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냐, 개구리냐
11월, 의정부의 밤공기가 확실히 차다.
휴가 복귀를 위해 꼭 거쳐가는 1호선 의정부역. 난간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벌써 입김이 나오네? 포천은 더 춥겠지..
그러나 그는 웃고 있다. 발길도 가볍다.
잠깐, 휴가 복귀하는 군인이 웃으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닌다고? 저런, 군 생활이 얼마나 고됐으면 저리 미쳐버렸을까..
하지만 애처롭게 보지 마시라.
그 사람, 내일 분대장 됩니다.
지난 봄, 한 일병이 분대장 못 됐다고 잔뜩 꿍해있던 나날로부터 정확히 반년이 지났다. 많은 일이 있었지..
절대 집에 안 갈 것 같던 놈도 전역을 했고, 그만큼 후임들이 또 들어오고, 군장점에서 사 온 반듯한 상병 계급장을 달고 있다. 이제 녹색 분대장 견장을 어깨에 단다.
분대장 이취임식 때 박수갈채 속에서, 중대장님과 행보관님께서 직접 견장과 임명장을 수여해 주셨다. 견장을 달던 순간을 잘 찍어주셨는데, 그 사진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고놈 눈빛 참 비장하니 끝내줬는데.
그게 뭐라고 혹시나 해서 '원세이'도 몇 마디 준비했으나, 중대장님의 격려 말씀을 끝으로 행사는 끝났다. 쩝, 약간 뻘쭘했다. 그래도 기분은 최고였고, 날씨도 지금껏 본 적 없는 최고로 맑음이었다.
그날 내 목은 계속 90도로 돌아가 있었다. 어깨에 달린 녹색 견장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 참기가 어렵더라. 사무실에 거울은 없었으나 까만 배경의 전자시계에 나를 비춰보며 잔뜩 무거워진 어깨를 으쓱이기도 했다.
주말이면 얼른 녹색 견장이 달린 전투복이 입고 싶어 월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린 그 열정 가득한 신입 분대장은 자기 혼자 막 바빴다.
올챙이 때를 잊지 말자며 중대에 있는 몇 가지 불합리한 것들을 없애기 시작했다.
나는 이 부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부조리가 있다면, 순서가 선임부터 후임으로 정해지는, 이른바 '짬순' 문화라고 생각했다.
위계? 군대에서 당연히 필요하다. 적시에 전투력을 즉각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률적인 명령체계가 확립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평소 선후임 간의 위계는 어느 정도 필수다.
근데 지난 1년 간 보아온 군대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도 그 위계를 따진다는 것이다. 난 그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일개 분대장이라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내가 직접 나섰다.
예를 들어, 식당 입장은 선임부터 짬순대로 했다. 예전부터 생각했다. 왜? 밥 먹으러 들어가는데 왜 짬순으로 들어가야 하지? 숙련도가 필요한 임무에 투입되는 것도 아닌데. 바로 선착순으로 바꿨다.
식당에 들어가는 순서를 선착순으로 바꾸니, 중대원들이 좀 더 서로 잘 섞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병사들은 하루 세 끼를 모두 같이 모여 밥을 먹으므로 앞 뒤 옆사람이 식사마다 계속 바뀌니 밥을 먹으며 자연스레 다양한 상대와의 대화가 가능해진 것.
분대장으로서 뭔가 하나를 바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자, 사람 욕심이라는 게 발동해 또 다른 뭔가를 바꿔보고 싶어졌다.
막내는 청소시간 5분 전, 청소도구를 각 구역에 비치해둬야 했는데, 없앴다. 자기 건 자기가 챙깁시다.
또 가만 보면 막내 라인이 손에 뭐가 좀 묻을 수 있는 더러운 구역(화장실, 분리수거 등)을 청소했는데, 바꿨다. 청소구역은 선임이고 뭐고 매일 랜덤 추첨.
혁신 같았다. 정의의 사도 같았다.
하지만 간과했다. 100% 지지받는 정책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사람은 그렇게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상병장 라인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볼멘소리가 견장에 금을 내고 있었다.
공평, 수평, 평등.
너무 좋은 말들이다. 후임한테는.
뒤집어보면, 선임들 입장에서는 병장 짬 먹고 이등병 때 하던 거 해야 하는 순간이 종종 생긴 것. 흔히 '보상심리'라는 것이 결여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불만의 화살은 자연스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대놓고 뭐라 하진 않았지만, 느껴졌다. 시끌시끌한 생활관에 들어가면 갑자기 대화가 좀 잦아들었고, 왁자지껄한 샤워장에 들어가면 갑자기 물소리가 너무 잘 들렸다.
요 근래 내가 너무 지적만 했고, 지시만 했고, 일적인 이야기만 했다. 또 간부님들은 계속 나한테 얘기해서 스트레스였고, 내가 아무리 어떤 걸 지시해도 다음 날 그대로일 땐 언성도 좀 높였다.
그러다 보니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 웃으며 보낸 상병장들과 점차 멀어지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후임들의 여건을 많이 개선해 주니 애들이 드러눕기 시작했다. 별의별 걸 가지고 이거 부조리라며 찾아와 '건의'로 둔갑해 '조르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치이다 보니 혼자 있고 싶어졌고,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고, 먼저 말 걸기도 두려웠다. 우주의 한 공간을 정거장도 없이 유영하는 듯했다.
.. 어디서부터 이게 이렇게..
그렇게 서먹해진 생활관에 있기도 어색해서, 갑갑한 마음에 자리를 피해 상담실로 향했다. 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곳이었는데, 들어올 때보다 한결 나아진 얼굴들의 잔상이 남아있는, 내게 참 기분 좋은 곳이다.
비틀비틀 걸어가다 '근데 분대장은 누가 상담해 주지?' 하며 들어갔는데, 달빛도 들지 않던 상담실은 칠흑 같았다. 한 발짝 들어가 문을 닫으니 사람 한 명 죽어도 모를 것처럼 어두웠다.
그대로 주저앉아 문에 기대어 웅크렸고, 소리없이 울었다. 복도에 발자국 소리가 들려서..
잠시 후 점호 때 모두들 앞에 서야 하니 얼른 눈시울을 식혀야 했지만, 내가 돌아갔을 때 또 차갑게 조용해질 생활관을 떠올리면.. 고개를 떨궜다.
필연일까, 1년 중 밤이 가장 길었던 동지(冬至)였다.
과연 오늘밤에도 새벽 동이 틀까.. 기다려봐도 될까..
올챙이 때를 생각하던 초짜 분대장은,
떠난 개구리의 자취를 더듬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