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한테서 여자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은 큰 애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내가 대치동 학원을 알아보고 다닐 때였다. 주로 일본 중고 기계를 수입해서 국내에 공급하거나, 중국에 소개해서 커미션을 먹는 일을 하던 남편이 동기들과 회사를 차리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던 때와 맞물려 서로 정신없이 분주했다. 성격이 좋았던 남편은 거래처 직원들과도 회식이 잦았고, 원래 다니던 중견기업의 직원들과도 교분이 좋았다. 특히 대금지불은 실적을 올리는 데 주효한 기술로 작용했다. 통행료와 급행료, 그리고 기름칠을 하는데 돈만 한 게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해대던 말이었다.
그리고 법인을 설립했다. 한 기수 위 선배가 총대를 메고, 동기 둘이 부사장을 맡아 하나는 영업을, 하나는 재무를 맡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다니던 회사의 직원들을 대거 영입해서 데려갔다. 인사이동철에 타이밍을 맞춰 회사 측에서는 승진 못한 불만세력이 퇴사한 것으로 합을 맞췄다. 회사 측에서도 잘린 꼬리에 서운해할 이유가 없었고, 신생법인 측에서도 경력자를 채용해서 힘이 되었다.
그렇게 어수선하고 어지러울 때였다. 남편의 호주머니에서 전하번호가 적힌 쪽지가 나왔고, 나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남편에게 넘겨주었다. 세탁하기 전에 주머니의 물건을 수거해서 출근하는 남편에게 건네는 건 오랜 습관이었다.
"경리과 미쓰리네..."
나는 왜 경리과 미쓰리의 전화번호가 남편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는지 묻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자주 있던 출장은 더 자주 다녔고, 중국으로 일본으로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해외로 돌았다. 아이들을 캐어하는 일은 순전히 나의 몫이었고, 아파트 건너 동에 산다는 희경언니와 친해진 것도 그즈음이었다.
"여기 앞동 사시는 분이죠?"
길 건너 이마트 식품매장에서 낯선 여자가 말을 걸었다. 카트를 밀고 나가며 눈웃음으로 인사하며 자주 보던 사람이었던지 낯이 익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기 어린 얼굴을 한 언니는 긴 생머리에 몸에 살이라곤 없는 아주 마른 체형으로 어딘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여자처럼 보였다. 앞으로 카트를 밀고 나가는 나를 여자가 따라왔다.
"저, 잠시, 얘기 좀 나눠요. 학원정보도 괜찮은 거 몇 개 있는데..."
귀가 솔깃했다. 아닌 게 아니라, 큰애 학원 알아보느라 고민되던 시기였다. 형식적으로 첫 인사를 건네며 그러자고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장을 보는 둥 마는 둥 마음이 금세 급했다. 아침 10시,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이었다. 오후로 넘어가면 마트가 붐비기 시작한다. 한숨 자고 난 주부들이 한꺼번에 길을 건너오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피해 미리 장을 보고, 오후 일과를 소일한 후, 아이들 픽업을 해야 했다. 다니던 학원에도 데려다줘야 했고, 그러고 나서 저녁시간을 보내고, 다시 아이들 학원을 돌아야 했다.
"내가 대치동 쪽 논술선생을 아는데, 우리 애는 이미 늦었고, 실력이 알음알음으로 소문난 선생이야."
나보다 세 살이 많은 희경언니는 성남 쪽에서 청소년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상담실을 운영한다고 했다. 학교도 출강하고, 청소년 문제 상담 케이스를 많이 접해, 관련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 학원가 스캔들은 족보를 꿰고 있다고 목소리를 낮추며 눈웃음쳤다.
"여기 커피숍은 눈 귀가 많아, 저기 사장도 말발이 장난 아니거든."
테이블 사이를 천천히 지나고 있는, 윤택한 피부를 가진 고상한 여사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런 말을 목소리까지 낮춰서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번 안면을 튼 후로 아침마다 장을 본다는 핑계로 희경언니를 만나 수다를 떨었다. 언니가 데리고 간 커피숍은 말 그대로 커피만 파는 전문점이었다. 커피와 관련된 각종 도구들이 나무로 짠 선반 칸칸이 들어가 있고, 원두를 담은 유리병들에는 생산지와 날짜 라벨을 붙였고, 생두 샘플과 분쇄가루의 샘플들이 역시 유리병 속에 담겨 시음용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로스팅 자격을 브라질에서 따왔다는 남편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로스팅 실에서 직접 볶아서 신선한 원두와 갓 로스팅된 커피맛을 자랑했고, 특히 그 중 몇 가지 분쇄 커피는 드립만을 고집했다. 거름종이보다, 일본에서 직수입한 융을 써서 커피 맛을 좀 더 부드럽게 하고, 김을 타고 올라오는 향이 머리를 맑게 각성시킨다고 했다. 서빙 카운터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밀실처럼 방이 하나 있었고, 거기서 우린 밀담이라도 나누는 것처럼 서로의 말을 주고받았다.
"근데, 너 거기 논술이 좀 까다롭다더라. 가려 뽑는다는데? 그게, 엄마 수준을 본다는 거야."
"엄마 수준을, 왜?"
"말로는 애들이 머리는 엄말 닮는다면서, 될까 안될까는 엄말 보면 안다네? 좀 웃기잖니?"
"좀, 어이없네."
"내가 다리를 놔줄 테니까, 잘 구워삶아 봐. 들어가기만 하면 백 프로래!"
재밌는 상황이긴 한테, 과장된 줄은 알지만 백프로라는 말에 마음이 기울었다. 어떻게든 끄나풀을 잡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빼앗은 죄책감이 컸기때문이었다. 어느 날 희경언니가 난데 없이 이런 말을 했다.
"너, 신랑 중국 출장 갔다고 하지 않았니?"
"응, 근데 왜?"
"이마트 뒷골목 알지? 연습장 가는 길..."
"응."
"거기서 웬 여자를 태우고 가는 걸 봤지 뭐야?"
"여자를?"
"그렇다니까, 젊은 여자던데? 중국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사진 봐봐."
그러면서 핸드폰 속 사진을 꺼내 보여 줬다. 몇 장이 연속으로 찍힌 핸드폰 사진은 급히 찍었는지 그중 몇 장은 흔들려 있었고, 정확히 초점이 맞은 사진은 틀림없는 남편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기억나지 않는 젊은 여자였다.
"언니, 그 사진 나한테 전송해 봐."
그리고 그날 저녁,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그 사진을 보여줬다.
"아, 미쓰리, 미쓰리잖아. 이런 건 누가 찍었대?"
혀를 차는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인 채, 식탁에 반찬을 꺼내놓으며 나는 대꾸했다.
"꼬리가 길어, 밟히지 마."
순간 남편의 말이 뚝 끊겼고, 갑자기 식탁을 둘러싼 주방이 싸한 찬기운이 돌며 침묵으로 식어내렸다. 밥을 차려준 나는 방으로 들어왔다. 가슴이 뛰었고, 할 말이 없었다. 백 마디 말보다 침묵 속에 느껴지는 진실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부서진 파편들이 조립되기 시작했다. 재조립된 남편의, 뭔지 모를 틈새 속에는 여자가 있었다. 출장 날짜의 전후로 비어 있는 하루 이틀의 시간, 있어야 할 곳과 지금 현재 있는 곳이 달랐다. 그건, 회사에 건 전화 한통으로도 금방 확인가능한 부재중 신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출장간 날의 중간 날짜 쯤에 전화를 걸어 남편과 통화가 안되니 현지 호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한다, 그럼 알 수 없다거나 용케 호텔이름을 알아낸 경우, 알 수없는 경우엔 이런 저런 말끝에 언제 돌아오는지 알려주지 않았으니 돌아오는 날짜라도 알려달라고 하면 되고, 호텔이름을 알아낸 경우 호텔에 출국전날 전화해보면 되는 일이었다.
사람은 참 치사한 측면이 있는 동물이었다. 몰랐을 땐 신뢰라는 이름 하나로 평화로웠던 마음이, 알고 난 후엔 의심이라는 이름 하나로 지옥같은 생활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집요하게 체크하고 확인했다. 경리과의 미쓰리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거래처를 돌아다니며 뿌려 놓은 여자도 몇몇이 있었고, 접대가 있는 날의 새벽엔 어김없이 냄새를 잔뜩 끌어안고 침대위로 쓰러졌다. 어디 흥신소에라도 맡길까보다 하고 생각도 했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이 남편은 흘리는 게 너무 많았다. 비번이 걸려 있지 않은 핸드폰의 사진들은 곧바로 메일로 옮겨놓고 날짜와 장소를 정리했다. 그런 와중에도 뉴페이스가 올라왔다. 한마디로 남편은 학벌좋고 성격좋은 끔찍한 쓰레기였다.
거기에 회사를 차린 결과가 좋아 돈까지 잘 벌게 되면서 승승장구하면서 잘 나가게 되었고, 나는 그렇게 죽 잘 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7월이었는데, 갑자기 통장에 상여금이 억대가 꽂혔다. 그 돈을 나는 모종의 신호로 이해했다. 나는 빠르게 애들을 거두었고, 수속을 밟았다. 캐나다로 갔다. 남편은 즐거운 마음으로 우릴 배웅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행기를 탔다. 딱 일 년 예정이었다. 더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남편과 떨어져 있고 싶었지만, 결국 2년을 채우고 한국에 들어오고 말았다. 그건 갑작스런 유학으로 아이들이 현지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겉돌았기 때문이었다. 작은 애는 그나마 잘 적응하고 있었지만, 큰 앤 이미 다 커버린 듯 현실을 버거워했다. 돌아가자는 말을 자주 하면서 울었다, 내가 아무도 없는 불꺼진 방에서 혼자 울었던 것처럼 큰애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을 더 버티다가 할 수 없이 돌아온 한국이었다. 돌아온 나에게 남은 건, 논술밖에 없었다. 다시 희경언니를 만났다.
"그때 대치동 논술선생, 나 좀 소개해줘."
희경언니의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거기서 논술 선생을 만났다. 그의 집이 근처라고 했고, 둘은 전부터 안면이 있었던 사이로 보였다. 희경언니가 내 온 커피를 마시며 그의 얘기를 들었다.
"괜찮습니다. 아이 상태가 어떤가요? 있는 대로 말씀해보세요."
나는 그대로 말했다. 급하게 유학을 다녀왔고 현지적응이 안 돼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수능준비가 안 되어 있고, 학생부도 공백상태다, 마지막 논술이 생명을 담보한 동아줄 같다, 이걸 꼭 잡고 싶다,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런 요지였다.
"좋습니다. 학원에서 월화수, 목금토는 선택입니다."
"목금토는 어디서?"
"집으로 오시면 됩니다."
"집으로요?"
"예, 제가 이 근처에 삽니다. 그래서 원장님이랑도 자주 보는 사이죠."
"아, 예..."
"목요일에 오실 때는 답지를 들고 오시면 됩니다. 월화는 이론수업이고, 수요일은 쓰기 시간인데 한 타임에 세 시간입니다. 수요일에 마무리 못한 걸, 목요일에 들고 오시면 제가 첨삭을 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한 마디로 목금토는 정식 수업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시간을 짬 내서 봐주겠다는 뜻이었다. 성실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고, 간혹 목요일에 그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때는 전날 수업 때 쓰기를 마무리 짓지 못한 날이었고, 그 다음 날에 아이를 데리고 그의 집을 방문해야 했다. 아래층은 자신의 이름으로 논술연구소 사무실을 운영했고, 거기서 첨삭지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이를 사무실 테이블에 앉히고, 답안을 읽어 보라고 지시한 후에 사무실 뒷벽 쪽으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나를 2층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잠시 여기서 쉬고 계세요. 이층 방 구경하시면서 있을 곳에 계시면 제가 또 올라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혼자 남은 나는 방을 둘러보았다. 책상 하나가 놓였고 그 옆으로 책장 하나에 책이 가득했다. 책상 위로 난 창문을 통해 바깥은 빛이 들어왔고, 언덕 아래 비탈길 사이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모습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전망이 좋은 집이었다. 벽에는 아무 것도 걸리거나 설치된 것도 없었다.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그래서 방문을 열고 나와 옆방을 밀고 들어가 보았다. 침실이었다. 밀폐된 침실, 사방에 창문도 없이 침대와 협탁 하나만 놓여 있는 방이었다. 침대방을 지나 어두운 거실이 있었고, 가운데 화장실이 닫혀 있었다. 화장실 옆으로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길쭉한 모양의 그 방에는 각종 CD와 DVD가 사방 벽을 가득 메웠다. 방의 양쪽 벽면에 내 키만 한 스피커가 있었고, 가운데엔 은빛의 오디오 시스템이 가지런하게 일렬로 들어차 있었다. 방 한가운데엔 다리를 올려놓을 수 있는 받침과 함께 안락의자가 놓였고, 나는 금방 그 자리에 앉아 보았다. 몸을 돌리면 금방이라도 빙글 돌아가버릴 것 같았다. 편안하고 푹신한 가죽 질감이 몸을 감쌌다.
나는 세 개의 방 중에서 어디가 좋을지 생각했다. 주인이 있으라고 알려준 방은 책상 하나 책꽂이 하나가 전부인 삭막한 작은 방이었고, 가운데는 주인만 들어갈 수 있는 침실이었고, 그리고 이방은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공용의 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기다림의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안락의자에 누워 편히 쉬고도 싶었다.
눈을 감는 순간, 남편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로 인해 캐나다로 떠났던 일까지, 희경언니의 말에 의하면 내가 캐나다로 떠나고 난 사이 남편은 미쓰리를 아예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살았다고 했다. 출퇴근을 같이 했고, 근처 유원지에서 목격한 이야기가 떠돌았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졌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던 듯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등지고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캐나다에서 돌아왔을 때는 아무 것도 해결되어 있지 않았고, 오히려 혹 같은 것을 매달고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말하기 시작하면 터질 것 같은 고름덩어리를 남편은 여전히 한가득 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첫 번째 방으로 가서 역시 문을 닫아두었다.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겉옷을 협탁 위에 한겹씩 벗어두고, 그 위에 스타킹을 말아서 올렸다. 가벼운 속옷차림이 되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누워서 바라본 열린 문틈으로 맞은편 벽이 보였다. 희미한 빛이 스며든 거실 벽에 걸린 그림은 클림트의 연작 시리즈처럼 보였다. 가운데 그림은 유명한 '키스'였고, 좌우의 작품은 유디트의 얼굴이었다. 세 장의 그림이 가로로 길게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그 그림의 하단부분이 액자에 마저 들어 있었다. 원래 세 장이었던 그림을 하나로 편집했고, 다시 그것을 위 아래로 2등분해서 각각 두개의 의자로 나눈 듯했다.
반쯤 감은 눈을 한 아름다운 여인의 몽환적인 키스에서 시작한 그 그림은, 여자가 잘라버린 흙빛을 한 남자의 얼굴이 하단에 감추어져 있는 섬뜩한 그림이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의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가며 반쯤 감기는 듯 했다. 적장의 목을 베고 쓰러져 가는 민족을 살린 여자의 눈이었다. 이런 일 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일상의 대범한 눈빛, 머리카락을 거머쥔 손가락들 사이사이의 힘줄이 빳빳하게 굳어갔다. 나는 손을 뻗어 내 목을 감쌌다. 그 손으로 천천히, 한마리 뱀이 내 몸을 칭칭 감아 또아리를 트는 것처럼 숨통을 조였다.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을까. 계단을 밟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었고, 발소리가 침실을 지나 거실로 향해갔다가 다시 발소리가 침실 앞에서 멈췄을 때 열린 방문 사이로 소리 없이 누군가 들어왔고, 그가 아니어도, 그여도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이 되어 있었다. 거기는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과 단절된 분리 공간이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방안은 온통 칠흑으로 변했다. 어떤 것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 남자의 침실에서, 낯선 무게가 내 옆으로 들어왔고, 남자 한 명의 무게가 내 몸을 타고 올라왔을 때 나는 그를 받아 안았다. 어둠 속에서 작고 은밀한 움직임이 시작되자 밖에서 피아노 소리가 방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다. 그 소리는 잔잔하게 시작해서 격정적으로 변했다가, 건반을 난무하는 열개의 손가락들이 제 각각의 춤을 추는 것처럼 음계들이 혼란스러웠고, 질서 없이 어지러웠으며, 마구 두들겨대는 불협화한 소리들로 나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혼동과 불안이 지배하는 우주가 어디서 어떻게 찰나의 조화를 만들어내는지 순간 순간 깨어나는 감각들로 진저리치는 몸짓으로, 나는 몸서리쳤다.
그의 머리카락을 거머쥔 다섯개의 손가락 끝이 더 세게 그의 머리를 눌러 쥐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내 눈이 반쯤 열린 것인지, 나머지 반쯤을 닫은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너무도 완벽한 어둠 속에서,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긴 유영을 하는 진공의 우주 안에서 나의 떨림은 내 속에서만 울려 소용돌이치는, 단 한번도 촉각되지 않았던 그런 파동이 내 몸 속 구석구석으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