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언제나 맑음 뒤 흐림

동기가 옆산의 돌?

by 재룬

그렇게 두 번째로 통과한 군문(軍門).


진주의 가을 날씨는 끝내주게 맑았다. 가을이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했던가? 뭐 모르겠고, 앞으로 3달 동안 다리 마비되는 일이나 없었으면 좋겠다.


부사관후보생.


예비역 병장에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계급이 부여됐다.


하사와 병장 그 사이 어딘가의 계급. 정식 부사관이 아니기에 '후보생'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생각보다 살 떨리는 명칭이다. 그야말로 '후보'이기에 언제든 짐 싸서 나가야 하는 수가 있다.


3차전형까지 거쳐 이곳 부사관교육대대(부교대)에 왔으나 바로 부사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3개월 간 혹독한 훈련과 엄정한 평가를 이겨내야 눈부신 임관식에서 계급장을 수여받고 진정한 부사관, 공군의 간부가 될 수 있다.


간부의 계급장은 국가 상징물인 무궁화 위에 새겨진다. 따라서 그 자체만으로 시사하는 바가 병사 때와는 전혀 다르다. 내 계급을 무궁화가 떠받치고 있는 만큼, 그 위에서 한층 더 조국에 충성하고 한 점 부끄럼 없어야 한다.


조국의 믿음에 부응할 수 있는 군인이 되고자 이곳 진주까지 거슬러 올라왔으나.. 실상은 많이 달랐다.


그래.. 후보생은 당연히 서툴다.


과거 군 경력이 있는 후보생이 아닌, 미필 상태의 후보생이라면 더욱 넘어지고 다칠 수밖에 없다. 자꾸 까먹고 실수할 수밖에 없다. 알아도 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중에 쌩 민간인 출신이었음에도 훈련을 따라가는 속도가 남다른 친구들이 있다. 군필자도 대체로 그렇고.


이렇듯 교육훈련이 시간적으로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초반, 300명 넘는 청춘들의 능력이 제각각이므로 후보생들 사이에서 성취도의 차이는 분명히 발생한다.


여기다.


여기가 한 기수의 아주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이 속도의 차이가 자칫 동기끼리의 불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누군가가 잘 중재하는 것. 이것이 한 기수의 성패를 가리는 첫 번째 분수령이다. 여기서 너도 나도 '탓'하기 시작하면 동기가 동기로 보이지 않고 CCTV처럼 보일 것이다.


똘똘 뭉쳐서 나아가도 이게 될까 말까인데,

총구를 이상한 데로 겨누게 되는 수가 있다.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을 기다려주고 끌어줘야지, 느린 사람한테 빠른 사람 쫓아가라고 재촉해서는 안된다. 그게 됐으면 진작에 빨리 했겠지?


군대 자체가 무슨 일 터지면 연대책임이 강한데, 하물며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후보생들은 예외일 리가. 오히려 더욱 가중된 책임이 모두에게 부여된다. 이른바 '동기부여'라는 이름의 얼차려. 물리적으로 동기를 부여해 준다.


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죄책감을, 누군가는 원망과 분노를 가지기도 한다. 이어지는 연대책임에 후보생들 마음속 깊어진 감정의 골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하.. 또 저 XX 때문에..'

'몰라.. 나만 아니면 돼..'


흔히 군대에서는 '중간만 하라'고들 한다. 너무 잘하려다 다치지 말고, 너무 못해서 평가 망치지도 말고. 적당히 중간만 하라고들 한다. 정말 마음 편한 말이다. 근데 뭐 하나만 물어보자.


중간만 하러 들어오셨어요?


부사관이라는 신분이 장교와 병사 사이의 중간 계급이라고 해서 생활도 훈련도 중간만 하겠다? 그렇다면 방향을 대단히 잘못 잡은 것이다.


부사관은 간부고, 간부는 '책임을 맡거나 지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간부후보생이라면 지도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벌써부터 방관을 일삼는다면 임관 이후의 삶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럼 나는 뭐 했느냐.


나는 자기도 같은 후보생이면서 군필자랍시고 뭐라도 되는 양 자꾸 이래라저래라 나서면 꼴 보기 싫을 것 같아서 소대에 뭔가 문제가 생겨도 딱히 개입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동기가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보고만 있지 말아야 했다. 적절하게 나서서 동기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잔소리꾼을 자처할 줄 알아야 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다들 떠들지 말자.

줄 좀 맞춰서 잘 서보자.

목소리 더 크게 내보자.

동기끼리 싸우지 말고 풀자.

한마디가 그렇게 부끄럽더냐.


'다른 산의 모난 돌도 옥을 깎는데 도움이 된다'는 뜻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동기끼리 쓰면 안 된다.


동기는 옆산의 돌이 아니다.

동기는 오답노트가 아니다.

동기는 서로 동기(動機) 되어줘야 한다.


그땐 이런 걸 전혀 몰랐던 한 후보생이 잘못한 동기를 죽일 듯이 째려보며 엎드려뻗쳐 있다.


진주의 가을 하늘은 항상 맑았지만,

엎드려뻗친 나는 땀으로 비가 왔다.


결국 자기도 똑같은 놈이었으면서

본인은 그저 운이 좋아 피해 갔으면서

타의로 흘려야 했던 땀이 그땐 죽을 만큼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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