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세계 2025년 2월호 ㅣ 신작 에세이 ㅣ 돌멩이
영화감독을 꿈꾼(다고 말하고 다니기만 한) 지 딱 10년이 되었다. 이제는 영화감독을 꿈꾸지 않는다. 언젠가는 영화 ‘감독’이 되지 못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 업계에 붙어있기만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한 것 같다. 그런데 이제 그런 생각도 (대부분)없어졌다. 멋들어지게 "영화 그만뒀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동안 영화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잊고 있던 이름들의 근황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가장 많이 묻는 말 중 하나는 "영화 한대?"이다. 나와 같은 단계의 영화과 학생들 혹은 영화 업계 지망생들은 보통 "영화를 한다"라는 말을 "감독을 꿈꾼다", "자기 영화 만들고 싶어한다"와 같은 말로 썼다. 영화를 한다는 말은 자기 영화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본인의 작품을 만들고 상영하고, 그 영화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진정한 의미로의 '영화'로 거듭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우리는 보통 영화를 만들 준비를 하는 단계까지 "영화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영화를 한다는 건 사실은 실체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영화를 한다는 건, 보이지 않는 못과 보이지 않는 망치를 찾아 벽에 박는 일과 같다. 영화감독 지망생들은 ‘못을 잡고 망치질이 제대로 되기만 하면 어느 순간부턴 쉬워지겠지’라고 생각하며 방바닥 어딘가에 있는 망치와 못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대부분은 둘 중 하나를 찾지도 못하고 포기한다. 간신히 찾은 이들도 못을 벽에 박으려다 다치기도 하고, 벽에 망치질하기도 하고, 못을 떨어뜨려 다시 방바닥을 뒤지기도 한다. 우리가 보는 영화의 감독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 벽에 못을 박아낸 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감독들은 그렇게 못을 수십 개 수백 개를 박아낸 사람들일 것이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그야말로 끊임없는 자기 의심의 연속이다. 처음에는 의욕에 넘쳐 보이지 않는 망치를 찾아 바닥을 훑기 시작한다. 그런데 점점 이런 생각이 든다. '망치가 진짜 있긴 한 건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아, 좀 폼나게 찾는 방법 없나?'.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재밌을까?', '남들에게도 이게 재밌을까?'. 그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내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재밌다는 말을 들어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재밌다고 해주는 말일 수도 있지'. 현실적인 질문들도 계속 떠오른다. ‘이걸 지금 내 단계에서 찍을 수 있나?’, '돈이 얼마나 들려나?', '아 여름 배경이면 장마철이랑 겹치려나?', '겨울 배경이면 해가 빨리 져서 찍기 힘들려나?'.
이렇게 의문 속에 갇혀 있는 동안 내 주변의 사람들은 각자의 적극적인 방식으로 못과 망치를 찾아 나선다. 바닥을 기는 사람, 굴러다니는 사람, 냄새 맡는 사람. 나는 생각한다. ‘뭐야 쟤네 무슨 뻘짓을 하고 있어? 저렇게 굴러다녀 봤자 찾을 수 있겠냐? 바보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에 대한 의심만 키워가며 겁내는 동안 누군가는 자신을 믿고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것 중 대부분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품들이다. 누군가가 보고 혹평할 만한 작품들. 습작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결과물들도 더러 있다. 나는 그런 작품과 그걸 만든 사람을 비웃었다. ‘이렇게 만들 거면 안 만들지’, ‘영화 진짜 구리다’. 그러면서 난 질문이 생기지 않을 만한 ‘완벽한 이야기’를 찾아 나서고 있었다. 아직도 빈손인 채로.
곧 누군가 망치를 찾아냈다. 땅을 짚자마자 망치를 찾은 이가 보인다. 처음에는 질투에 반감이 들기도 한다. ‘무슨 짚자마자 있어. 진짜 운이 타고났다. 나는 왜 저런 운이 없을까?’. 저 멀리 누군가는 못을 찾았다. 하나둘씩 무언가 집어 들기 시작한다. ‘저런 애들이 영화 하는 건가?‘. ‘완벽한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동안, 누군가는 작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면서 내 안의 의심은 더 커진다. 이제 문제는 영화에서 '나'로 옮겨지기 시작한다. '재능이 없는 걸까?'하며 또다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 이번에는 내가 ‘진짜 구리다’며 욕하던 친구가 못을 찾아냈다. 그리고 난 또 생각한다. '아, 난 안 되나 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결국 빈손으로 방에서 나왔고, 뭐라도 해보려고 방바닥을 기어다니던 친구는 여전히 방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다. 그는 '실패자'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의 나는 '실패'라는 숭고한 단어도 붙일 수 없는 비굴한 인간이었다. 난 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패배자'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글을 써달라고 했을 때, 뭘 쓸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나를 좀 더 예쁘게 드러낼 방법도 있었다. 혹은 점점 좁아지는 한국 영화계의 바늘구멍을 비난하면서 현실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적어도 영화 말고 다른 진로를 택하여 그것에 닿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희망적인 여운이라도 남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가장 나를 잘 표현할 방법인 것 같았다. 아름세계의 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쓸데없이 우울한 얘기를 잔뜩 써줘야만 했다. 그리고 그 덕에 나를 더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웃긴 얘기지만 영화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정한 뒤 정말 많이 울었다. 무언가를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는 패배감은 내가 살면서 느껴본 굴욕감 중 최고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패배자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 몸부림치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괴로웠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인정한다. 나는 패배자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한 뒤에 뭘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아직은 패배자 신분이라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보이지 않는 망치와 못이 가득한 방에서 뭘 배워왔는지 말해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