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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20. 2024

이혼, 남자를 바꾸는 일

  다니엘이 알려준 이혼 방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유책 배우자라 할지라도 외국에 체류 거주 중일 때는 법정 비출석 사유에 해당되어, 궐석 재판으로 간단히 합의 이혼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한국으로 나가지 않아도 됐고, 그래서 불편하게 서로 얼굴을 보면서 다시 한 공간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게 요지였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었다. 하나를 가지려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했다. 무엇을 많이 놓아둔 채로, 다른 것을 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마치 쇼핑과도 같았다. 자금은 한정적이다. 두 개를 다 살 수는 없다. 이 두 가지 조건 속에서 한계 효용의 법칙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남편에 대한 한계효용이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다니엘에 대한 한계효용이 높아졌다. 결국 효용은 체감되고, 균등하게 변할 것이다. 효용은 인간의 욕망이다. 욕망은 선택이다. 지금, 내 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놓여 있다. 두 개를 를 다 손에 쥘 수 없는 상황, 하나는 오래 묵은 것이고 하나는 새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새것이 가지는 효용 역시 체감되고 균등한 것으로 변질될 것이다. 그땐, 그 어떤 것도 효용적 가치는 같아진다. 그때가 되면 나는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도 역시 나와 같이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품이 아니며, 나도 역시 상품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은 그렇게 단정적으로 결정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이 물건으로 취급되지 않는 인간으로서 슬픈 일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정리되지만, 감성적으로는 끊을 수없는 정리들이 속속들이 잔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이 헤어졌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관계나 분리할 수 없는 감정의 잔존물들이 아니라,  너무도 속물적이게도 한국에 있는 아파트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아파트 두 채와 오피스텔 하나, 지금 남편이 살고 있는 집을 제하면 아파트 한 채와 오피스텔 하나였다. 아이들 장래를 위해 미리 마련한 것들이었다. 대출금이 반을 넘는 그야말로 투자였다. 남편의 월급과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월세에서 이자가 나가고 있었고, 중요한 것은 모든 명의가 내 앞으로 되어 있었다. 문제는 다시 한국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편 몰래 다녀가기도 그랬다. 남편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명의변경도 해주어야 할 판이었다. 이 모든 게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들이었다. 누군가 대신해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남의 이혼 살림에 선뜻 나서 줄 사람이 물망에 떠 오르지 않았다. 상기에게 부탁하고 싶었지만, 그는 또 무슨 일이 더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대리인일 수 있었다. 역시 공식적인 대리인을 세워 남편 몰래 팔아버린다면, 그야말로 나는 간통이라는 썅년의 주홍글씨가 낙인으로 이마에 찍힘과 동시에 각종 뉴스에 등장해 패널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람들의 저녁 반찬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다니엘이 소개한 한국의 법무사 전화번호를 받았다.   


  "걱정 마세요, 저희들이 논스톱 서비스를 강점으로 하고 있으니까,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 안 쓰시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몇 가지 서류만 저희에게 보내주시면..."  


  그리고 며칠 후, 법무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쪽 남편 분이, 재산 정리도 안 됐는데, 뭘 벌써 이혼청구냐며, 막무가내 화를 내시더라고요. 조만간 직접 연락하신다고..."


  법무사는 걸림돌에 걸렸다는 불평을 해댔다. 그러면서, 전문가연하며 코치랍시고 한 말이, 서류정리해야 할 문제들을 빨리 정리해 놓아야, 절차가 빨리 진행될 것이고, 속 썩을 일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건 나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 일을 직접 하기 싫어 너 같은 법무사를 쓰는 거 아니냐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한국과 미국은 너무 멀었다. 그저 남편에게서 연락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문제로 먼저 전화를 하긴 더 싫었으니까. 나는 양심적인 유책 배우자였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변함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난 목금토 3일을 몰아서 일했고, 월화수에는 근무패턴을 내게 맞춘 다니엘과 그의 집에서 지내다가 아이들을 픽업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어어갔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내 처지가 궁지에 몰리게 되자 나는 나대로, 다니엘은 다니엘대로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주기에 마음을 다 했다.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는 아이들과 지내며 다니엘과 함께 해변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지역의 자연사박물관을 돌아다니거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다니엘과 오전 타임 골프를 다녔고, 그렇게 오전에 몸을 푼 우리 둘은 서로의 몸을 탐하며 각자의 존재감을 서로에게 드러냈다. 조건반사와도 같은 욕정이 손끝에서부터 일어나, 발끝까지 뻗어 내렸다. 아마도 나는 팽팽한 긴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완이 필요했던 것 같았고, 더 깊게는 오랫동안에 걸친 갈증을 안고 있었던 듯했다. 나에게 그의 몸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에게도 내 몸이 필요했을 지도 몰랐다.


  “이 샘은, 매일 누가 와서 먹나요?”

  “다니엘이 와서 먹지요”


   아이들처럼 허물없이 서로에게 벗은 몸으로 누워, 서로의 몸을 돌아 엎치락대며 낄낄댔다. 그에게서 성이 주는 자유로움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삶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경계없는 자유를 주는 성적 에너지는 더 이상 좋은 게 없는 지경에 나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게 뭐였든 기쁨의 절정에 놀라고 두려워 소리지르게 했다. 그와 함께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설렘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고, 이제 막 만들어진 것 같은 자존감의 무게로 나를 만족과 충족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어떤 한 순간의 내 모습은 이렇게까지 나를 들뜨게 하고,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사람이 지금 내 옆에 누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꿈만 같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있는 그대로 내 몸은 그를 향해 열렸고, 더 활짝 열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애타게 즐거웠다.  그렇게 아늑하고 고운 감정의 결로 나는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그와 함께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었고, 남편과 찍은 사진을 전기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태워버렸다. 그 자리에 다니엘과의 사진을 끼워 올려놓았다. 조금씩 당황하고 놀랐던 아이들도 그런 변화에 조금씩 적응했고, 쉽게 현실을 인정했다.

  

  "엄마, 아빠랑 정리는 한 거야?"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아직, 거의 다 왔어."

  "아빠가 안 됐다는 생각은 우리도 하지만,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문제 같아."

  "고마워, 엄마를 이해해 줘서."


  셋이서 저녁을 먹으면서 큰애가 한 말이었다.


  "우리도 아빠가 필요해, 현실적인 진짜 아빠 말이야."

  "그래, 아빤 너무 멀리 있어."


  해변을 걸으며 앞서 가는 아이들끼리 주고받던 말이었다. 저희들끼리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다니엘의 손을 잡았다. 다니엘이 허리를 안았고, 나는 그에게 몸을 기대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 건너에 뭔가를 두고 왔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미국에 와서 지금처럼 안정된 직장을 얻기까지, 4년이 걸렸다. 시험에 통과하면 정식 간호사로 근무하게 되고, 그러면 연봉은 더욱 안정적이 될 것이고, 어쩌면 아이들 둘과 함께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십년을 채우고 65세 이후 연금생활자가 되어, 내 한 몸 건사하는 건 쉽게 내 힘으로 해결할 수있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며 어딘가에 있을 내 삶의 빈틈을 찾으려고 생각했다. 다니엘과의 관계, 당장 내년부터 큰 애가 대학에 가고 나면, 그리고 2년 후 작은 아이마저 대학에 가고 나면 이 집에는 나 혼자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떠나갔을 때, 난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다니엘이 큰 의지가 되지 않을까, 아이들에겐 아빠가 필요했고, 나에겐 든든한 남자가 필요했다. 그렇게 우린 한 가족이 되는 것이 여러 모로 바람직했다.

  남편의 전화가 잦았다. 위임장을 보내달라고 했고, 나는 병원 변호사에게 연락해 법률적 권한을 위임하는 위임장을 만들어 파일로 만들어 이메일로 전송했고, 다시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보내준 이메일에 정산 내역을 모두 적어놨으니까, 할 말 있으면 전화해라."


  그게 다였다. 남편의 이메일을 열어본 나는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과 오피스텔을 팔았는데, 정산한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일억 조금 넘는 돈이 남은 걸로 계산되어 있었다. 대출을 갚고,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줬고, 나머지는 병원비와 장례식 비용, 그리고 남편이 차를 한 대 샀다고 써 있었다. 남편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집 역시 대출금이 집값의 반을 넘어 모두 다 다 팔았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추신으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내 지난 시간은, 내 기억에 없는 시간이었다. 지난 7년, 니가 나를 비운 사이, 너의 몸을 대신한 타인의 몸에 나는 한 없이 추락했다. 나에겐 욕이었고, 추하고 더러운 7년이었다. 결국, 넌 나에게서 내 삶을 삭제했다. 지금 나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빈 껍데기가 되었다. 

  잘 가서, 잘살아라. 아이들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그 반대는 어떤 의미인지, 또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지 않다. 그날 어떤 한 순간의 잘못된, 우유부단했던 내 선택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으로, 모든 것이 귀착된다. 다, 나의 잘못이었다.

  니가 내 몸을 떠난 그 때의 일을, 내가 그때 알았더라면... 내가 좀더 너에게 폭력적이었더라면... 너에게 이런 일은, 아니 나에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모든 건 치밀하지못한 감정처리와 부정확하게 물러터진 내 마음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이제 그 새끼에게 연락해라. 그래서 모든 게 준비되었으니 전화를 하라고, 이제 니가 필요로 하는 서류를 나에게 요구하라고 말해다오.'


  남편이 말하는 '그 새끼'는 이혼대행 법무사를 말했다. 나는 즉시 법무사에게 전화했고, 그는 남편에게 전화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법무사는 이혼결과 통보를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민원사이트를 통해 등본을 때 보았고, 남편의 이름은 내 등본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이혼은 내 삶의 기록과 흔적을 지워주었다. 멀리서, 너무도 손 쉽게 나는 한 남자를 내 인생에서 정리했고, 곧바로 그런 자유로움을 느낄 틈도 없이 다시 나는 한 남자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었다.

  다니엘, 내게 무릎 꿇고 자신을 내게 바치겠다고 고백한, 나보다 5살 어린, 쿨하고 단단한 몸을 가진 젊은 남자, 이제 그가 완전한 내 남자,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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