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지 않는 혜연의 번호 아래 그녀의 집전화가 보였고, 나는 무작정 그 번호를 찍었다.
혜연의 남편이었다. 끊고 또 걸었다. 딸이었다. 그들의 다급해 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마치 밀폐된 어두운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 그녀의 가족에게 나는 그런 존재였던 것임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현실화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사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언젠가 끝나고야 만다는 분명한 사실과 같은 것이었다. 이렇듯 무엇이 엄연한 현실인가의 문제에서, 가장 큰 현실은 사라짐이었다. 그것은 죽음의 다른 말이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시간에 맞춰 사라져 갈 것들이었다. 그 한가운데 내가 서 있었고, 나조차도 사라짐과 동시에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사라짐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이별은 모든 것을 고장내고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연기의 인과는 한순간 멈춰 서서 또 다른 것을 기다려야한다. 다른 것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의 구멍 속에 나는 방치되어야만 한다.
가는 것들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오는 것 역시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가야할 것은 반드시 가야하고, 와야할 것 역시 반드시 오고야 마는 이 세상에서 나는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시간이 가득 들어차 있어서 빈 데라곤 공기 한 입자도 끼어들 틈이 없는 젤리 덩어리같은 공간이다.
어쩌면 삶의 작은 일부가 아니라 이 세상 전체가 무엇을 기다리는 공간일 수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오지 않는 그 무엇,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오고야 마는 죽음을 기다리는 공동의 장, 산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일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다시 오지 않을 사람이 내게서 떠나가자 다른 사람이 왔다. 왔는가 한 순간 그것도 잠시, 다시 이별로 돌아가버렸다. 나는 다시 시간 속에 던져진 채로 언제 올지 모를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 오지 않는 사람, 오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올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에 더 큰 희망을 품었다. 올 수 없는 사람의 조건에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과 여건,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그것들이 해제되면 올 수 없던 사람도 그제서야 스스로의 뜻만으로 올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생환할 수 없는 것처럼, 한번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와 나 사이에 연결되었던 시간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동반하고 사라진 아버지, 기다릴 필요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정혜, 그리고 기다림 속에 세상이 멈춰버리게 만든 혜연까지 그들은 모두 내게서 사라졌다.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그림이 되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정혜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 정혜를 기다리며 보냈던 커피숍 벽의 연속 무늬들, 둘이 함께 걷던 대학로 길모퉁이들, 처음으로 서로의 벗은 몸을 보여주었던 백마장 여관의 밤까지, 서로의 눈 속에서 보았던 얼굴들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강의실에서 봤던 혜연의 파리한 얼굴, 간간히 끊어서 말하던 그녀의 어눌한 말투들, 계단을 함께 내려가며 처음으로 손을 잡아 주었던 그때 고개 숙인 얼굴위로 덮여있던 머리카락들, 뒷골목 찻집에서 핏기없는 손가락 들 사이로 호호 입김을 불며 벗어두었던 그녀의 벙어리 장갑, 함께 차를 타고 떠났던 일주일 간의 남쪽 여행, 해운대에서 통영에서 운주사에서 밤을 새며 그녀가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들, 이런 모든 것들은 산 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오직 살아 있는 자만이 회상하고 추억하며 감정에 사로잡힐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 이 또한 기다림의 시간이 나에게 부여한 소일 방식이었다.
내게 올 것은 무엇인가, 알 지 못 하는 그 어떤 것이 내게 올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 때가 되면 나는 또 작동할 것이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혜연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작별도 하지 못한 채로 그녀를 그대로 가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마트에 가는 10시부터 그녀의 아파트 입구에 차를 대고 기다렸다. 그렇게 띄엄 띄엄 사흘이 지났고,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낯선 여자였다.
"저 잠깐 창 좀..."
여자가 밖에서 창을 내려달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반쯤 창을 내렸다.
"혜연이 찾으시죠?"
낯선 여자의 입에서 헤연의 이름이 나온 것에 놀랍기도하고 반갑기도 했다. 나는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혜연이가 많이 아팠어요. 지금도 괜찮은 건 아니구요."
또래처럼 보이는 여자는 반듯한 얼굴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여자는 나에게 잠시 밖으로 나와 보라고 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그녀 앞으로 갔다.
"저기 좀 보세요."
그녀가 아파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어딜 가리키는지 알 수 없어 여자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았다.
"저기요, 저기 5동이라고 쓴 숫자가 있는 동 보이시죠? 거기 중간쯤 베란다를 보세요."
23층 고층 아파트의 중간 높이쯤 베란다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자가 한 명 보이는 것 같았다.
"쟤가 혜연이에요. 알아보실 수 있겠어요?"
나는 반가움에 큰 눈을 뜨고 여자의 얼굴을 알아내기 위해 골똘히 쳐다보았다. 너무 작은 형체로 사람이 서있다는 정도만 식별되는 거리였다.
"혜연인 알고 있더라구요. 매일 이렇게 여기서 기다리신다고, 저보고 나가보래서 왔어요."
나는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 헤연 쪽을 쳐다보았다. 까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혜연이 미동도 없이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꼼짝 않고 그녀 쪽을 바라 보았다.
"이제 안 오셔도 된대요. 그만 돌아가시라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밝은 성격으로 씩씩했던 혜연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혜연을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울리고, 또 울렸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핸드폰이 수중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자에게 알겠다고 대답하고 차에 탔다. 열린 창문으로 여자가 말했다.
"헤어지는 게 아니래요, 마음 속에 살아있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대요."
"기다리겠다고, 기다릴 수 있을 때까지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 주세요."
핸들을 돌려 방향을 잡았고, 나는 창밖의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함박눈이 소복히 내려 온 세상이 포근했던 그해 겨울이었다. 길건너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혜연과 식사를 했었다. 골목 끝에 단독주택을 개조한 해물탕 집이 있었고, 눈을 털며 자리를 잡고 아구찜을 시켰었다. 문화센터 강의가 폭설로 휴강되면서 혜연 혼자 남아 있던 날이었다. 그녀가 앞장서고 내가 뒤따랐다. 그녀가 사는 동네여서 인도하는대로 그녀 옆에 서서 따라갔던 곳이었다.
사석에서 만나 첫대면 식사자리였는데도 긴장없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잘풀렸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꾸밈없는 웃음과 미소, 고운 말투가 지적이라는 인상까지 주기에 충분했다. 벗어놓은 회색 발목 부츠의 앞코가 눈에 젖어 물이 든 것이 현관에 보였고, 유리로 된 문 밖으로 사람들이 엉금거리며 걸어가는 별세상에 앉아 있는 탓이 컸다. 아이들처럼 눈 속에 파묻혀 기분이 상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은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잦은 웃음과 내려 깐 눈을 잠깐잠깐 치켜 뜨며 내 눈을 마주치며 다시 살짝 미소를 머금는 그녀의 얼굴은 부끄러움과 즐거움이 뒤섞여 그녀 자신도 몸을 어떻게 간수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잘 학습된 몸동작과 수저놀림, 조심스런 식사 예절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센터에서 내차로 이동해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대로에 대충 차를 세워 두었다. 이런 저런 차들이 눈 속에 파묻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골목 안의 풍경이었던 걸 생각하면 지하에 주차되어 있던 차를 빼왔으니 내 차는 깔끔했고 어디에 대 놔도 교통을 방해할 일이 없었다. 상황상 저대로 대 놔도 문제가 없을듯 했다.
"술 한 잔 하실래요?"
"전 술을 못하지만, 치얼스는 할게요."
나는 이미 대리를 부를 각오를 한 터였고, 한잔 두잔 마시다가 그녀 또한 홀짝홀짝 거리며 잔을 비워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소주 세 병을 마시고 말았다. 그런데도 취기가 올라오지 않았고,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자고 가실래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재워주신다면야..."
나는 농담처럼 말을 받았고, 이내 그녀가 응수했다.
"찾으면 어딘들 없겠어요? 성격이 소심? 심장이 쫄보?"
그녀의 말에 서로 깔깔대며 웃었고, 그렇게 또 한잔씩을 들이켰다. 유쾌하고 즐거운 자리였다. 오후 3시쯤 들어갔던 해물탕집을 7시가 넘어서 나왔다. 밖은 벌써 어두웠고, 2월의 겨울밤이었다. 골목은 녹지 않은 눈이 덮인 채로 하얗게 반짝거렸다. 몇몇 집앞에는 주인의 성품을 닮아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눈을 밟다가 시멘트길을 밟다가 하면서 서로 비틀댔다. 혜연이 많이 흔들렸고, 나는 그녀의 팔을 붙잡아주기 시작했다.
"너, 나보다 한 살 어리다고 했지? 누나다, 내가!"
혜연의 혀가 살짝 말렸고, 나는 흠흠 거리면서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었다.
"나, 이래봬도 이대나온 여자야, 이거 왜 이래? 이대 누나~ 해봐! 어서!"
난 연대나온 남자라고 대꾸하며, 그녀를 바짝 끌어안으며 누나라고 불러주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그녀의 집과는 반대편이었다. 혜연은 골목 안으로 자꾸 걸어들어갔고, 어두운 골목길은 끝이 없어 보였다. 갑자기 혜연이 제자리에 우뚝 서며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여기까지 왜 왔는지 알겠지?"
서로 부둥켜 안고 서 있는 우리 둘 앞에 네온 불빛이 알록달록하게 반짝거렸다. 프린스라는 글자가 붉고 노랗게 빛나는 아래 붉은색 온천 표시까지 그림으로 표현한 네온 불빛이 뒷골목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마치 어두운 대기실에서 무대위로 막 올라와 핀조명을 단독으로 받는 연극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품에 안은 혜연을 내려다 봤다.
"왜? 여자가 가자는데, 안 돼? 못 해? 내가, 오늘 너, 꼭 잡아먹고 만다, 진짜로!"
뚝뚝 끊기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혜연은 품에서 풀려나가며 그 자리에 스르륵 꼬꾸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