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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16. 2024

부고

  철호는, 좀 늦게 연구실을 나와 사당으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동창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정혜를 보낸 지 5일이 지나고 있었다. 뭔지 모를 허전함이 속을 자꾸 텅 비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느낌, 형체 없는 마음의 배고픔 같은 것이었다. 좀 취했으면 좋을 것 같은 금요일 저녁이 시작되고 있었다. 역 출구에서 나와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술집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곳곳의 술집들이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1층 카페 옆 계단을 밟고 3층까지 올라간 곳에 작은 아자카야가 있었다. 입구에 일본 고양이 인형이 손을 흔들었고, 그 옆에 우유곽 모양의 사케가 큰 통으로 하나 놓여 있었다. 따뜻한 조명 아래 은근한 빛을 발하는 조형물들이 즐거운 술자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마다 풀어놓는 보따리들이 풍성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중에 철호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급히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몇 년째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노인이었다. 동창들이 2차를 위해 일어섰다. 철호도 함께 일어났다. 노래방으로 갈지, 그냥 간단히 맥주정도를 더 먹을지 의견이 갈렸다. 철호가 노래방을 고집했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 철호였다. 아내 정혜의 일이 석연치 않아 자신이 바보 같았다는 생각, 아이들이 내일 오후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술자리에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의 반대편에는, 그게 뭐든 그냥 오늘만 살자는, 막 가보자 식의 오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철호가 목청을 돋우며 노래 하나를 할 때마다, 주머니의 핸드폰을 자꾸 꺼내보았다. 시간을 보고, 문자를 확인하고, 어느 구석에 무엇이라도 소식이 있지는 않은지 자꾸만 핸드폰 화면만 꺼내 보았다.

  자리로 돌아온 철호가 다시 일어섰다. 화장실을 핑계로 밖으로 나온 그는 로비 카운터 앞에서 아가씨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성찬이와 눈이 마주쳤다. 성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어깨를 쳤다. 그 길로, 노래방을 빠져나온 철호는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응급실이라, 대기 중인데, 아버지가 정신없이 헛소리를 해댄다는 것이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정신이 돌아오곤 했던 아버지였다. 

  급하게 택시를 탔다. 병원까지 한 시간 거리였다. 응급실에 도착한 철호는 어지러운 속에 동생을 찾았다. 아버지가 누운 병상이 보였다. 아버지는 링거를 하나 팔뚝에 꽂고 잠들어 있었다. 동생이 일어난 자리에 철호가 침대 맡에 가서 앉자, 눈을 감고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을 중얼댔다. 그렇게 한참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중에  갑자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누굴 외쳐 부르는 소리처럼 들렸고, 뭔가를 외치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그 소리들은 본인이 내는 가장 큰 고함소리와 같은 인상을 받았지만, 옆 사람이 듣기에는 미약하기 그지없는 사그라들어가는 목소리였다. 그러다가 팔을 치켜들어 뭔가를 향해 앞으로 내지르기도 하였다.


  "내가 집에 왔더니, 거실에 드러누워서 저러고 계신 거야."

  "혼자서?"

  "누가 있어? 우리 집에 다 있었지. 그냥 잘 계신 줄 알았어."


  동생네 집이 길 건너 동이라 지척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가 자는 모습을 보고 식구들이 다 집을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대로 아버지는 대체로 멀쩡한 편이었다. 열흘에 한번 정도 꼴로 자꾸 옆으로 쓰러지면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는 증세가 나타났고, 변을 지리면서부터 스스로 그 참괴함을 참지 못하는 노인이었다. 그렇게 정신만은 늘 멀쩡하던 아버지였다. 그걸 식구들이 변함없이 믿었던 것이다. 


  "의사, 여기 의사 없어?"


 갑자기 철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단내가 났고, 입안으로 혀가 말려들어 갔고, 반쯤 뜬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셔츠는 풀어헤쳐졌고, 쟈켓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보였다. 짧은 호흡이 가쁘게 왔다 갔다 했다.


  "여기 환자가 죽어간다고! 여기 사람 죽이는 의사들만 있어?"


  안 그래도 시끌시끌한 시장바닥 같던 응급실은 철호의 목소리로 더 아수라장이 되는 것 같았다. 동생이 철호의 팔을 잡아끌었다.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린 간호사가 달려왔다. 맥박을 짚어보고, 수액 상태를 체크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는 다시 까무룩히 가라앉아 버렸다. 간호사가 아버지의 어깨를 흔들었다. 간호사가 데스크로 달려갔고, 잠시 후 심전도 기계를 밀고 나왔다. 젊은 의사가 아버지를 벗겨 놓고 여기저기 고무흡착기를 부착했고, 그대로 아버지는 침대째로 몇 명의 간호사들이 붙어 어디론가 밀고 가버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철호와 동생이 더 이상 따라 들어가지 못한 문 밖에 중환자실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여 있었고, 아무도 열지 못하는 문처럼 굳게 잠겨버렸다. 

  그렇게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현재시간 3시 35분부로 운명하셨습니다. 급성 패혈증입니다. 대퇴골절이 왔어요, 좀 더 일찍 오셨어야..."

  "뭐야? 너희들이 알아냈어야지? 그걸 말이라고 해? 응?"


  철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자기 앞에 벌어지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동생의 철호의 손을 잡고 흐느꼈다. 동생의 입에서 아버지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철호는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이 눈앞에 버젓이 벌어졌다. 쉽게 한 사람의 생명이 갔던 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눈앞에 계시던 아버지가 갔다. 철호는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지 납득할 수없었다. 그것은 마치 한 사람씩 그의 곁을 떠나가는 모양새여서 더 그 상실감은 컸다. 사실 아버지의 병은 10년은 묵은 세월을 견딘 병이었다. 80이 그때부터, 여러 가지 약에 의존했고, 대학병원에서 타다 놓은 약만 한 보따리였다. 그런 아버지가 혈관성 지병에서 시작한 아버지의 병은, 끝내 밝히지 못했던 혈종암에 이르렀고, 그 끝에는 알츠하이머증상까지 뒤섞였다. 그런데도 잘 견뎌낸 세월이었다.  

  시골에 가서 요양도 거부한 아버지였다. 식구들은 단지 알츠하이머 초기인 줄로만 알고 있었고, 병의 심각성은 철호만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위해서도 그랬지만, 수술비도 수술비려니와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수술을 하면 더 괴롭고 힘든 상황이 닥칠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도 그랬고, 더욱이 어머니에겐 병수발로 죽으란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가셨다."


  철호는 가장 먼저 정혜에게 전화를 돌렸다.


  "미안해요, 뭐라고요?"

  "아버지가 운명하셨다고..."


  정혜는 말이 없었다.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전화기만 귀에 댄 채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몇 시야... 누구야?"


  다니엘이 정혜의 등뒤로 올라오며 잠긴 목청소리를 냈다. 정혜가 몸을 뒤채며 바르게 눞자, 다니엘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며 그녀를 품속으로 들도록 안았다. 방안에는 그의 숨소리가 화이트 노이즈처럼 퍼졌다. 정혜는 온전히 하나의 다른 몸이 되어 누운 것만 같았다. 


  "알았어요."


 간신히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을 때, 바뀐 화면은 4시 35분을 나타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정혜는 전화기를 들고 거실로 나와 큰 애에게 전화를 했다. 밝고 귀여운 목소리가 저쪽에서 들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엄마가 티켓은 연기시켜 놓을테니까, 지금 아빠한테 전화해 봐."


  큰 애가 금방 목소리가 변해서 울었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여행사 미세스 조에게 전화해서 티켓팅을 다시 하든지, 가능하면 연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알아봐야겠다고 정혜는 궁리했다. 시댁식구들 중 유일한 자기편이었던 시아버지였다. 마음속으로 참 많이 따랐고, 존경하는 분이기도 했다. 인격적으로 모난 데 없이 너그럽고 편안하게 잘 대해준 이해심 많은 분이었다. 

  정혜는 자신의 거취를 정해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이들은 이미 거기에 있고 자리를 보더라도 자신이 반드시 가야 할 큰며느리 자리였다. 

  날이 밝았을 때, 정혜는 여느 날이나 같은 변함없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 출근 준비도 해야 했고, 다니엘도 출근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이들이 돌아올 날이 미뤄졌으니, 서둘러야 할 일도 없는 것 같았고 여러 가지로 여유로웠다. 내일 출근만 아니면 딱히 오늘 집으로 돌아갈 이유도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날 그만 놔줘."


  정혜의 전화를 받은 철호는 한참을 멍하게 섰다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 울음은 목젖이 목구멍을 누르고 있다가 한참 만에야 터진 그런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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