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어때?"
"뭐가?"
"서로 잘 맞냐고..."
"응, 잘 맞아, 나쁜 건 없는 것 같애..."
"잘됐다, 잘 맞는다니. 걱정 많이 했거든..."
"뭐? 영민이? 아님, 철호씨 때문에?"
"그래, 그때 나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르지?"
"항상 고마워, 언니가 내 옆에 있다는 게..."
"그 사람 눈빛이 단념할 눈빛이 아니었어, 넌 안 보였겠지만, 옆에선 난 그게 보였어."
"그정도 아냐, 그 사람 프린스에 안 갔으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를 상황이었어."
"그 정도였어?"
"그래서 그 사람 말을 다 들어준 거야. 애 아빠도 그 사람 전활 받았고 큰 애도 그 사람 전화를 받았어. 내가 거실 중간에 앉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거야. 그래서 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거지."
"그런 일이 있었구나. 불안했겠다."
"다 끝난 부부관계라 해도 서로 지켜야 할 예의는 있는 거라 봐. 아이들이 받을 상처는 결국 내게로 되돌아올 거고."
"이미 상처는 깊으니 그걸 굳이 드러내놓지 않으려는 거지... 알겠어."
"그렇기도 하고, 내가 그런 여자가 된다는 게 참을 수 없어."
"모든 게 한 끗 차이야, 창녀가 될 건지 귀부인이 될 건지는 몸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고 봐."
"맞아, 몸은 문제가 되지 않아, 결국 마음과 정신의 문제야."
"그걸 움직이는 건 감정일테고..."
"맞아, 날 이렇게 흘러가도록 만든 것도 감정이야, 이성이란 건 크게 작용을 하지 못해, 살아가는 건 감정의 문제야."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일이 많잖아."
"맞아, 캐나다에서도 그랬던 것 같고, 김선생 때는 애들이 중간에 끼어 있어서 케이스가 좀 미묘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런 조건들이 날 자유롭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어떤 경우엔 규칙이 있을 때 더 자유로움을 느낄 수있어, 규칙은 구속이잖아, 아이러니하지..."
"조건과 규칙을 벗어나는 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같다는 생각이야. 이를테면 난 너를 만나는 동안은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이런 규칙말이야. 그런 걸 어기면 바닥이거든, 더블 데이트도 약속이라는 규칙 속에 들어와야 허용되고 그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거지."
"그래, 그래서 내가 미리 보험을 들어 놓으라고 한 거야."
"하하, 그래서 사무실 갈 때마다 영민이가 나와 있었던 거고?"
"그래 이것아... 보험은 유지기간만 잘 버티면 크게 보상되는 거니까, 사람 관계에서 보험은 필수야. 하하하..."
"언니, 나 이제 쉰 하나이야. 늙는 것도 순서가 있어?"
"왜, 요새 힘드니?"
"보약을 좀 챙겨야할 것 같기도하고 체력이 달리는 것 같아. 기운이 없어."
"밥이 보약인 거 모르니? 내가 쉰 다섯 고개 넘어가는 이 나이에 팔팔한 이유가 뭔지 아니? 그냥 제 시간에 꼬박꼬박 챙겨먹고 비타민 털어넣고, 시간되면 운동하고 그러는 거야, 건강에는 별 수 없어. 이게 다야."
"나도 운동은 하잖아, 파트너 바꿔가면서, 얘는 몇 년이나 갈까? 2년이 권태주기라는데, 언닌 어때?"
"넌 연하니까 니가 체력이 달리는 거고, 난 연상이잖아 그것도 앞에 숫자가 달라, 그러니 난 열심이 키운 근육 쓸 일이 없어."
"운동은 근육을 단련하고 심폐기능을 끌어올리는거야. 섹스만한 운동이 어딨니? 언니가 덤벨 100번 들 때, 난 전신 한번 하는 걸로 만족이야. 헬쓰장에서 안 쓰는 근육을 키워주니? 그럴려면 돈들여 피티 받아야 하지? 근육이 긴장하고 신경이 곤두서고, 땀이 비오듯하고, 심장이 마구 뛰는 그런 거, 트랙 백바퀴 뛰어봐, 황홀경에 진입하는 그게 되나, 힘들어 죽을 걸? 반복만하는 운동은 유지가 안 되는거야. 이것도 반복인데, 어디 힘들어? 언니 그거 하면서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한 적 있어?"
"하하, 그래 니 말이 맞다. 운동에 진심인 넌 장수하겠어요... 하하"
"이 나이에 파트너가 셋이었다면 많은 거야? 영민이 한테 물어봤더니 걘 손가락으로 다 못 센다는데? 그런 거야? 남자들은? 이제 마흔 다섯된 남자애가 그 정돈 보통인가?"
"그것도 안 그런 애들은 안 그래, 걔가 유별나게 그쪽으로 밝은 거겠지. 너 사무실에서 한번 보고 얼마나 다리 놔달라고 보챘는지 알아?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거 같애. 넌 섹스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니?"
"그 자체를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몰라도 그건 사랑하곤 다른 거지. 유흥을 사랑이라고 부르진 않잖아."
"유흥이라고 하기엔 좀 가벼운 것 같고, 인간의 능력 중에 가장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교감활동이라고나 할까?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이지, 영혼까지 일체가 되는 극단의 체험은 이것 뿐일거야."
"그래서 난 유물론자라니깐, 영혼이라는 것도 여기 몸에서 나오는 거란 말이지. 정신 없는 몸은 가능하지, 그런데 몸 없는 정신은 불가한 거야."
"근데, 말이야, 이 몸뚱아리, 신체,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의 만물, 다 물질이지, 그리고 이 우주 전체도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이 모든 걸 어떤 정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니? 형상 없는 순수 정신, 그걸 절대자라 부를 수도 있을 거고, 종교에서는 신,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언니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본 것도 아니니..."
"그걸, 절대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린 그 절대 정신의 창조물이라는 거야, 이 세상 전부, 우리가 말이야."
"모르겠다, 내가 볼 수있는 건 이것, 내 손가락과 내 몸, 그리고 내 앞에 앉은 언니뿐이야."
"너와 나 사이, 우릴 둘러싸고 있는 이 허공엔 공기가 가득차 있다는 걸 알지, 여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어 있진 않아."
"정말, 정말 그러네!"
"우린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애."
"어렵다..."
"예를 들어 이런 거야. 시간이 이렇게 테이블 모서리 선을 타고 흘러간다고 생각해 봐."
"음..."
"이렇게 흘러가는 사이에 넌 캐나다도 갔고, 김선생도 만났고, 그리고 여길 돌면 철호씨가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 여길 돌아 나오니까 영민이가 있어. 그리고 이 시간의 선이 어디로 가는 것 같아?"
"원래 있던 자리로?"
"원래 있던 자리로 온 것 같지만, 아냐. 이 우주가 생겨먹은 걸 설명하는 이론에 다층우주라는 게 있어. 제자리에서 계속 돌고 있지만 제 자리가 아닌 거야, 이해해? 이렇게 빙글빙글, 큰 우주에서 내려다 보면 나사가 한 쪽 방향으로 계속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거야. 그 나사가 알고 보니까, 서로 연동되어 동시에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던 거지. 이런 세계에서는 시작도 끝도 무의미해. 영원한 성장과 수축의 생명현상이 반복되는 거지."
"그럼, 이 테두리를 한 바퀴 돌 때마다 한 명씩을 만나고 있는 거고,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다는 뜻이야?"
"그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의 방향이야. 정해져 있다기 보다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에 가까워. 언제 턴을 할지 그건 순간의 결정이고 선택이거든, 이 테이블이 사각이라면 한 텀이 네 번일 거고, 이게 12각형이라면 12명을 만나는 거지."
"와우, 언니, 굉장하다, 멋지고 희망적인데? 내가 쓰레기가 아니란 걸 이렇게 증명하는구나."
"하하... 근데, 이 테이블을 흔들면 어떻게 될까? 이 시간의 선에 붙어 있던 우리가 바깥으로 팅겨나가 버릴 거야. 그럼 우린 우주에서 미아가 되어 버려.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고 삶의 끈을 상실하게 된다는 거지."
"그걸 왜 흔들어?"
"삶을 흔드는 건 여러 사건으로 닥쳐 와. 제이슨이 네 자리의 빈틈을 메꾸려 했던 일, 김선생이 널 갈아타려고 했던 일, 철호씨가 널 붙잡아두려고 했던 일, 심지어 영민이가 네 주변을 멤돌았던 일들, 그런 종류의 일들이 널 움직이게 만드는 거지. 그럼 넌 어떻게 되겠니?"
"선택할 수 밖에 없겠지. 손목을 그을 것이냐 말 것이냐, 뛰어내릴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런 거야, 우리가 삶을 놓아버리는 이유가 우리 깜냥으로 현실이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야.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버렸다고 생각하지, 그 때부터 사는 게 무의미하게 변하거든.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마음이 황폐화된다는거야."
"그럼 어떡해?"
"근데, 말이야. 이걸 흔들면 밖으로만 튕겨나가는 게 아니라, 안으로 시간이 쪼그라들기도 하거든."
"어떻게?"
"여길 봐, 이 드립 추출기에 물을 부으면 사방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분쇄된 커피 가루를 적실 거고, 뜨거운 물에 불려진 커피가루는 품고 있던 성분을 물 속에 녹여보낼 거야. 그렇게해서 이 추출기 아래의 구멍으로 모이지. 결국 이렇게 아래로 합쳐져서 한 방울씩 모여 떨어지는 걸 우린 커피라고 부르며 마시는 거지."
"그래서?"
"시간이 한 곳에 모이는 거야. 이렇게 일직선 상에 있던 시간들이 한 곳에 모이면?"
"뭐야? 하나씩 만났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다 만나는 거야?"
"어떤 충돌지점을 만나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거지."
"어떤?"
"그건 나도 모르지... 단지, 이런 걸 생각해봐. 철호씨와 김선생, 둘 다 함께 잔다고..."
"둘과 함께 잔다고, 그럼 셋이?"
"그래, 그게 가능할 것 같아?"
"음..."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언닌 그런 일이 가능해?"
"못할 일도 아니라고 봐."
"그런 일을 쉽게 말할 수 있어?"
"규칙이 정해져 있다면 말이야."
"그런 일에 무슨 규칙이 있어야 돼?"
"그런 일일수록 규칙이 필요할지 몰라, 잘못하면 팡하고 시간선 밖으로 터져 나갈 수 있거든, 그럼 우린 한순간에 우주 미아가 되어 버리는거야. 어제와 오늘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극에서 극으로 가는 거지. 그떄가 뵈면 니 삶만 달라지지 세상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자세히 말해봐."
"일테면, 존중의 규칙.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건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본다, 배경 같은 건 묻지 않아. 중요한 건 눈 앞의 사실이야. 학벌도 경제적 능력도, 문제될 건 없지. 중요한 건 신체조건이야. 호감이 없으면 시들고 마니까."
"그럴듯해."
"이상하지 않아?"
"뭐가?"
"왜 한 명씩 턴을 하며 만나야 하는지?"
"그럼 한꺼번에 떼루?"
"아니, 그게 아니라, 관계를 말하는 거야."
"관계?"
"그래 관계, 우린 보통 일대일의 관계를 소중한 관계라고 생각해, 남편과 아내, 자식과 부모, 그 사람과 나, 그건 모두 '너와 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거든. 그건 전형적인 서양식 사고야.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중심 사회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의 원형 쯤 된다고 이해하면 될 거야."
"그래서? 우린 안 그렇다?"
"잘 들어봐, 놀라 뒤로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정신 줄 단단히 붙잡고 들어, 이렇게 시간을 타고 흘러가면서 한사람을 만났어, 그리고 헤어지고 새사람을 만나 거야. 근데, 전에 만났던 헌사람하고 했던 걸 새사람하고 또 하는 거야. 보여준 걸 또 보여줘도 새사람은 싫증이 안 나지. 새로운 거야, 난 항상 그대로인데, 아니 어쩌면 나이들어 퇴화중인데 새사람에겐 새로운 경험인 거야. 이게 정말 놀라운 거거든. 난 언제나 프레시한 거지.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난 그대론데 날 신선하대는 거야.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내가 너고 너가 나니까, 이런 관계에서는 곤충 파충류들이 주기적으로 변태하는 것처럼 변태를 해줘야 하거든. 새 살이 돋아 새로 태어나는 거지. 알겠어? 인간이라는 생물의 생명연장술이라고 할까?"
"이해는 되는데, 현실성있는 말이야?"
"인정은 되는데 남 얘기 같지? 세상에 젤 재밌는게 남 얘기하는 거잖아. 재밌지? 이걸 봐, 이렇게 한 명하고 섞인 걸 이렇게 더하면 둘, 셋과 동시에 섞어도 커피는 커피야. 커피가 술이 된다거나 딴 게 되는게 아니거든. 그리고 뭣보다 중요한 건, 이 세상은 늘 그대로라는 거야. 내가 하는 이 행위가 이 우주에 손톱 만큼의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것은 영향력의 정도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아무 영향력이 없다는 뜻이야. 내가 남자 둘을 데리고 자든, 셋을 데리고 자든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 내가 남자 한 명을 두고 여러 여자들과 나누어 가져도 누가 슬퍼하거나 질투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럴 권리가 인간에게는 처음부터 없어. 난 이런 종류를 천부인권이라 생각해."
"천부인권을 인간으로부터 뺏어간 것이 법과 제도? 많이 가진 기득권자들의 논리?"
"빙고! 와우, 이해력이 진도를 앞선다. 너 같은 학생있으면 내가 뭔 걱정을 하겠니 진짜!"
"그럼, 캐나다 제이슨 부르고, 김선생, 철호씨 다 부를까? 영민이까지 오라고 해서 모임 호스트한번 해보라고 하면 걔가 좋아할까? 현여친의 전남친들을 불러서 정기적으로 모임 한번 하자고?"
"봐봐, 장난치지 말고, 내가 말하는 건 웃기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거야. 영민이하고 니가 자잖아? 그러면서 영민이한테 보여주는 니 모습들은 사실 이전의 다른 남자들에게도 다 보여줬던 거겠지? 설마 나 모르는 필살기 개발해 놓은 건 아니지?"
"사실, 나, 복상사 기술을 아직 안 쓰고 있거든, 남편이 덤비면 그 때 쓸라구..."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자 봐봐... 테이블을 흔들었어, 시간이 중심으로 몰려들어, 사건의 특이점에 모인단 말이지, 이렇게... 그러면 전혀 양상이 달라져, 이렇게 셋이 넷이 엉켜서 더 많은 커피를 만들어내고 서로의 농도가 같다면 커피농도도 변함없어. 다만 양이 많아졌을 뿐이야. 마실 게 더 많아진 거지만, 각자의 몫은 똑 같아. 우주의 생산법칙이야. 누가 더 많이 마시면 누군 덜 마시게 되는건 자연의 이치지만, 우주엔 그런 법칙 안 통해, 평균은 똑같다, 질량, 에너지는 늘 변함 없어. 우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셈이지. 종국엔 다 똑같아지는거야. 이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준다고. 제이슨하고 했던 건, 남편을 벗어난 새로움이라는 흥분이 페이크 친 거고, 김선생이 준 놀라운 경험들은 제이슨에게 이미 다 보여준 것들이었단 말이지. 그렇게 따지면 이미 새로운 건 없어, 파트너가 달라졌을 뿐이지? 그 파트너가 널 변태시킨 기제로 작용한 거야. 이제, 문제야, 봐봐. 이 시간은 뒤로 갈 수 없을까?"
"그건 아인슈타인이 이미 불가능하다고 얘기했잖아."
"아인슈타인은 안 된다고 말은 했지만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열어놨던 거였고, 호킹은 한가지 실험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줬지. 그건 코메디같은 이벤트였어.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려고 귀신을 초대해 놓고 초대시간에 오지 않았다고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던 거야.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건 속도와 위치, 그것들이 지닌 값의 비교를 통해 측정할 수 있는 상대적 비교치일 뿐이야. 절대시간 자체는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시간 자체를 측정할 수는 없어. 그러니 시간은 개념인 것이지 실체는 아니야. 어쩌면 우리가 허상 속에서 실체를 논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일 수 있어. 웃기는 일이지, 있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니 말이야."
"그래서 난 눈앞에 있는 것만 믿는다니까, 철저한 유물론자라구."
"다시 잘 생각해 보자, 현실적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머리속으로 돌려 봐, 무개념한 시간속에서 우리가 존재하는데 뭔들 못해 보겠니?"
"그래서?"
"과거의 남자들, 그들을 현재시간 여기에 소환하는 거야. 그들과 했던 일을 다시 해보는 거야."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왜? 영민이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그럼 복잡해질 거 같아."
"내가 그랬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니가 어디서 뭘 해도 세상에 눈꼽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할 거라고."
"할 수 있다고 쳐, 그 다음엔?"
"지금 바로 그 생각을 해봐, 내가 이 남자랑 했던 걸, 저 남자랑도 할 수 있는 건데,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고 한다거나, 동시에 한다거나 하는 일은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이유가 뭔지 말이야."
"파트너에 대한 존중 아닐까? 서로에 대한 존중같은 거?"
"그게 고정관념이고 관습이라는 거지. 아주 고약한 도덕률같은 거. 원래 그렇게 하라고 만든 건 인간이 그렇게 한 거지, 이 대자연, 우주의 법칙은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쓰거든! 설사 니가 죽어도 세상은 변함 없이 굴러가는 거야."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데?"
"도덕과 윤리는 인간의 천부인권, 자유의지에 배반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어떤 도덕률에 작용하는 죄책감이란 것은 인공적이고 사회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감정프레임, 집단이 주는 굴레같은 거..."
"그래서 위버멘쉬가 되길 바란다?"
"이그재클리, 앱슬룻트리 롸잇!"
"난 인간 사회가 거대한 거미탑같단 생각이 들어. 여왕개미를 위해 몸을 바치는 거지. 여왕개미는 생산을 하고, 일개미는 먹이를 물고 오고 탑을 쌓지. 병정, 님프, 모두 제 역할이 있다는 거니까, 유성생식으로 유전자를 완벽하게 갖춘 게 암컷이거든, 숫놈은 염색체가 하나밖에 없는 반편이야. 이런 지배체제가 완벽한 개미집 건축을 이루어 낸 거거든. 유전적으로 미성숙한 수컷들은 이런 일을 못 해. 이런 조직에서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
"근데 인간 수컷들은 왜 덜 떨어지는 건데?"
"발생학적으론 수컷이 진화의 최종단계이긴 해, 잉여염색체를 획득한 거그든. 개미 수컷은 완전히 와이가 없어, 엑스만 있다고."
"그래서 유전적으로 인간은 수컷이 우세하다?"
"진화론적으로 그렇지, 근데, 이 와이 염색체분석 과정에서 놀라운 걸 발견했나봐, 와이가 쪼그라들고 있다는거야."
"뭐야? 알파 수컷이 사라지는거야? 지질한 것들만 주변에 널리는 거고?"
"하하, 그래서 그런 건진 모르겠다만, 솔직히 남자들 얼마나 불안하니? 제 구실 못하니까..."
"그래서 잘못 하면 어떻게 된다고?"
"거열형으로 죽인단 말이야, 찢어 죽이는 형벌."
"와우! 정말? 무자비하다!"
"인간들도 그게 무서운거야."
"아! 그래, 형벌, 그것 때문이야. 형벌이 꼭 찢어죽이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 훨씬 디테일하지. 그래서 옳지만 그른대로 살아가는 거야."
"그렇게 하는 데도 이유가 있지."
"지금이 야만의 시대야? 너가 야만적으로 살고 있니?"
"야만적으로 당하고 싶긴 해."
"하하, 취향 존중해 줄게."
"진화도 무자비하긴 마찬가지야, 금단의 영역이 없다는 말 맘에 들어, 진화에는 터부가 없다."
"개체보단 집단에 희망을 걸어봐."
"시간을 동시에 존재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충격적이다. 그 것도 일종의 집단을 단위로 진화하는 방향인가?"
"항상, 우주의 미아, 형벌, 이런 걸 조심해야지. 나락에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야."
"그래 봤자 고립 아니겠어?"
"그거 우습게 보지 마라, 너 그런 걸 지금도 겪고 있으면서 그러니? 이런 병의 특징은 방어기제 형성이 중요한데, 한번 무너진 방어기제는 더 센 방어기제가 만들어지기 전엔 완치란 없는 거야."
"더 센 벽을 만들려면 더 센 놈을 만나면 되는 거 아냐?"
"그래서?"
"그렇게 되면, 자잘한 공격은 껌인 거지 뭐..."
"일리있다 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