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족발은 후회를 싣고
그렇게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를 누구보다 어두운 곳에서 보냈지만, 태양은 제 갈 길을 가며 밤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그렇다, 바꿔 말하면 동짓날부터 해는 길어진다.
내부 총질을 일삼던 초짜 분대장은 이제야 총구를 올바른 방향으로 돌렸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느새 손익분기점을 회복했다. 당연한 말이어야 하는데, 이제야 좀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그럼 그동안은 죽어있었나?
아무튼 내 마음에도, 달력에도 봄이 왔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을 지나 공교롭게도 밤과 낮의 길이가 다시 같아지는 춘분(春分)에 다다르자, 군대에서의 사계절을 모두 겪었다는 의미인지 드디어 작대기 4개. 병장을 달았다.
가장 디자인이 예쁜 반볼록이 병장 계급장은 그걸 붙이는 밸크로보다 크기가 살짝 넘친다. 거기서 오는 가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약간 오바하자면, 병장의 작대기 개수를 세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아니 진짜로.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쫙쫙 펴지는 어깨를 등대 삼아 주변을 둘러보면, 문득 풍경이 많이 변해있다.
친하더라도 아무래도 선이 있을 수밖에 없는 고참들은 벌써 다 집에 갔고, 수 차례 외출/외박과 휴가 중에 가진 술자리로 이미 형 동생 먹어버린 선임들만 한 줌 남아있었다.
대신 후임들의 숫자는 그와 반비례해 무한 증식해버려 어느샌가 몇 명인지 세다가 말았다.
간부님들도 여러 명 바뀌었는데, 가끔 최근에 온 분께 내가 부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소개해드릴 때도 있었다. 재작년 겨울에 나를 둘러싸고 뭔가를 알려줬던 분들 중 일부는 이제 그리운 얼굴이 되었다. 부디 잘 지내시길.
병장 한 명이 지금까지 맺은 인연들 중에는 이제 떠나간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그럴까, 그 해 봄은 유독 허공을 자주 응시했던 것 같다. 그러면 또 하루가 간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일까? 그때도 5월이면 슬슬 에어컨을 켜 말아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6월 전역이었기에 시간 참 빨라서 좋긴 한데, 5월..? 5월에 뭐가 있었는데.. 아, 맞선임 전역하는 달이구나. 부러움에 모른 척하기로 했다. 또 어떤 놀림을 당하려고..
군 생활하면서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맞선임과 맞후임. 국방부의 시계는 부지런히 움직여 이제 그 관계에도 끝을 선고하려 한다.
만나는 것도 내가 정한 게 아니지만, 헤어질 때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불가항력이다.
사실 맞선임의 전역은 슬프지 않다. 꽤나 잘 지낸 사이였기에 나가서도 또 볼 거고, 이미 다음 달에 서울에서 보기로 약속도 잡아놨다.
부대에 선임이 아무도 없다는 건 믿기지 않을 뿐이지 슬픈 일은 아니었다. 그냥 좀.. 모르겠다. 공허하다? 그뿐이다.
그렇게 병장을 넘어 왕고가 되어버린 소년은 이제 다음 주면 전역하는 달이니 분대장도 후임에게 물려주게 됐다. 아직도 어리버리한 녀석인데, 잘할 수 있으려나. 한 달 뒤면 이제 안 볼 사람들인데, 나는 왜 그들을 걱정하고 있을까.
그러다 언제였더라, 일과시간이 끝나가던 무렵 복도에서 중대장님을 마주쳤다.
'어 그래. 내일 분대장 내려놓지? 호랑이가 이제 이빨이 빠져서 어떡해.' 하시길래 나는 웃으며 '하하. 임플란트 해야지 않겠습니까.' 하며 평소처럼 개드립으로 받아쳤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았다.
'오늘 나가서 소주 한 잔 할까?'
농담인 줄 알았는데 사무실에 와보니 반장님과 행보관님도 가신다며, '차는 누구 거로 갈까요?' 그러고 계셨다.
엥 진짜네? 경황이 없었지만 엉겁결에 반장님 차에 올라타 영외로 나가고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영내에서 짬밥 먹고 있을 후임들을 생각하면 짜릿했다.
족발집이었다.
간부님들이 여기 마늘족발이 죽인다며 종종 언급했던 가게였다. 점호 전까지 돌아가야 하니 짧고 굵게 먹자고 하셨다.
중대의 주요 보직자들이 술자리에 모이니 세팅이 빛보다 빨랐다. 병장이고 나발이고 거기서 제일 막내였으나 내가 손 쓸 틈이 없었다.
마늘족발에 소주 한 잔 들이켜는데 혀에 쫙-쫙 달라붙는 것이 끝내주더라.
지난 체육대회 때 어쩌다 배운 주도(酒道)를 기억해 상표를 말아 쥐고 잔에 닿지 않게 기울여 빈 잔을 빠르게 채워 드렸다. 역시 에이스란다.
그렇게 무르익어가다가 중대장님께 '근데 왜 술 마시자고 하셨습니까?' 하니, 그냥. 그동안 굴려먹어서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랬다고.
우리 중대는 규모가 작고 간부 위주라 소대장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중대장님 입장에서는 행보관은 늘 바쁘니 병사 관리를 분대장에게 좀 많이 기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병사 치고는 꽤 높은 수준의 업무와 책임을 요구해서 미안했고, 군말 없이 잘 따라줘서 고맙단다.
'어.. 군말 좀 했습니다.'
하니 다들 깔깔 웃으며 '그래, 이렇게 된 거 다 털고 가라. 근데 알지? 나 아직 너 영창 보낼 수 있다.' 라며 세상 훈훈한 협박을 받았다.
나도 웃으며 나름 순화하여 지금 병사들이 어떤 것이 불만인지 전달했고, 평소 구상해 왔던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제안했다. 반응도 긍정적이셨다.
말해줘서 고맙다며, 이제 막잔하고 일어나자던 중대장님. 소맥을 말아주시겠단다. 맥주잔 줘보라고 하시더니 소주를 콸콸 부으셨다.
이 분 소맥이 뭔지 잘 모르시나? 이어서 맥주도 좀 따르시더니 '이거 마시고, 다 잊어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하고 싶은 일하러 가라. 부럽다!'
그렇게 남은 마늘족발을 집어 먹는데, 속이 후련하면서도 이 쉬운 걸 왜 이제야 얘기했을까 싶어 후회됐다.
꼭 족발에 소맥이 아니더라도 중대장실 찾아가서 이런 거 하라고 견장 달아준 것 일 텐데. 그걸 술기운에 기대 이제 와서..
그동안 중대장님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일 크게 된다 싶어 보고하려다 삼켰던 말들이 기억났다. 견장 달았으면 까불지 말고 그런 거나 좀 할걸. 너 때문에 후임들은 계속 그러고 살아야 하잖아.
취기 어린 한탄 속에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그날밤, 화장실 들락거리느라 잠을 설치다 복도의 시계를 보니 자정을 넘어 6월이 되어 있었다.
2018. 6. 1.
임기 끝났다.
난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