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생은 항상 아니라고 하지

스승은 계속 생긴다

by 재룬

아닙니다!


평화로운 주말, 한 후보생의 외침이 울린다.


저런, 후보생이 뭔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뭐가 또 아닐까? 아마 소대장님으로부터 받은 질문은 '하기 싫냐?' 또는 '집에 갈래?'였을 .


이야, 소대장님께서 후보생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었으나, 후보생은 '하기 싫고', '집에 가고 싶지만' 여기서 이룰 것이 남았기에, 밖에서 나를 지켜보는 가족들이 있기에 '뭐가 아닌데'라고 되물어도 후보생은 일단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 후보생은 항상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후보생은 그런 질문에 항상 아니어야 한다.


유명한 Q&A가 하나 있다.


Q)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A) 후보생에게 시킨다.



이후 코끼리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웬만해선 다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것을 해낸다. 그리고 해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스승들이 있다.


장장 12주. 주요 훈련을 모두 건강하게 마치고 임관식 예행연습이 다가왔다. 임관식 자체는 영광스러운 자리이나, 그 예행연습은 사실 상당히 고되고 지루하다. 왜냐하면 수상자가 아닌 이상 제자리에서 몇십 분을 가만히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어진 12주차의 후보생들의 마음과는 달리 소대장님 입장에서는 임관식이란 그 과정이 어떠했건 간에 이 행사 하나만으로 이번 기수가 훈련을 잘 받았는지 그 여부를 교육사령관님을 비롯해 사령부 고위 참모들은 물론 국민들께 보여드리는 자리였기에 굉장히 예민하게 준비하신다.


그래서 내일모레면 아쉬운 인사를 하며 떠나보내야 하는 제자들이지만 완벽한 임관식을 위해 연장을 챙겨 나사 빠진 우리들을 끼익 끼익 세게 조이셨다. 그땐 듣기 싫은 잔소리였지만, 그 잔소리를 해야만 하는 스승들의 마음 또한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이쯤 되니 그분들이 좀 달라 보였다. 공포가 아닌 존경의 대상으로. 악마가 아닌 천사로. 빌런이 아닌 스승으로.


학교를 다 졸업하고, 이제 내게 스승 같은 분이 또 있을까 싶었는데 여기서 또 여럿 알게 되었다. 그래, 어딜 가도 스승은 계속 있더라. 안 그래도 지루한 예행연습, 고마운 분들을 한 분씩 떠올리며 남몰래 슬쩍 페이드 아웃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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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이 너무 좋아서 쉬는 날에도 총 쏘러 가는 게 취미라던, 아주 총에 미쳐가지고 강의를 하시던 화기학 교관님. 교육훈련은 저렇게 시켜야 하구나. 본인이 그 과목에 미쳐있어야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는구나. '교관'의 표본이었다.


아침 점호 때 애국가 부르는 소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군인이 태극기 보면서 애국가 부르는데, 아침이라 목이 잠기나? 목 좀 풀자'라며 오전 일과에 시간적으로 지장이 갈 만큼 얼차려를 주신 보급소대장님. 우리는 그날 이후 애국가를 악을 쓰면서 불렀다. 그분은 군인으로서 '기본'을 넘어 '근본'을 알려주셨다.


마지막으로 우리 소대장님. 그분의 다른 별명은 의리소대장이었는데, 그분의 카톡 프사 중에는 후보생들로 '의리'라는 글자를 만들어 찍은 사진이 있을 정도로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었다.


언젠가 동기끼리 말다툼을 하다 욕을 써버린 순간을 지나가던 소대장님께 걸린 적이 있다. 다들 '와 쟤는 이제 큰일 났다..' 싶었는데 이게 웬 봉변인가. 소대 전체가 집합 당해 비 오는 어느 날 밤, 한참 전에 졸업한 유격체조를 먼지 나게 받았다.


욕을 뱉은 것 자체도 잘못이지만, 두 사람이 욕을 주고받을 정도로 사이가 악화되는 동안 너희들은 뭐 했느냐고. 둘이 저렇게 되는 동안 도대체 어째서, 그동안 '의리'를 그렇게 외쳐왔는데, 이렇게 뒤통수칠 수 있느냐고 큰 실망을 표하셨다.


당사자들 탓이라며 원망하고, 그 녀석들에게 들리라고 앓는 소리 내고, 눈에서 레이저를 쏘고,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얼차려를 받던 우리는 일순간에 숙연해졌다.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우리는 동기간의 '의리'를 먼지 풀풀 날리며 몸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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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번져오는 PTSD에 그만 예행연습이 한창인 행사장으로 정신이 돌아왔다. 여러모로 잊지 못할 아득한 기억들이다. 밝은 조명 아래 서있어 안 그래도 눈이 부신데, 그런 흑역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운 좋게 그런 훌륭한 스승들을 만나 늦게나마 소중한 것들을 배웠고, 이제 감히 그들과 같은 신분이 되고자 임관식장에 우뚝 섰다.


코로나19로 인해 임관식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고, 현장에는 관객 없이 우리끼리 진행되는 조용한 임관식이었지만 덕이었는지 객석에 계신 우리 소대장님이 아주 잘 보였다.


KF94 마스크 때문에 눈만 보였지만, 양끝이 주름진 것으로 보아 환히 웃고 계셨다. 원래 그러면 안 되지만, 나도 마스크 뒤에 숨어 입만 씨익 웃었다. 그래, 코로나 땐 표정 숨기기가 참 편했지. 왠지 모르겠지만 따뜻한 온기에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소대장님이 객석에 가만히 앉아 행사장을 내려다보시는데, 더 이상 어떤 말도 필요 없는 스승의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스승과 제자라면 알 수 있는 그런 마음. 그 몽글몽글한 무언가가 수두룩 빽빽 들어찬 그 마음을 말이다.


훈련받는 내내 반어적으로 계속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숨만 쉬다 운 좋게 임관만 하라고 하셨던 소대장님. 덕분에 우린 숨만 쉬지 않았고, 뭉치고 부대끼며 땀 흘려 여기까지 왔다. 자대에 가서도 숨만 쉬고 있지 않으리라.


다 쉬어 쇳소리만 나던 목이었음에도 억지로 목소리를 긁어 악을 지르면서 동료가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보고만 있지 말라고 소리치셨던 조교님. 자대에 가서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팔목을 잡아챌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그동안 숱하게 받아온, 우리를 흔들리게 했던, 초라하게 만들었던 질문들을 지금 다시 물어봐주셨으면 한다.


여기 신임하사가 창공의 보라매로서 힘차게 날갯짓하며 그 모든 질문들을 받아칠 준비가 됐다.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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