 거 보면 엄두가 안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군대에서 실무를 건 바이 건으로 바로바로 쳐내다가 연구실에 진득하게 앉아 공부하고 논문 쓸 생각을 하니.. 쩝. 점점 피어나는 물음표에 짓눌려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그렇게 마음속에 연어 한 마리가 스윽 고개를 든다.
근데 선택할 것이 많았다. 육군으로 갈지, 타군으로 갈지. 부사관으로 갈지, 장교로 갈지. 재입대도 그냥 하는 게 아니었다. 이것저것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먼저 어느 군으로 갈까. 육군 출신이긴 했지만 항공단 내에서 근무했어서 자연스레 항공 쪽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산 타기 싫고, 배 타기 싫어서 공군으로 정했다. 육군, 해군 정말 존경합니다..
자, 그럼 이제 장교냐 부사관이냐.
나는 당시 2학년까지 다녔기에 학사장교를 하려면 졸업을 해야 했다. 이왕 길을 정한 거 빨리 가고 싶어서 학사장교는 배제했다. 또한 육군3사관학교를 갈 수도 있었는데, 위의 이유로.. 네, 그렇게 됐습니다.
종합하면, 공군부사관 쪽으로 갈피를 잡았다.
각 신분마다, 각 군마다 장단점이 있었지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장점만 생각하려고 했다. 미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학교에 대한 마음도 접기로 했다. 지금부터 해야 하는 일만 추려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결정하다'라는 단어 'Decide'의 어원을 아느냐고.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De-'는 '완전히', '-cide'는 '잘라내다'라고 한다. 따라서 뭔가를 '결정'한다는 건, 'Decide' 한다는 건, 하기로 한 것 외에는 '완전히 잘라내고' 다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좋은 말씀이다.
그리고 엄마는 예전부터 내가 뭘 하던 조종하려 들지 않으시고 묵묵히 존중해 주셨다. 전역하고 대학 잘 다니던 아들이 군대 다시 간다는데, 할 말이야 많으셨겠지만 늘 그렇듯 이유만 물으시고 내 선택을 지지해주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팔딱거리던 연어는 제법 힘차게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선발시험 자체는 큰 걱정이 없었지만, 체력이 살짝 평균 이하였어서 그게 좀 걸림돌이었다. 병사 때야 그나마 좀 쳤지만 지금은.. 암튼 부지런히 운동해야 했다.
그도 그럴게, 공군 부사관교육대대를 검색해 보면 삼군 부사관 중 가장 강인한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흔히 '공군' 하면 좀 '유하다', '젠틀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훈련소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 큰코다친다고.. 살짝 쫄았다. 아니 좀 많이?
그건 그거고 3차전형에 1.5km 달리기가 있었는데 합격이 문제가 아니라 버텨내고 임관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입대 전부터 거리를 3km 이상에 맞춰 연습했다. 그럼 1.5km는 그냥 거저 아니겠는가.
그렇게 집 근처 시골길을 매일 달렸다. 오르막길이 나오면 오히려 좋다며 계속 달렸다. 연어와 닮아있었다.
2020년 10월 5일.
강물을 거스르던 연어가 어딘가에 다다랐다.
'막내아들까지 전역했으니 이제 군대 보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라던 아버지와 도착한 곳은 바로 경남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정문.
이번에는 4년 전과 다르게 끌려간 게 아니라 제 발로 결정, 'Decide'한 것이었기에 슬프거나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비장했다. 가족들도 덤덤했다.
그렇게 아들은 또 한 번 철조망 너머로 흐려져 갔다. 이번엔 제법 그 걸음에 힘이 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뚜렷했으니까.
누가 칼 들고 협박하지 않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세찬 강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강물을 갈라 올라가야만 했다.
연어는 눈을 질끈 감고 꼬리에 더욱 힘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