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고래불 1

아름세계 2025년 1월호 ㅣ 연작 소설 ㅣ 강아름

by 강아름 Jan 11. 2025
아래로

 나는 검은 바다로 향한다. 달마저 흐릿한 컴컴한 밤, 싸늘한 바람이 자동차 안으로 불어와 손과 발이 아리다. 눈동자에는 끝없는 어둠이 놓이고, 고막에는 삭막한 마찰음만이 울린다. 페르세포네여, 나는 그대를 기다리는 나무입니다. 당신의 사랑만이 나를 숨 쉬게 합니다. 세상을 향해 간절히 피어난 꽃잎을 그대 여린 손바닥으로 살며시 품어줬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아, 당신이 없을 때 누구에게 나를 세놓아야 합니까······. 몸은 딱딱하게 굳었고, 영혼은 지쳐 쓰러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 나아가고 있는 것은, 핸들만 잡고 있으면 알아서 목적지를 향해 굴러가는 '크루즈'라는 위대한 기능을 맘껏 뽐내고 있는 자동차에 몸을 의탁하고 있기 때문이요, 칠흑 같은 우주와 거친 아스팔트 사이를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는 가로등 불이 나의 심장에 낭만이라는 영혼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호>하고 입김을 불어,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숨이 눈앞에 영혼처럼 떠오른다. 자꾸 스러지는 것이 안타까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숨을 내쉬지만, 그림자 속으로 흩어져 버린다. 조금씩 죽어가는 기분, 나라는 원자의 집합이 조금씩 불규칙해지는 기분, 익숙한 찬바람이 나를 감싼다. 팔과 다리가 얼어붙으며 감각이 점점 옅어지고, 갈 곳이 없어진 저릿한 영혼이 심장을 조여온다. 그 순간, 쓰나미처럼 기억들이 몰려온다.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왔다가 흩어지고, 놓쳐 버린 사랑이 왔다가 흩어지고, 길을 잃어버린 아이의 꿈이 왔다가 흩어진다.


 나도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에서 남아도는 빛을 윤슬로 반사해 내는 파도 위로 날아오르고 싶다.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 모든 옷을 벗어 던져버리고 평선을 향해 헤엄쳐 나아가고 싶다. 그러나 막상 푸른 바다에 다다르면, 나는 맘껏 자연의 축복을 즐기는 이들의 노랫소리에 합창하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보고 들으며 흐뭇해 보이는 정도의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 미소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푸른 바다에서는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검은 바다에서는, 적어도, 두려움이라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흑암 속에서 나는 영원을 찾아낸다. 영원! 그것은 밤하늘과 섞인 검은 바다다. 검은 바다의 파도는 푸른 바다에서와 달리 단 한 순간도 예측할 수 없다. 그 혼돈에 압도된 나는 무릎을 꿇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뇌를 꺼내 영원에게 바친다. 아무런 명령을 받지 않는 팔과 다리는 혼돈의 흐름에 따라 흘러간다. 어떤 제약도 없이 모래사장 위를 헤엄치고 바다 위를 달려간다. 추위도 잊은 채 발가벗고 바다로 몸을 던진다. 파도와 하나 되어 솟아올랐다가 영혼처럼 부서진다. 고래와 함께 스프링처럼 바다 표면 위로 날아올라, 물을 분수처럼 뿜는 그의 등에 올라탄다. 아무도, 나 자신조차도, 나를 감히 멈추지 못한다.


 나는 지금, 검은 바다로 향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통영 가는 버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