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탕 Nov 14. 2024

철호와 혜연의 대화

"밖에 저 여자 맘에 안 들어."

"날 돌봐줬던 언니야. 그럴 자격 있다고 생각해."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하겠어?"

"뭘 하고 싶은데?"

"밤새..."

"밤새 뭘?"

"하자."

"언니가 밖에 있는데?"

"아, 모르겠다... 문 닫고!"

"그건 아닌 거 같애."

"왜 지금 가려고 그러는 건데?"

"언젠가 서로 갈 길 가는 거 아니었어?"

"그래도 지금은 아닌 거지. 내가 어떤 상황인지 당신이 너무 잘 알잖아."

"그래서 가려는 거야."

"지금까지 우리가 보낸 시간들은 뭐야? 왜? 지금…"

"아픈 사람을 데리고 있기 싫어."

"알면서 아픈 사람을 버려? 당신 그렇게 모진 사람이었어?"

"내가 당신을 품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우리 결혼하자!"

"장난해?"

"장난 아냐! 이게 장난으로 보여?"

"너무 앞뒤 없다. 철호씨 그렇게 즉흥적이었어?"

"그럼 난, 어쩌란 말이야?"

"자기 관리, 제발 마음을 가라 앉혀. 앞뒤를 생각해."

"어떻게? 당신이 지금 더 부채질하고 있다구!"

"잘 판단해 봐, 당신 똑똑한 사람이고 대단히 독립적인 사람이잖아."

"당신은 지금 날 버리는 거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버림받아야 하는 거야?"

"겉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더 깊이 들여다 보란 말이야.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날 위한다고? 내 삶이 없어질 거라고?"

"당신 안에 내 삶은 없니? 내 삶은 생각해봤어? 왜 자기만 생각해?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었어?"

"당신도 이혼해, 어차피 살을 섞지도 않을 남편이고, 애들 다 커서 이해해 줄 거야."

"그게 말처럼 쉬울 거 같아? 난 최소한 불륜한 여자로 낙인찍히긴 싫고..."

"그럼, 이런 거 예상 못했어? 그냥 우린 살만 섞다 끝날 거라 예상한 거야? 그렇게 일시적인 파트너 관계였어?"

"그게 우리 한계 아닐까? 이럴 줄 몰랐다는 당신이 어리석은 거 아냐? 아무리 못 나도 남편은 남편 자리에, 아무리 잘 나도 당신은 당신 자리에 있는 게 맞아. 서로 자리를 바꿀 순 없는 거라고. 인정할 건 인정해."

"아... 당신은 그런 생각으로 날 만난 거였구나. 남편에게 채울 수 없던 거, 그 논술선생인가 하는 작자한테 당한 배신, 이런 거 하고 아무 관계 없이 난 버리는 카드였단 말이지?"

"제발 그런 식으로 우리 관계를 몰고 가지마."

"그런 거 아니면 뭔데 우리 관계가?"

"당신도 가정이 있었고, 나도 가정이 있지? 그게 이상적이었단 말이야. 서로가 잘못 하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이, 그게 우리 둘 사이를 유지하고 있던 규칙이야."

"뭐야? 우리 둘 사이에 그런 게 있었어? 나도 모르게?"

"결혼서약에도 몰랐던 규칙과 약속이 있었던 것처럼, 당신하고 나 사이엔 그런 약속이 있었어. 어차피 깨지면서 이렇게 밝혀지는 거야, 서로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이었는지 그때서야 알게 된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이혼했기 때문이라면 당신도 이혼해, 그러면 둘 다 싱글되잖아, 그럼 조건이 똑 같지? 그럼 되겠네?"

"그게 강요한다고 되는 일이야?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집에 전화를 해대는거야? 내가 낙인찍히고 부정한 여자가 되어 이혼했으면 좋겠어?"

"솔직한 심정으로 그랬으면 좋겠어."

"와... 진짜 당신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남의 불행을 자기 행복으로 삼겠다?"

"당신을 자유롭게하는 거 아냐? 남편으로부터, 그 뻔뻔한 역겨움에서 풀려나는 거 아냐?"

"당신은 부정한 아내를 왜 용서해주려고 했는데? 응? 그거 연민이야, 바보야? 당신이 바람난 아내를 용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가슴에 손을 얹어 봐, 자격있어?"

"아.. 미치겠다."

"우리, 서로 깎아내리지 말자, 나 비참해지려고 해."

"관계의 불완전성…“

“서로에게 완벽해 질 순 없어.”

“채울 수 없는, 메꿔지지 않는 틈 같은 거였어.”

“착각 아닐까?”

“그래, 이건 인간의 오류야, 생물학적 오류.”

“진화에는 금기가 없다던데, 개체가 아니라 집단에 희망을 가져봐.”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어."

"희망은 있어."

"어떤 게 지금 나에게 희망이야? 내게 희망란 게  있는 거 같아?

"지금 보다 내일을 생각하자, 오늘만 살 거 아니잖아."

"나, 지금, 내일이 없어! 내게 무슨 내일이 있어? 마누라 얼굴도 모르는 어떤 놈하고 도망갔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리고 내 내 옆을 지켰던 당신도 지금 날 떠나려고 하잖아, 난  학교도 휴직했다고! 내가 무슨희망이 있어? 잘 될  거라고? 난  잘 하고 싶지 않아, 뭘 잘해, 이미 다 망쳤는데? 응?"

"난, 당신이  징징대는 걸로  밖에 안 보여. 당신 글쓰는 사람이잖아, 그런 거 있지?, 승화, 승화시켜봐. 이 모든 상황을 제대로 써보라구. 실명거론만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다 써도 좋아, 우리들이 나눴던 대화, 적나라했던 섹스까지 다 써도 좋아, 내가 허락할게."

"딜이야?"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해줘."

"당신 가정에 문제가 생겨도?"

"그건 내가 온전히 감당할게."

“정말 이렇게 끝낼 수 밖에 없는 거야?”

“당신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런 거 같아.”

“당신을 남겨야 할 거 같아, 어디에라도 잊지 않도록, 새겨 놓고 싶다.“

“당신의 기억에 남고 싶어. 당신 글을 읽으면서 나를  떠올리고 싶어,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을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 대신 박제 같은 건 하지마, 인터넷이든, 영안실이든 박제는 무생물이 되는 거니까. 당신과 내 기억 속에 내가 살아 있고 싶으니까.”

“간혹 소식은 전해줄 거지?”

“그러고 싶지 않아. 과거로 돌아 갈 순 없어. 시간은 지금으로만 존재할 뿐이야.”

“인정없다.”

“이쪽 세계가 원래 그래.”

“아…”

“당신도 보험을 들어 두라고 말해 줄 걸 그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