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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19. 2024

미망

  사흘, 아버지를 화장하고 돌아오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응급실이 있던 대학병원에서 다시 아버지를 모신다는 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대로 있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동생들이 그대로 여기서 모시자는 이야기에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퇴짜를 놓았다. 너희들은 아버지 죽게 한 병원이 뭐가 그리 좋아서 눌러앉자는 거냐며 그들을 되우 나무랐다. 그래서 상조에 속한 장례지도사의 추천을 받아 집에서 가까운 역전 장례식장을 선택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도시의 외곽에 가족공원이 있었고, 화장하고 장지로 이동하면 그만이었다. 가난한 자의 비애는 죽어서 드러났다. 땅 한 뙈기 사놓지 않은 아버지는 할머니도 시립묘지에 모셨고, 자신도 시립묘지에 묻혔다. 죽어서도 서로 다른 지방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다. 죽어 들어온 순서대로 차곡차곡 반틈 없이 땅 속으로 들어갔다. 묻고, 연방 제를 올리는데, 한쪽에선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묻기 위해 땅을 파댔다.

  그렇게 삼일 째 되는 날, 한 사람이 땅에 묻혔고, 지상에서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상은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잔잔하게 평정을 유지하는 모습이 마치 얼어붙은 호수의 수면 같았다. 냉정하고 차갑게,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 아버지의 삶이었다.


  "잘 모싰다. 상심 말고, 고마 드가 쉬거라."


  먼 지방에서 올라온 어른들이 기차시간을 놓칠세라 서둘러 작별의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들도 다음 차례가 자신들임을 알고 있을 터였다. 친가와 외가 쪽 사람들이 물갈라지듯 양갈래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내 집의 방들에 동생들과 조카들이 그득했다. 책꽂이로 사방을 돌린 안 방에서는 아이들이 끼룩대며 장난을 쳤고, 침대가 있는 내 방에선 나와 병선이 침대에 걸터앉고, 여동생 선희가 바닥에 앉아 방명록과 부조봉투를 나누었다. 놀랍게도 장례식장의 비용을 제하고 남는 돈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니가 손님 맞는다고 고생 했으니 남은 돈은 니가 가져가는 게 좋겠다."

   

  남은 돈을 모두 여동생에게 몰아주는 것에 아무도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건 어머니의 뜻이기도 했다. 살림살이 변변찮은 막내를 위한 어머니의 배려였다. 장례식장에서 남은 음식을 넉넉히 싸 온 어머니가 저녁을 여기서 먹고 가자고 했고, 병선이 그럼 일정이 자꾸 딜레이 된다며 한시라도 서둘러 각자 집에서 눈을 좀 붙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선희 또한 굳이 형제들을 붙잡지는 않았다.


  "큰 오빠가, 혼자 남잖아."

  "애들하고 같이 있을 건데 뭘..."

  "그렇구나, 애들이 안 가고 있었지? 아이구 내 새끼들..."


  어머니가 아이들을 보러 방을 건너가자 병선이 말했다.


  "형, 형수는 왜? 안 온다고 그래?"

  "응, 돌아간 지 얼마 안 돼서 비행기표를 못 구했나 봐. 휴가철이잖아."

  "그럼, 늦게라도 오긴 오는 거야? 그때 다 함께 식사하자. 오늘은 그만 돌아가 쉬고, 엄마도 몸이 성치 않아."

  "그래, 빨리 쉬게 해 드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각자의 살림이 있는 저마다의 생활공간으로, 아이들을 싣고, 어머니를 모시고 각자가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말없이 조용히 사라져 갔다. 장례를 치르는 삼일 내내 처가의 식구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연락을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아이들 통해 소식을 들어 알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정혜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버리고 난 후, 일부러 처가 쪽 식구들과 연락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저쪽에서도 누구 하나 연락을 해오지도 않았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장모가 살고 있는 먼 강릉을 방문했던 적은 있었다. 강원도에 쪽으로 강연이 잡힌 날이면 일부러 그쪽을 들러 장모의 얼굴이나 한번씩 보고 돌아오곤 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관계는 매정했고, 사근사근하지 못한 성격 탓에 서로 집을 오가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뒤로 물러나 버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끊어지는 관계의 매개가 정혜였다. 매개가 없어졌으니 연결고리도 끊어지는 건 당연했다. 서글프고 허술한 관계들이었다.   


모두가 돌아간 밤, 고요와 적막 속에 철호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밤이 내려온 낮고 평온한 무게가 쓸쓸한 사이로 몇 대의 자동차가 내는 경적 소리와 바람을 가르는 오토바이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번호키가 작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현관에 구두를 벗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여자였다.


  "불 좀 켜, 이러고 있어, 정말!"


   혜연의 목소리였다.   


  벽에서 딸깍, 소리가 나며 방에 불이 켜졌고 혜연이 문지방을 넘어왔다.


  "좀 이러지 말자, 저녁은 뭘 좀 먹었어?"


  혜연의 손이 어깨 위로 올라왔다.


  "아유, 얼굴이 다 푸석하네. 일어나, 어서."


  혜연이 나를 일으켜 세우며 등을 떠밀었다.


  "물 받아 줄 테니 몸을 좀 담가봐, 훨씬 좋아질 거야. 이럴 땐 그저 담가 줘야지."


  혜연이 보여주는 미소가 씩씩했다. 나를 화장실 앞에 세워 놓고 아직 벗고 있지 않은 검정 양복을 벗기고, 셔츠를 벗게 하고, 바지 혁대를 풀게 했다. 옷을 받아 든 혜연이 그것들을 침대 위로 던져 놓고 다시 철호에게로 돌아섰다.


  "다 벗어."


  혜연의 손에 속옷까지 넘겨주었다. 내 눈에는 혜연이 여기서 죽 살았던 사람처럼 보였다.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병수발 들 때와 그대로 닮아 있었다. 무기력한 노인을, 역시 무기력한 노인이 돌보는, 마치 자기가 자기를 만지는 듯한 위로 같았다. 혜연의 상실이 나의 상실과 연결되는 연민, 그런 감정의 점액질이 혜연과 나 사이에 끈적거렸다.

  러닝 팬티를 한 손에 뭉쳐든 헤연이 욕조 앞으로 가서 물을 틀었다. 샤워기 물로 욕조를 한번 헹궈내고 욕조 배수구를 마개로 막았다. 그리고 샤워에서 욕조로 흐름을 바꾼 물줄기가 욕조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 와서 앉아봐."


 나는 혜연이 시키는 대로 그녀를 지나 욕조 속에 발을 넣고 그 위에 섰다. 혜연이 어깨를 눌러 바닥에 앉게 했다. 무릎을 세워 앉은 발등 위로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나는 발을 뺐고, 다리를 벌렸다.


  "왜? 뜨거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혜연은 레버를 오른쪽으로 틀어 물의 온도를 조절했다. 밤이, 시간이 변하여 눈 안쪽으로 잠겨가는 것처럼, 물은 차곡차곡 쌓여, 내 몸도 밤처럼 물속으로 잠겨 들었다.

  욕조에 담긴 물이 욕조높이까지 차오르자 물을 껐다. 피어오르는 김이 수면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금방 욕실은 뿌연 증기가 퍼져나갔다. 나는 고개를 젖히고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내게 일어난 일은 가라앉지 않는 흙탕물이 되어 마음을 산란했다. 누군지도 모른 다른 남자에게로 가버린 아내, 그와 함께 있다는 새벽에 대한 상상이 아쉬움과 분노, 상실감과 배신감 같은 감정으로 뒤죽박죽이었다. 갑자기 닥쳐온 이별, 준비하지 못한 작별에 나 혼자서 종지부를 찍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되지 못했다. 너무나도 일방적이어서, 그것은 통보도 받지 않은 고통이었다. 충분히 상대와 논의와 정리를 거친 후에 벌어져야 할 일이었다. 이런 상태에서의 수습은 아직도 덜 풀어놓은 짐 때문에 도대체가 여행 가방을 꾸리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앞으로 가봐."


  눈을 뜨자 혜연이 욕조 앞에 서 있었다.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싼 채, 목욕타월로 몸을 감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타월을 풀어 벽에 붙은 옷걸이에 걸고 한 발을 욕조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몸을 앞으로 당기자 물결을 일으키며 수면이 출렁댔고, 그녀가 내 뒤로 천천히 몸을 집어넣기 시작하자, 욕조의 물이 큰 소리로 넘쳐 밖으로 흘러넘쳤다.


  "이럴 때 유레카라고 외치는 거야! 유레카!"


  혜연은 뒤에서 나를 감싸 안으며 혼잣말처럼 웃음을 웃었다.


  "바보야, 그걸 잘 가라고 내비뒀어? 뺨떼기를 날렸어야지! 어디서 바람을 펴?"


  웃기게도, 혜연의 말은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정혜에게 내가 한 짓은, 관용을 가장한 쾌락이었고, 일종의 폭행이었다. 그것도 비굴하고 추한 바닥을 다 보인 지저분한 남자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그런 종류, 양아치나 할 법한 처신이었다. 차라리 정혜를 때렸더라면, 내가 지금 이런 기분은 아닐 것만 같았다. 내가, 나도 모르게 선택한 그것은, 꼬리표처럼 계속 내게 붙어 나를 괴롭혔다. 멋있고 쿨한 선택, 아무도 다치지 않는 선택이라고 생각한 나의 선택은 정혜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를 남겼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았다.

  혜연의 얼굴이 등에 닿았다. 그리고 그녀의 말랑한 살들이 나를 감쌌고, 그녀의 두 팔이 나를 둘러 가슴을 어루만졌다.


  "이제 다 끝났어, 쉬어."


  혜연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 있는 그대로 다 놓고 가라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나도, 너도, 그냥 거기 있게 놔둬,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세상에 어딨겠어, 아픈 사람끼리 이렇게 보듬고 사는 거지, 붙들지 말고 내버려 둬, 흘러가버릴 거야."


  혜연의 가슴이 뜨거운 물속에서 등에 닿으며 내 몸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손이 허리를 감싸며 미끄러져 내려왔다. 배를 어루만질 때마다 찰랑대는 수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졌다. 맺혔다 떨어지고, 또 맺혔다 떨어지는 수도꼭지 끝에 고인 물방울을 응시하며 물이 떨어지는 주기에 맞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열다섯, 열여섯, 이런 식으로 마음속으로 카운트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말을 하는 순간, 숫자는 멈추고 시간도 멈춘다. 바깥 사물의 세계와 나는 숫자로 연결되어 있다. 숫잔 시간이다. 세상과 나는 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했다. 단지 그걸 잊기 위해 그것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가는 그 무료한 시간을 메꾸기 위해 나는 숫자를 세는 것이다.

  떠나간 사람과 나 사이에는 기다림이 없었다. 기다림이 없다는 말은 떠나간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들이었다. 기다림이 곧 시간 자체였다. 작별, 이별, 헤어짐은 둘 사이에 존재했던 기다림을 삭제했고, 자연스럽게 시간도 함께 삭제되고 사라졌다. 

  나는 슬펐고, 슬픔 끝에 눈물이 흘렀고, 눈물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그렇게 시간에 갇혀 어둠 속을 헤매는 나를 혜연이 가만히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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