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힘들었거든요..
우! 리의 가슴마~다!
불타오른 정열~! 공군의~! 빛~!
부사관 후보생! 우리는 부사관!
공군 부사관후보생 출신이라면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푸른 창공의 발진 군가'라 불리는 <부사관후보생가>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들에게 아주 유서 깊은 노래이며, 유격, 행군 등 큰 훈련을 끝냈을 때, 그리고 임관식에서만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원래 마지막 가사는 '부사관 후보생!'이지만 임관식 때는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행사도 종료되기에 '우리는 부사관!'으로 부르고, 쓰고 있던 정모를 창공을 향해 다 같이 힘껏 던져 올린다.
그렇게 한 겨울에 차갑게 얼어붙은 부교대에서의 뜨거운 안녕을 뒤로하고, 신임하사들은 각자 배정받은 특기학교로 흩어졌다. 가는 길에 보였던, 지난 12주 동안 땀나게 닳도록 누볐던 풍경들은 모두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임관휴가가 취소되었음에도 특기학교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던 하사들의 얼굴엔 아련하면서도 후련한 미소가 번졌다.
나는 항공통제 특기를 받았다.
항공통제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병사 시절 24시간 현행작전을 하는 곳에서 근무했기에 중앙방공통제소라 불리는 MCRC에 흥미가 일었기 때문이다.
특기분류 시험 때 영어성적이 동기들 중 가장 높았기에 1~3지망을 쓴 뒤 떨면서 기다리지 않고, 사실상 내 손으로 특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같은 소대에서 온 동기들도 10명 가까이 있어 두려움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과정 소개를 듣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였다. 교본은 무슨 둔기마냥 그 두께가 사람 한 명 소리 없이 담글 수 있을 만큼 위용을 떨쳤고, 평가가 매주 금요일마다 있을 예정이니 앞으로 4개월은 죽어라 과제와 공부만 해야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특기 잘못 고른 듯..?
심지어 특정 시험에서 여러 번 과락할 경우 '현역부적합심의'에 회부되어 옷 벗는 수가 있다고. 교육생들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교관님들. 왜? 하시며 당연한 거라고 하셨다. 예..? 어째서 당연하죠..?
너희들 돈 받잖아.
돈 받으면 프로야.
프로답게 행동해.
프로는 무조건 결과야.
우리의 직책은 교육생이므로 그 임무가 공부 열심히 하는 건데, 이제 정식으로 월급 다 받아놓고는 공부 안 하면 그게 직무유기고 방산비리가 아니면 뭐냐고. 대한민국에서 보통 돈 내고 공부하지, 돈 받으면서 공부하는 데가 거의 없으니 빨간 줄 그이지 말고 한 번 잘해보라고.. 팩트로 흠씬 두들겨 맞으니 어질어질했다.
항공통제 초급과정에서 가장 큰 애로는 용어가 낯설다는 점이다. 애초에 영어가 많이 쓰이는 데다 실생활에서 쓰는 단어도 작전적으로는 다른 의미인 경우가 많아 처음 들으면 인지부조화가 온다.
그러나 낯섦에 정답은 오직 '무한반복'뿐. 그래서 나는 물리적으로 시간을 계속해서 태웠다. 계속 읽고, 쓰고, 물어보고. 그러면 어제보다는 좀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니 더 잘 외워지고. 그렇게 시간을 계속 들이부었다.
그렇게 맞이한 첫 시험, 학습동기를 위해 바로바로 점수와 등수를 매겨 개인적으로 통보됐는데, 기다란 띠 모양의 성적표를 받아 자리로 돌아와서 더듬더듬 펴보니 생애 처음으로 받아보는 성적, 1등이 찍혀있었다. 마땅한 성취욕 없이 그저 빨간 줄 그이기 싫어서 '과락만은 안 된다'라는 마음으로 본 1차 시험이었으나.. 뭔데 이거..?
성적표가 다 뿌려지자, 동기들은 너도나도 성적 이야기에 북새통이었다. 나는 양 옆으로 쩌억 찢어지는 입가를 감출 수 없었지만 성적, 등수 이런 삭막하고 속물스런 얘기를 원체 싫어해 성적표를 냅다 가방에 구겨 넣고 입을 싹 닫았다.
그러나 속세로부터의 도망도 잠시. 동기들은 서로 성적표를 교환하다 1등이 누군지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내가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자 곧바로 가방에서 성적표를 탈취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동기들의 칭찬에 고래는 춤을 추다 그만 눈알이 헤까닥 뒤집혀버렸다. 그리고는 바닷물을 벌컥벌컥 들이켜 끝없는 갈증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됐다. 그때였다. 바닷물에 취해 아주 맛이 가버린 게.
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상식적으로 '열심히 해서 다음에도 1등 하자!'가 아니라 '앞으로 다 맞히면 1등 확정이네?'라는 괴이한 생각을 하고 만다. 도대체 왜..? 아마도 '꿈이 커야 그 조각도 크다' 뭐 그런 말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지금 보니 좀 미련하네.
그래봤자 고만고만한 신임하사들끼리 시험 봐서 그중에 1등인 건데, 그땐 그게 출세로 직행하는 티켓처럼 간절하게 느껴졌다. 또한 자대에서 처음 인사드릴 선배들에게 1등이라는 성적만큼 최고의 첫인상, 최고의 자기소개가 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공부라는 건 효율이 굉장히 좋았다. 더 이상 후보생 때처럼 흙바닥에서 땀 뻘뻘 흘리며 굴러도 윽박을 당할까 말까 한 파리목숨 같은 삶이 아니었다. 더 이상 엎드려뻗쳐 빨간 모자의 내려가. 한마디에 지구를 떠받들지 않아도 됐다.
그동안 온몸이 근육통으로 쑤셔서 힘들었던걸 떠올리면, 공부는 가장 쉬운 것이 맞았다. 당장 그거 좀 놀고 싶다고 드러누우면, 나중에 과락.. 강제 자습.. 재평가.. 족쇄가 채워져 더 피곤해진다. 역시 제때 공부하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었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의 뜻, 그건 기만질이 아니라 팩트였다.
편하게 앉아서 수업 듣고, 공부하고, 좋은 성적 받으면 스스로도 뿌듯하고,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다. 심지어 교육생이긴 해도 정식 직업군인이니 때 되면 월급도 따박따박. 게다가 1등에게 주어질 학교장 명의의 대령상까지. 도저히 공부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고작 첫 시험이었으므로, 2002년의 히딩크 감독처럼 아직 배가 고팠다. '무소유'라는 말을 참 좋아했는데, 점점 '풀소유'가 하고 싶어 자습실 구석에 고래 한 마리가 풍덩 처박혔다.
고래의 구부정한 뒤통수를 보아하니,
당분간 뭍으로 나올 생각은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