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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논쟁사

뜻밖의 종교논쟁, 할 말이 있다 vs 할 말이 없다

by 별사탕

개신교 사회운동가 함석헌과 가톨릭 신부 윤형중


개요

함석헌(1901.3.13-1989.2.4)이 사상계에 기고한 '할 말이 있다'(1957.3)라는 글은 그의 사상, 종교관, 정치관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특히 자유당 말기 이승만이 3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야당의 장면총리가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바닥 관통상을 당하는 저격을 당했던 점을 미루어 보건대, 야권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 대해 윤형중(1903.4.29-1979) 신부가 '함석헌선생에게 할 말이 있다'라는 글을 기고함으로써 논쟁이 촉발되면서 종교 간 대립으로 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윤형중은 함석헌의 글이 무교양적이고 '삐뚤어진 천주교관'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함석헌에 대해 종교의 탈을 쓴 사회주의자라고 통박하였다.

이에 대해 함석헌은 다시 '할 말이 없다'라는 글을 통해 천주교와 그 신부를 맹렬히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시국에 대한 목소리가 촉발한 함석헌의 목소리가 졸지에 종교논쟁으로 번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할 말이 있다(사상 계, 1957. 3. 함석헌)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에 대해 신랄한 풍유로 글을 시작한다. 정치, 종교, 사회, 교육을 작심하고 욕을 한다. 자신은 대통령도, 종교인도, 교육자 학자도, 예술가도 아니라고 강변한다. 대신에 한 사람이며, 민중이라고 밝힌다. 하나의 풀이라고 외친다.

짓밟히면서 보고 들은 것이 있는 풀이 할 말이 있다는 것. 대한제국 시절의 '감동가' 구절, 벌레도 밞으면 꿈틀, 벌도 다치면 쏘고 죽는다는 구절을 인용하여 민중의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민중의 말속에는 하나님과 역사가 있다. 그래서 민중인 내 말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

억압의 역사 속에서 방관자로 살아온 '너와 나', 제주도와 같은 땅에 사는 민중들은 무표정 일색일색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민중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존에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나 살아 있소 하고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홍경래, 최제우, 전봉준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라도 말을 해야 한다.

뿔 돋은 가톨릭, 외짝조개 같은 신교, 아직도 일제강점기 벼슬아치들, 이북서 지주노릇하던 사람이 대로를 활보한다. 이들은 지난 시대의 화석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매가 말을 전할 대상은 민중 청년들이다. 달마의 9년 무언수행을 중단하여 말을 하게 만든 혜가가 한 행동은 달마의 팔을 자르려고 한 일이었다. 그만큼 간절하고 절실하게 청년들은 팔을 자르는 결심으로 말을 들으러 오라.

'우리는 우리 가슴을 주고받으려 저 푸른 들로 나간다. 저 푸른 바다로 나간다! 나가자, 할 말이 있다!


순박하고 순정한 글이다. 하지만 격하다. 함석헌은 사상계 지면을 통해 소위 청년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독립운동가, 민중운동가이자, 이 글로만 본다면 낭만주의 시인의 격한 감정을 지닌 불세출의 계몽 교육자다.

이글 속에 '낮도깨비 교황'이라는 언급이 한 줄 나온다. 여기에 발끈한 윤형중이 반론을 기고한다. 역시 사상계 5월호.


함석헌성생에게 할 말이 있다.(사상계, 1957.5. 윤형중)

함석헌이 기왕에 쓴 '신세계'의 글과 '사상계' 1월호의 글에 기독교를 비방하는 글을 읽었고, 이번 할 말이 있다를 통해 그 논조가 조금도 변함없음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다.

부유층 유흥객에 대한 무작위 비판, 교육자에 대한 모독의 말들은 일정 부분 그렇다고 양보하더라도 함석헌 혼자만이 옳고 나머지가 다 그르다는 식의 논조는 비판받아 마땅하다.(세례 요한의 입을 빌려 말하는 선지자연하는 태도를 비판해야 할 것이지, 개인을 비판하므로 일신에 대한 공격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명백한 비유적 일갈이지 사실적 논증문이 아니란 것을 놓치고 있는 것.)

함석헌의 가톨릭에 대한 비난은 맹목적 비난에 지나지 않는 함석헌 자신이 스스로 인격적 말살 행위를 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가톨릭에 대한 공격을 최남선의 '나는 왜 가톨릭에로 전향하였는가'라는 글로 방패막이를 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소련의 유리 라스도볼로프의 증언에 의하면 비밀경찰을 러시아 정교회에 침투시켜 사제가 되었다고 하였는데, 함석헌의 글에서 천당지옥을 믿지 않는다, 개신교 가톨릭을 물론하고 하괴적 태도로 일관, 이리 같은 압박자들이 맘 놓고 해 먹도록 해준다, 노동자의 피를 빤다, 권력 없는 자의 소득을 부정하게 빼앗아 상층계급에게 준다, 미국의 원조 사이에 선 약탈자, 이런 운운은 모두 공산주의자의 언변이라고 몰아세운다. 이는 함석헌을 복음서를 든 공산주의자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있지도 않은 턴당 지옥' 언급에 항의문을 쓰게 된 직접적 동기라고 밝히고, 차후 그 종교적 논쟁 지면을 내주면 기꺼이 응하겠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일면, 함석헌의 진의에서 벗어난 옹색한 지적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나름 모욕당한 자의 불편한 심경을 적절히 잘 표현한 면도 보인다. 한국청년들에게 고함이, 한국 가톨릭을 욕하지 마라로 변질되면서, 사상검증 논쟁으로 비화될 위험까지 안고 있는 글을 기고한 셈이다.


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사상계, 1957.6. 함석헌)

달을 보고 짖는 청삽사리 홍삽사리 운운, 낮도깨비 교황에게 인간의 자존을 빼앗겨 버린 신부에게 할 말이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민초들에게 묻는다. '내가 정말 못할 말을 했나? 내가 그대들을 속였나?' 만약에 그렇다면 '그대들의 손에 죽고, 그 시체가 가루가 되어도 좋다'고 날을 세운다.

1956년 1월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글을 사상계에 기고했다. 그것은 그래도 이 땅에 믿을만한 사람들이 기독교인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윤형중이 9월 '신세계'지에 반박글을 올렸다. 가톨릭에 대한 변호였다. 나는 놀라 반박글을 써달라는 잡지사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그러던 차, 3월호에 글을 올리게 되었는데, 제목도 잡지사에서 정하고 중요 내용도 삭제당한 채로 상재되었다. 그런데 뜻밖에 윤형중이 약하게 변해버린 내 글을 보고 분을 느낀 것 같다. 윤신부는 평민의식을 가진 사람인가, 특권의식을 가진 사람인가?

윤형중에게 할 말이 없는 이유는 토론 싸움이라는 것에 아무런 이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대놓고 윤형중을 비판한다. 당신은 닫힌 사람이다. 닫힌 체계 속에 있는 자기 세계가 고정되어 있는 사람으로 나와는 길이 다른 사람이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민중에게 말하는 형식으로(이것이 처음부터 함석헌 말의 정곡점이다.) 윤형중에게 직설한다. 간접적인 직설이다. 싸움하지 않는다면서 싸움을 한다. 정말 끝까지 할 말을 다하는 함석헌이다. 할 말이 없다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강조어법이다. 하지 않겠다 선언하고 나서 다 해버리는 모순 논법이다.

보수주의자에게는 나가는 민중의 모든 행동이 다 파괴로만 뵈는 법이다.


공산당으로 몰아치는 윤형중에게, 공산당이 쓰는 말을 공산당만 쓰라는 법은 없다, 공산당을 만들어 내는 자가 막스 레닌인지, 자본가와 종교가인지, 공산당은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을 못 본 체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기는 것이라 말한다.

가톨릭의 형성 근원을 밝히고 교회의 물질성 권력 추구성을 비판한다. 사제주의 가톨릭을 반대한다. 가톨릭이야말로 공산당의 제5열이 아닌가.


함석헌 씨의 답변에 답변한다.(사상계, 1957.7. 윤형중)


윤형중의 답변은 함석헌이 가톨릭을 건드린 것에 대한 감정으로 점철된 항변일색이다. 함석헌식으로 말하면 소견이 좁은 것. 우선 호칭부터 선생에서 씨로 추락시켰다.

1. 구구절절 함석헌의 글을 인용하여 토를 달듯 반박한다. 성당과 가톨릭 모욕에 대한 항변이다.

2. 가톨릭의 전략을 정당화하고, 함석헌의 무교회주의에 대한 비판.

3. 무분별증의 발작이다.


이런 식이다.(신부실에 찾아온 수의대생 둘과의 대화)

함선생을 왜 5 열이라고 했나?

아니다, 오열 냄새가 난다고 했다. 함선생은 유아독존 안하무인식이다. 천주교의 헌금은 민중을 착취하는 것이고 함선생의 강연비는 착취가 아닌가?

그리고, 공산당을 무찌를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는 전투적 정신무장을 설파한다. 50년대의 시대정신을 가톨릭에서까지 엿볼 수 있다. 이건 마치 고려, 조선시대의 호국 불교를 보는 듯하다. 사제가 아니라 군인 같은 느낌.


4. 문장의 방점, 단어의 선택을 꼬집는다. 가톨릭의 성모 공경 이유를 밝힌다.


답변의 내용

교회가 생긴 성경적 근거, 이를 바탕으로 가톨릭의 의의를 설명, 서기전부터 있었던 교회의 역사, 교황의 권위, 지옥은 있다 등의 논설을 퍼부으며 한치도 물러남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함석헌은 비난하지 않는다 명시하면서 비난했고, 윤형중은 진의를 버리고 시시콜콜 토를 달듯 하며 민중에게로 도망간다고 함석헌을 비난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들의 논쟁을 쳐다보면 본말이 어긋났고, 어긋난 것을 더 틈을 내어 파고들면서 흠집을 내고 있다. 모든 말싸움은 이런 데서 생긴다. 소위 말해 한국인의 싸움, 그것은 시빗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너 몇 살 먹었어?' '반백이다 어쩔래?' 이런 식으로 싸움의 본은 어디 가고 말단의 말뽄새로 남는 것, 그것이 한국인의 싸움이다. 비판을 하기 위했다면 함석헌식의 직입에 울컥하고 튀어나온 윤석중도 신중하게 '말'을 해야 하고, 뜬구름 잡듯 뭉뚱그린 비난보다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비판이 선행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애석하다.



민주회복국민회의.jpg 74년 11월 27일. 기독교회관, 민주회복국민회의 발족식 (출처:오마이뉴스 22.2.9. 천주교정의구제사제단연구 10화)


함석헌은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집회를 하기로 했던 YMCA가 봉쇄되자 함세웅신부의 주선으로 명동성당으로 집결하게 되는데, 이때 이 둘은 첫 대면을 하며 함박웃음으로 서로 끌어안고 인사한다. 10년 전 비루한 글로 누더기싸움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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