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야하지 않은 야설
1857년, 구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마담 보바리, 19세기 중엽의 현실에서 획기적인 소설로, 당시 법정으로부터 금서로 지정될 위기에서 탈출한, 사회 미풍양속을 위협하는 불온한 도서가 될 뻔한 소설이다.
청소년기는 눈에 보이는 것, 손 끝에 만져지는 모든 것이 성적 자극이다. 그걸 달리 말하면 생명현상이 가장 왕성할 때란 뜻일 게다. 입생로랑에게도 마찬가지, 그가 중학생 때 그린, 소설의 장면장면에 대한 삽화가 첨부되어 있고 스케치와, 원본을 필사한 장들을 함께 실어 놓은 책이다. 그도 왕성했다는 증거다.
이 책에 실려있는 증거물들은 감동의 흔적들이며, 성적 에너지를 자신의 재능으로 표현한 예술적 결과물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성적 에너지,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왕성했던 리비도가 작용한 결과다.
그동안 이 소설이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왜 30년대부터 지금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을까, 사실 지금 이 소설을 읽어본다면, 기대한 만큼의 흥분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눈만 돌리면 도처에 깔려 있는 자극들이 비교 불가하리만큼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통해 엿볼 수있는 것 중 하나는 재생산의 역사, 다른 말로 하면 모방의 역사다. 보바리는 남편의 성이고 그녀의 이름은 엠마다. 그래서 '엠마뉴엘 부인' 시리즈가 등장했고, 이것은 놀랍고도 우습게도 대한민국에서 '애마' 부인으로 환골한다. 모든 거추장스러운 사회적 의미를 다 떼 버리고 오로지 여성의 '몸' 하나만을 집중탐구하는 영화로 만든 것이다.
재해석이라는 관점도 웃긴 것이-사실 재해석 그 자체가 웃긴 발상인데-어찌 보면 재해석은 왜곡에 가깝다. 현실이라는 조건하에 행해지는 오역 같은 것이라 본다. 당대의 현실 속에 나온 것이 지금까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면 그건 재해석이 아니라 원작의 아우라다. 그래도 재해석이 분분하다면, 그건 다시 써야 할 만큼 다른 이야기들이 축적되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이런 류의 소설을 성애소설이라 이름부를 수 있다면, 한국에서만도 그 역사가 깊다. 각종 야설류의 원조들은 차고 넘친다. 야담이 그렇고, 음담패설이 그렇다. 이런 류와는 다른 본류의 작품들 중에 '반노, 즐거운 사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의 작품들은 모두 법정에 섰던 작품들이고, 작가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빚은 작품도 있다. 작가에게 법정에 선다는 것은 공포가 아닐 수 없다.
무릇 작가는 본질의 심연을 건너는 자여야 한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거기에 내려가 몸을 담그고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할 책무가 있다. 플라톤이 말한 동굴로 돌아온 철학자의 의무 같은 것이다. 공포스럽고 두려울 수있지만 가야할 길을 마다해서는 작가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라고 하지 않던가. 소위 말해 법의 잣대는 누구의 잣대이며 누구를 위한 잣대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간통죄가 없어진 것도 같은 흐름이다. 과감하게 시대가 변해간다. 그 변화는 하나의 인간 개체에 초점을 둔다. 더 이상 집단이 중심에 서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지금 내 눈에, 167년전의 마담 보바리가 시선을 끄는 것은, 사치와 환상에 몰두한 그녀의 일탈행위가 초점이 아니라, 그녀가 음독자살한 이후 사람들이 보여주는 추악하고 비루한 행동들이다. 이들에겐 사자의 명예고 뭐고 없다.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금전적 이득이다. 없었던 빚도 있었다고 청구하는 사람, 밀린 진료비 청구에 거짓으로 응대하는 사람, 밀려드는 청구서들...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의 책임을 면피하며 뻔뻔한 태도를 취하는 철면피들, 그리고 이들의 백그라운드에는 보바리의 일탈을 마치 극장의 무대 위에 올려진 공연을 보듯 쳐다보았던 동네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가 있다. 보바리의 욕망이나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들이나 지극히 사실적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낭만주의 소설이라기보다 사실주의 소설에 가깝다.
한 동네에서, 너 빼고 다 알고 있다는 그 것, 불륜의 세계가 그렇다고 한다. 어디 불륜만 그렇겠는가, 너 빼고 다 알고 있는 현실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언제 등을 돌릴 것인가도 관전 포인트다. 정작 니네들만 모르는, 그것은 불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