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올 거 같냐?

전역복 사이에 피어난 신문

by 재룬

2018년 6월 18일.

내가 전역하는 날이었다.


'그날이 올 거 같냐?'


질문을 가장한 조롱을 수 백번 받았는데, 이제 벽에 걸린 달력에도 전역날이 큼직하게 보인다.


문제는 이쯤에서 시간이 매우 더디게 간다. D-100이 깨지면 앞자리가 휙휙 바뀌며 아주 급물살을 타는데, 이상하리만치 D-10 언저리부터는 시간이 아예 멈춘다.


.. 국방부에서 장난치는 거 아닐까?


아무튼, 나는 말년휴가 복귀를 전역 일주일 전에 했다. 어차피 전역대기 기간이 일주일 주어지니 그 시간 동안 웬만한 일과에서 제외되어 군수품 반납, 각종 서약서 작성, 전역병 미래설계교육 이런 거나 하면서 놀다가 집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휴가를 복귀해 보니 후임들이 하나같이 나를 보고 악마같이 웃고 있었다.


.. 전역대기를 없앤단다.


지난 화에서 말했듯 중대장님과 소맥도 말아먹은 사이인데, 규정 상 전역대기라는 건 없다며 폐지하셨다. 그런 건 일과를 참여하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 골자였다.


그리고 전역 직전인 건 알겠는데 불침번은 또 왜 제외냐며 인원도 부족한데 자꾸 규정에도 없는 거 하지 말라고..


그전까진 아무 말도 없다가 하필 나부터 피를 본다는 생각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지만, 친한 건 친한 거고 규정은 규정이었다. 살을 에는 고통이 올라왔지만..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그 뜻을 겸허히 존중했다.


하.. 그렇게 민간인이 되기까지 최후의 월화수목금이 남았다. 문제는 그중 화수목에 철야훈련이 있다는 것. 아, 온 세상이 억까한다. 집에 가기 참 힘드네.


전역 6일 남은, 전역대기 없어진 말년병장의 철야훈련이 2박 3일 동안 펼쳐진다. 심지어 비가 많이 왔다. 역시, 하늘도 울어주는구나. 너무 습해서 나도 울고 싶었다.


내가 방탄모 쓰고 총을 든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지나가는 간부님들이 '너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 말뚝 박으려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물어보셨고, 일각에서는 일부러 후임들이랑 마지막으로 훈련 뛰려고 저런다고 미화되기도..


네.. 그런 걸로 합시다. 훨씬 낫네요.


그렇게 온정의 눈빛을 받으며 훈련 마지막 날인 목요일이 됐다. 마지막 초소근무 때, 운명의 장난인지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한 신병과 함께 투입되었다.

와.. 이 맛난 식재료를 어떻게 찜 쪄 먹어야 할지 감이 안 올 만큼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아, 오해하지 맙시다. 좋은 쪽으로 하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초소 안에서 재밌는 걸 시켜주고 싶었다. 몇 살인지 물어본 뒤 어차피 나는 곧 나갈 아저씨니 그냥 형이라 부르라 했고, 다나까를 폐지시켜 줬다. 대신 초소에서 나가면 다시 똑바로 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대화를 했는데 '군 생활 진짜 금방 간다'는, 정말 해서는 안될 무책임한 말을 해줬다. 이건 나도 신병 때 전역하던 사람이 해준 말이었는데, 그땐 이해 못 했었다. '뭐라는 거야..' 얘도 지금 같은 생각일 거다.


주말 동안 느리게 가던 시간이 D-1이 되자 그냥 멈췄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달아도 간다고? 글쎄, A/S 한 번 해야 되겠는데..


아무리 놀아도 저놈의 마지막 해는 질 생각을 안 했다. 낮잠을 자보려고 해도 내일 전역한다는 생각에 두근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이것도 이것 나름 곤욕이었다.


밤에도 자다 깨기를 반복했는데, 그러다 몇 시였을까. 창문의 커튼 사이로 노란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데 심장이 덜컥했다. 끝났구나. 더 자려고 애쓰지 않아도 됐다.


애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샤워 바구니를 챙겨 목욕하러 갔다. 주로 휴가 나가는 날 아침에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보려고 온몸비틀기를 하던 이른바 '조기샤워' 루틴이다.


가는 길에 만난 불침번들이 '응~ 오늘 전쟁 나~', 잘 다녀'오십시오' 등 전역날 아침부터 재수 없는 소리를 뒤로 하고 시원하게 씻었다. 그리고 빛나는 예비역 마크를 박은 전역복으로 갈아입었다.


08시 30분. 전역 행사가 시작되었다.


다들 대형을 갖춰 중대장님이 나오시기를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해보는 차렷.. 마지막으로 해보는 경례.. 모든 순간이 내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흐물거렸던 말년병장의 행동이 뻣뻣해졌다.


그렇게 서로 지지고 볶으며 지냈던 중대장님께 전역신고를 드렸고, 답례로 전역증을 수여해 주셨다.


그리고 뒤에 도열해 있던 후임들을 막내부터 악수하며 올라가는데, 위로 가면 갈수록 나와 얽힌 사연이 많은 친구들이었기에, 미안하고 고맙고.. 복잡했다.


21개월 전, 논산에서 엉엉 울며 들어갔던 군대. 이곳 포천에서 나갈 때는 울지 않았다. 23살의 나는 시원섭섭하게 수미상관을 무너뜨렸다.


모든 안녕을 끝내고, 출장 나가는 김에 정문까지 태워주겠다던 정비반 간부님들의 트럭에 올라탔다. 두 분이 오늘 들러야 할 곳들을 대해 얘기하는 모습을 보는데, 다른 차원에서 관망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없어도 여기는 계속 돌아가는구나.'

허전하면서도 든든했다.


그렇게 나를 위병소에 내려주시고, 정문을 통과하시며 '잘 살아라아앆!' 하며 부웅 떠나셨다. 마지막까지 유쾌했다. 그래, 잘 살자.


Take me to new world~ any~ where 어디든~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무렵이었다. 의정부역으로 향하는 버스였는데, 최고의 선곡이었지. 아직도 그 버스 창가에 앉아 있던 전역날의 내가 그려진다. 그렇게 까딱까딱 서울역으로 향했다.


달리는 KTX 창 밖, 스쳐가는 풍경 속에 한 명씩 띄워봤다.


군대라서 만났던 사람들,

군대라서 헤어진 사람들.


그날 탔던 기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2시간짜리 타임머신이었다.


그렇게 다다른 포항역.

아빠가 나와 계시단다.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는데, 저 멀리 아빠가 보인다. 건강하게 돌아온 아들에게 건넨 첫마디는?


'야, 지퍼 올려라. 오늘까진 현역이야.'

'넵'


더워서 전역복 상의를 걸치고 지퍼는 풀고 있었는데. 경상도 부자(父子)가 재회하는 법은 그랬다.


더운데 냉면이나 한 그릇 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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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오늘은 첫 예비군 가는 날이다.


내 군복은 우리 집 옷장 위에 고이 잠들어 있었는데, 오랜만에 꺼내 보니 접힌 데서 신문지 스르륵 빠져 나왔다.

엄마구나.


공간만 차지하고 뵈기 싫으니까 갖다 버리자 해놓고는. 하여튼 이 집 사람들은 다 이렇다.


한여름에 다시 입는 군복이었지만, 웃음이 났다.


이런저런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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