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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Nov 25. 2024

고백적 글쓰기

  전업작가의 길은 험난했다. 일단 그 길은 철호가 배우고 가르친 이론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많은 경험이 글을 쓰게 하지도 못했다. 우연히 들른 코엑스의 한 북페어가 철호에게 실마리 되었다.


  "그럼 종이책을 읽지 않는단 이야긴가요?"

  "종이책과 디지털 북이 서로 기능을 다르게 할 거라 보는 거죠."

  "조류는 디지털로 넘어간다?"

  "예, 저희는 그렇게 봅니다. 시간을 얼마나 단축시킬지가 의문이지만, 조만간 그렇게 되리라 보거든요. 지금 중견, 원로들도 빠른 분들은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 중이신 분들도 계시고, 아예 전자책으로 발간을 해보자고 도전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형편입니다."

  

  철호의 관심은 전자책이 가지는 접근성에 있었다. 일단 익명성을 보장하고, 아무나 발간 가능하다는 데에는 쉽게 도전해 볼 가치가 있어 보였다. 이걸로 생활을 할 수는 없겠지만, 입지는 쌓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서는 듯했다.


  "실장님, 그러면 아무나 작가신청을 해서 글을 쓰면, 정말 아무 거나 실어주는 건가요?"

  "거의 그렇게 가겠다고 선언을 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저도 대형출판사, 서점에 있어 봐서 돌아가는 형편을 조금 아는데요, 불황이 길어요. 마진 문제는 고사하고 안 팔리고, 창고에 재고는 누적되어 가는걸요. 유지비는커녕 먹고 죽을 잔고도 없어요. 전 이쪽이 탈출구라 보고 그냥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어요."


  출판업계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철호가 생각한 것은 판매로 생활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고, 문명을 날리는 명예도 아니었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오직 한 가지는 정혜에 대한 복수, 복수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앙갚음 정도의 원풀이였다. 어떻게 정혜에게 치욕을 느끼게 할지, 적절한 수위의 방법을 물색 중이었던 것이다.

  무작정 미국으로 날아가볼까, 거기서 방법을 찾아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자면 일정기간의 생활을 버려야 했고, 돌아올 수 없는 비행기를 탈 수도 있을 거란 막다른 생각에까지 미치자, 일단 해당 플랜의 페이지를 접어 두었다. 그리고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 시간들이 흐르면서, 정혜의 마음을 움직인 그놈은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정혜의 옷을 벗게 했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들이 나눈 몸은 어떤 방식이었을까, 나와 나눈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원색적인 질문들과 호기심들이 연이어 계속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철호의 속을 들끓게 만들었다.      


  "독자는 포인트를 구입하는 거죠. 구입한 포인트로 페이지를 구입해서 책을 보는 겁니다. 회사와 작가가 반반씩 지분을 가져가는 거고, 수익구조는 이북 퍼블리싱과 종이책 퍼블리싱을 통해 재창출됩니다. 최대한 수익이 나올 수 있게 회사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만 회사도 살아남게 되는 거죠. 수많은 작가들이 이 플랫폼을 거쳐갈 거예요. 하지만 회사는 여기에 그대로 남아야 해요. 작가의 생명보다 당연히 회사의 생명이 전제되어야 하는 생존게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정말 아무거나 써도 되나 하는 겁니다. 심의에 걸릴만한 내용을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예를 들면 정치, 사상 관련한 금기들을 쓴다든가..."


  철호는 말을 돌렸다.


  "지금이 예전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독재정권시절이 아니잖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 그런 거 잘 몰라요. 관심이 없어요. 그저 달달하고 감수성 예민한 관계중심의 그런 장르물들이 인기가 있고, 잘 팔려요. 장길산 태백산맥의 시대가 아닌 걸요."

  "그럼, 성묘사의 수위 같은 게 있을 텐데요."

  "혐오스럽다거나, 범죄, 도착 등의 비정상적인 묘사를 제외하곤 다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체 흐름에서 성묘사가 70프로를 넘어간다거나 하면, 저희들이 자체 심의를 가해서 경고를 하긴 합니다."


  순간, 철호는 혜연의 말이 떠올랐다.


  '내 이야기를 가져다 써, 실명만 거론하지 말고.'


  그래, 이거야,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소심하지만, 맘껏 처리할 수 있는 것, 있었던 사실 그대로의 치부를 더도 덜도 말고 딱 있는 그대로를 써보는 것이었다. 무엇이 될지는 철호도 알 수 없었지만 그의 구미를 당기는 작업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철호는 실장의 명함을 한 장 받아 들고 대단히 고무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방향과 어쩌면 잘 맞을 수도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님도 보고, 잘하면 뽕도 딸 수 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설레기까지 했다.

  집에서 접속한  웹소설의 세계는 그저 그런 연애담들의 집합소처럼 보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독자수가 2만을 넘어갔다.  1회독으로 얻는 수익은 회사와 작가가 반을 나눈다고 했고, 1독에 50원이 떨어져도 만 명을 곱하면 50만 원이었다. 2만을 넘어가니 100만 원을 작가가 버는 셈이었다. 그리고 독자는 계속 늘어난다. 철호의 셈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멋진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철호는 연재되고 있는 소설들의 페이지를 넘겼다. 아이들이 써놓은 보잘것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독자들은 그런 이야기에 댓글을 달아 응원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철호가 청소년기에 몰래 읽었던, 각종 연애 수기의 문장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 짜릿함의 정도 역시 아이들 장난 같은 감정선으로, 뭐라 그럴까, 이건 싸구려 축에도 들지 못하는 그저 허접한 상상의 이야기들에 지나지 않았다.

  철호는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작가 ㅈ어보를 기재한 후, 회사에 제출될 시놉시스를 작성해 나갔다. 일종의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내미는 심사서류 같은 형식이라 생각했다. 그럴듯한 미스터리를 섞었다. 그리고 한 여자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려볼 생각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한국에 없는 진짜 포르노 소설을 써볼 작정을 했다. 원색적인, 있는 그대로의 성을 다 드러내 놓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장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것보다 인간을 잘 드러내는 소재는 없다, 숨김없이 쾌락을 추구하는 한 여자의 초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가 만드려고 하는 이야기의 마무리는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그런 종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론이 없는 시작을 철호는 써내려 갔다.

  직업 간호사, 간호사의 일과와 생활 패턴, 이런 것들을 나열하고 설명해 나갔다. 그러면서 외과 집도의와 수술방에서 벌어지는 정사를 시작으로 여주인공 J의 일탈은 시작됐다. 외과의는 자신의 쾌락을 보장받기 위해 수술을 예상보다 일찍 끝내든지, 처음부터 수술시간을 1시간 여유를 두고 잡았다. 외과의는 J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해부학을 강의했다. 자신의 성기를 마취한 외과의는 집도한 칼을 거꾸로 든 칼등으로 자신의 성기와 연결된 해면체와 혈관 피부감각의 조직들을 살 위에 그려가며 수술대 위에 누운 J를 향해 석션을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J는 그의 성기를 입에 물어야 했다.

  철호 스스로 생각해도 자극적이고 원초적 감각으로 가득 찬 엽기적 장면이 곳곳에 드러났다. 일상의 표현으로 감히 넘어갈 수 없는 선을 쉽게 넘었다. 그렇게 3회를 단번에 연재했다. 쉬운 일이었고, 나름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핸드폰으로 확인한 독자의 수가 다음날 오전에 벌써 천명을 넘었고, 하루 만에 이천 명을 돌파했다. 놀라웠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효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철호는 설렜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동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연재는 진행되었고, 10회가 넘어가자, 회사에서 작가 담당이라는 직원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작가님, 연재가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저희 회사가 계약을 하고 싶은데, 의향을 여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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