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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서사

기억해서 이야기하는 이유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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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보기 드문 명저다.


오카 마리, 60년생으로 이집트에서 유학한 후 교토대 명예교수라고 한다. 여자다.


이 책은 이상한 책이다. 한가지 장르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평론, 소설비평, 그리고 소설원론의 글쓰기 강의가 포함되어 있으며, 궁극으로는 사회와 국가 세계를 돌아보게 하고 비판하고, 어떤 주장에 대해 선전 선동까지 하는 다목적적인 저작물이다.


시작은 이렇다.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기억의 대상은 모두 폭압적 사건들이다. 예를 들면, 사건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일본의 위안부 문제, 작품으로는 발자크의 '아듀', 그레이엄 그린의 '제10의 사나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칠레의 지진', 장 주네의 '샤틸라에서의 4시간', 갓산 카나파니의 '하이파에 돌아와서', 영화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일병 구하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라이프' 등을 망라한다.


이들 서술을 관통하는 단 한가지는 폭력과 기억이다. 역사에서 찾을 수있는 폭력을 예를 들어 그것을 온전히 기억해서 타인에게 전할 수있느냐 하는 문제를 저자는 붙들고 있다. 즉 기억의 온전성을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기억을 말(글)로 하는 것은 애당초의 사건으로부터 한번 두번 더 멀어진 결과를 낳는다. 이렇게 되면 최초 원인이 되었던 그 '사전'은 오역되고 와전되며, 불가역적으로 재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오카 마리가 생각하는 본연이다.


폭력의 당사자는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기억으로 떠오른다는 것 자체가, 시간으로하여금 기억을 묻게 만들고 기억을 자체 정비하여 말로 재현하게 만드는데, 이 순간 말로 재현되지 못한 사실(사건)들은 영원히 기억의 암흑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 소설이 등장한다. 즉 허구가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 글쓰기의 당위성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해설서 역할도 한다. 이 책이 소설이론서로 소개해도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이런 완전하지 못한 말하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왜 말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재현 불가능한 사건을 말해야만 하는 이유는 타인과의 공감, 작자의 표현대로 말하면 분유(分有)에 있다. 분유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연대'다. 수많은 타인들의 분유와 연대가 사건을 사실에 가깝게 가져 가게하고, 재현 불가능한 것들을 되살려 낼 수 있다고 저자는 믿는 듯하다. 결국 이것이 오카 마리의 근본 주장인 셈이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우리와 같이 당하는 족속들은, 몸으로 알고 있는 의식이다. 남성들과는 다르게 왜 여성들은 타인을 대할 때 상호친밀한 교감의 태도를 가지는가 하는 문제를 조금만 생각해봐도,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개미들이 집단을 이루고, 멸치들이 작당을 하여 바다를 쏜살처럼 달리는 일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다, 우리도 그렇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약을 팔 시간이다.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영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의 핵을 알고 싶어하는 청년학도, 신문과 방송 언론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독서, 이책을 꼭 옆에 끼고 3일 밤낮을 정독하라고 권한다. 꼭 읽어 보시라, 성급한 이는 하루만에도 읽을 수있도록 쉽게 쓰여진 현대인의 필독서, 꼭 구입해서 줄그어가며 읽으시라 권한다.


사족을 보태면, 이 저작물에 사용된 일본어적 용어들을 제외한다면 큰 단점 없이 잘 읽힌다. 저자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이것은 이러 저러한 것이 아닐까.'하는 질문 혹은 자기 의문의 문장들은 저자 자신의 겸손한 태도의 발로로 보인다. 이런 문장이 보다 단호한 어투로 바뀐다면 더 잘 읽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닐까'가 너무 많다는 말이다.


-기억(사건)이 인간을 끌고 간다, 그래서 경험(폭력)이 원본이라면, 기억은 사본이 되는 셈… 수 많은 사본들이 모여 원본의 복원에 복무한다, 아무리 최대한 가까이(핍진) 가려고 해도 기억이 그 사건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기억이 상실한 그 여타의 것들이 본질이다, 그것을 재구성해 내는 것이 소설의 임무이고 연대의 효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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