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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Nov 09. 2024

웨딩마치

  "여기서 살려면 시민권이 필요할 거예요. 애들은 더욱..."


  다니엘이 내게 한 말은 그동안 지켜온 내 모든 신념을 허물었다. 이건 마치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이치와 같았다. 빨리 이해되는 그런 종류였다. 내가 시민권자가 되면 아이들 혜택은 더 많아진다. 그렇게 힘들었던 영주권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고, 그동안 여행비자에서 투자비자로, 다시 취업비자로 변경하면서 재정보증을 위해 통장에 잔고를 채워야 하는 일도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는 점, 아이들 생활과 관련한 일들, 특히 대학에서 받는 각종 장학 혜택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점에 마음이 한순간에 확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친정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친구들, 그리고 여기서 안면을 튼 모든 사람들이 어지럽게 떠오르면서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과 무심한 눈빛을 유지하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병원에서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른 채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집에만 오면 조였던 심장이 풀어지면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 모든 불편한 관계의 원인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죄인 된 자의 심정이었다. 여길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뭔지 매일 생각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관계를 더 힘들게 하는 일이었다. 7년의 미국생활을 접고 돌아온 한국에서 혼자가 됐다고? 그것도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싱글이 되는 여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어렵게 끊었던 관계가 다시 시작될 수 있었고, 특히 친정 식구들의 질타는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힘들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다.

  그나마 여기는 타인들의 시선만 견뎌내면 되지만, 이 사람들의 세계는 편도만이 존재하는 길을 가는 것처럼 너무도 좁았고 단조로웠다. 그 좁은 세상이 내게 쏟아붓는 따가운 시선은 견뎌낼 수 없을 만큼 일상에 녹아들었다. 그들을 피한다는 것은 햇볕을 받지 않고 길을 가는 것과 같았다. 그것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상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는 지옥, 무시할 수는 있지만 널리 퍼져있는 비난, 둘 중에 나는 저울질했고, 그나마 타인의 지옥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더 많이 뻔뻔하게 살아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의 가닥을 잡았다.

  나는 내게 좋은 것을 택했고, 그 선택이 도덕적으로 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속이는 짓은 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더 이상 내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낯선 사람이 옆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낯선 충격이었다. 7년 전 집 앞의 오뎅바에서 남편은 각자의 삶이 달라 하나가 될 수 없는 숙명을 이야기했다. 인간의 비극이 있다면 바로 그런 고독이라는 것이었는데, 고립된 존재임을 스스로 자처하는 남편의 마음에는 나의 흔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날밤 나는 내 마음의 그늘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원나잇은 가능한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렇게 이 년을 버텼고, 이혼이 마무리됐다. 나는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니엘을 맞아들였다. 이젠 그가 남편이 되어도 좋았고, 애인이 되어도 좋았다. 전과 달라진 것은, 그를 대놓고 환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마트며 한인 식당을 함께 돌아다녀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눈치를 볼 만한 제재가 제거됐다. 그래도 내 손이 닿지 않는 그들의 눈초리 깊은 곳에 숨어있는 부정이라는 딱지를 떼어낼 수는 없었다.  


  "언니, 많이 힘들었지?"


  은영이 전화를 걸어왔던 일이 있다. 한인 커뮤니티라고 해봤자, 교회와 마트, 지역정보를 퍼 나르는 사이트들이 전부였다. 은영이 아파트를 렌트할 때 입주자 모임에서 한국인 친구가 있다는 얘길 전해 듣고 알게 된 친구였다. 부동산 중개인이 한국인이 사는 아파트를 소개한 것이 내가 사는 아파트였고, 그렇게 은영은 내 사정을 알고 집을 오가며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나처럼 애들 둘을 데리고, 1년 늦게 들어온 은영은 처녀시절부터 여기서 대학을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서도 일처리를 잘했고, 어떤 때는 학교 일을 그녀에게서 전해 듣고 배울 일도 많았다.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외출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새벽에 들어오기도 한 그녀는 우리 집에 가끔 들러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입에선 술냄새가 났고, 여기선 다들 그렇게 살아, 라는 말을 남기고 자기 집으로 건너가곤 했다.


  "은근히 대단하단 말이야... 젊은 남자랑 결혼도 하고, 프레시하네..."


  다니엘이 집에 드나드는 걸 안 그녀가 말끝에 자신도 이혼하고 싶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푸념을 늘어놓은 일이 있었다. 그러곤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도 했다. 술을 마시고 횡설수설한 것인지, 속에 있는 진담을 말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둘 중 하나는 외로움에 허기진 사람들인 것 같았다. 밝게 웃는 그들의 이면에는 철저히 홀로 남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늘이 있었다. 빛 좋은 개살구들이었던 것이다.


  "여기 애들이 왜 성적으로 자유로운지 알아? 어릴 때부터 차가 있고,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천리만리 먼 곳으로 독립하기 때문이야. 그때가 성욕충만할 때니까..."


  은영이 깔깔 웃으며 목젖을 보였다. 밝은 여자였다. 한국의 남편에 대해 짜증을 참을 수 없어 애들을 다 데리고 들어왔다는데, 돈이 다 떨어지면 또 들어가야 하니까 일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앞뒤가 안 맞지, 놀 때는 같이 잘 놀구선 집에 들어앉혀 놨으니 넌 가만있고 나만 나가서 놀 거야, 이럼 말이 돼? 안 그래?"


  밤마다 백인들 클럽을 돌아다녔고 늦은 밤 문을 두드렸을 땐, 마치 환락의 축제에 다녀온 듯 흰말들의 친절함에 혀끝을 떨어댔다.    

  내가 은영을 보는 것처럼 누군가의 눈에는 나나 은영이나 별반 차이 없어 보일지도 몰랐다. 그걸 다니엘이 받아줬다는 생각은 그를 더욱 믿음 속에 살아 있게 했다. 그가 만들었든 내가 만들었든 우리 둘은 그 무엇 속에서 살아 있었다. 나는 그걸 보았고, 그걸 존중했고, 믿었다.


  "언제?"


  나는 가볍고 밝은 톤으로 대답했다. 어두운 그늘이 지워진 내 말이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다니엘은 그러지 않았다.


  "내가 알아봤어. 웨딩촬영은 예약이 밀려있다고 하는데,  여기 집은 바로 정리해서 내 집에 합치면 될 거고, 세리머니는 바닷가 교회에서 올리자. 전에 갔던 레돈도 비치 가던 언덕에 높은 교회 건물 하나 있었지? 우리 집이 다 크리스천이라... 미안해."


  그는 말이 나온 김에 줄줄이 일정을 구슬 꿰듯 읊었다.


  "바보, 미안하긴, 내가 고맙지."


  약속을 잡고 그의 어머니의 집에 갔고, 식사를 했고,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시어머니라는 의식 자체가 없는 분이었다. 일사천리로 다니엘 집안의 가족들이 스륵 스쳤다가 스르륵 지나갔다. 속에 응어리져 있던 매듭 같은 뭉치들이 하나씩 툭툭 풀어져 나갔다.


  "나이 들어 보인단 말 듣지 마라."

   새시어머니가 내민 봉투에는 마사지샵과 스파, 골프까지 진행할 수 있는 회원권이 들어 있었다. 다니엘과 나는 매일 마사지 샵에서 피부관리를 받았고, 허브 오일링으로 피부의 감각을 깨웠고, 한 달이 지나자 얼굴뿐 아니라 밝은 기운이 전신에 돌았다. 주변에서는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5주 후 7월 중순에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바닷가를 돌았다.

  다니엘이 컨버터블을 빌려왔고,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레돈도에서 산타모니카까지 서해안 바닷가를 일주하며 사람들 사이를 질주했다. 꿈꾸어 오던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이라는 걸 느낄 틈도 없이 즐거웠다. 즐거움이 있다면 그 자체일 것 같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살려고 세상에 나온 것이라는, 삶이 마주해야 할 필연적 귀결, 더할 나위 없다는 그런 하루하루였다.  

  하루는 10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리무진이 집 앞에 나타났고, 달리는 리무진  안에서 전날 선택한 옷들이 걸린 옷걸이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레이스 달린 드레시한 옷에서부터 캐주얼한 청바지, 비키니까지 세팅되어 있었다. 다니엘과 함께 다닌 결과물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서프라이즈로 현장에 나타났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능력에 감탄했고, 즐거움에 어쩔 줄 모르는 소녀, 어린 신부가 된 느낌으로 가득했다. 사람에게 매일 이렇게 재미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날 수 있는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나는 겪고 있었다. 밤이 되면 그의 품에 안겨 울었다.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간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돌아왔고, 아이들이 증인이 되어 신고서에 사인했고, 다니엘의 미국 친구 둘이 달려왔다. 그리고 날짜를 잡았고,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는 독립투사처럼 감격에 젖어 언덕 위 조용한 교회에서 성혼했다.

  가슴이 온통 레이스와 서브다이아로 장식된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까맣게 태운 어깨를 드러낸 나는 머리를 뒤로 묶어 망에 넣고 거기에 샤넬 필을 꽂았다. 다니엘이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베토벤의 세레나데 아델라이드를 불렀고 나는 민트와 화이트로 장식한 부캐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노래는 슬프지만 감미로웠고, 그의 음성과 눈빛, 손가락 끝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의 선율은 온통 사랑으로 가득했다.

  결혼 식 사진에는 나와 두 아이가 있었고, 미국 생활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 병원 직원들이 참석해 주었다. 그런대로 십여 명의 하객들에 둘러 싸여 나는 공식적으로 다니엘의 아내가 되었다. 다니엘의 가족들도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까지 대거 참석했고, 특히 앤젤리나와 그의 아버지가 와 주었다. 놀라웠던 것은 그들의 뒤에 2미터의 남자, 앤젤리나의 현남편까지 서있었던 것이다. 그들 가운데에서 앤젤리나는 내게 오키드가 튤립으로 둘러싸인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전처와 전처의 아버지가 축하해 주는 결혼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이제 전남편이 된 철호 역시 이렇게 내게 남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미움과 증오로 변한다는 것은 잘못된 사랑을 했다는 뜻이었다. 사랑은 절대 미움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투정이거나, 내가 소외되었다는 데서 오는 시기와 질투, 사랑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선택게임이 아니었다. 선택되지 않고 남아 있는 나머지 하나가 분노나 배신, 그로 인한 복수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 자체로 온전히 완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감정들을 포용하고 인정하며 안고 갈 수 있는 숭고한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우린 여러 남자가 남편이에요.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예요."  


  앤젤리나가 내 귀에 바짝 대고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피로연 장소는 교회에 달린 큰 홀이었다. 신나는 음악이 흘렀고, 테이블 위엔 음식과 음료, 술들이 늘어섰다. 가운데를 비워두고 벽 쪽으로 테이블을 둘러놓고 하객들이 앉을자리를 놓았고, 본당에서 건너온 다니엘과 인사하며 돌아다녔다.

  분위기는 흥겨웠고 모두가 중앙으로 나와 춤을 추며 몸을 흔들었다. 신랑친구들이 다니엘에게 달려들어 한국식 결혼식을 해야 한다며 신랑을 바닥에 넘어트렸고 어디서 들고 왔는지 야구배트로 다니엘의 발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이 너무 웃겨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행위 자체가 웃긴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은 신부 쪽 식구들이 하는 행동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의자를 중앙에 놓고 나에게 앉으라고 권했고,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이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예복이 헝클어진 다니엘이 다시 매무새를 고치고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친구들이 맥주잔을 가져왔고, 거기에 맥주와 위스키를 넘치도록 부어 다니엘에게 넘겼다. 연거푸 그렇게 세잔을 마신 다니엘은 웨딩드레스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입으로 잘 물 수 있도록 웨딩가터를 묶은 오른쪽 다리를 바깥쪽으로 벌려주었다. 그의 머리가 다리를 타고 올라 가랑이 사이로 올라왔을 때, 나는 과감하게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끌어안았고, 그는 두 손으로 내 허벅지를 힘주어 잡고 버텼다.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놀랐고, 버텼던 두 손을 풀어 내 허리와 엉덩이를 감쌌다. 친구들이 큰소리로 야유했고 장난스럽게 다니엘의 머리를 건드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의 두 팔은 친구들에 의해 등뒤로 돌려졌고, 다니엘은 머리를 숙인 채 허벅지를 핥았다. 나는 등받이로 등을 물리며 그의 친구들을 향해 콧소리를 내주었다.


  "다니엘이 좀 하거든요..."


   다니엘이 웨딩가트를 물어 끌어내렸고, 나는 다리를 들어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얼굴이 벌겋게 변한 다니엘의 입에서 한 친구가 가터를 빼앗아 들고 환호했다. 다시 홀은 음악소리가 커졌고, 사람들은 환호하며 춤추며 홀을 돌았다.


  "나 지금 어떤 줄 알아, 응? 미치겠어..."


  다니엘이 나를 감싸 안으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가 내 손을 잡아끌었고 우린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핑계를 대고 피로연장을 빠져나와 신혼여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교회뒤 주차장에 세워진  리무진 안으로 들어갔다. 다니엘은 나를 밀어넣고 드레스 자락을 걷어올렸고, 벨트를 풀어내며 내 위로 올라왔다. 나는 다니엘의 셔츠에서 단추가 끌러지자 소매를 잡아당겨주었다. 허리 아래로 그의 바지가 내려갔고, 곧바로 그는 내게로 들어왔다. 나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가 내 위에서 움직였고, 그럴 때마다 흔들리는 내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다리를 활짝 치켜들어 힐 끝을 앞좌석의 헤드드레서에 꽂았고 한쪽 발을 뻗어 그의 뒤쪽 문에 힐을 찍었다.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들으며 그의 얼굴에 내 얼굴을 비비며, 그의 귓볼을 입에 문 채, 내 목소리를 그의 귓속으로 흘려 넣었다.


  "다니엘, 널 만나려고, 나, 여기까지... 왔나 봐."


  눈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 속에 있는 내 얼굴이  였을 뿐, 리무진 기사가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도 시야 밖이었다. 그를 안고 고개를 뒤채며 숨을 몰아쉬었다. 격하게 변하는 그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 그의 어깨 뒤로 파티션의 유리가 진동음을 감춘 채 스르륵 소리없이 올라갔다. 뒷좌석이 잠기며 공기가 밀폐되자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가슴 한복판에서부터 떨리기 기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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