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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의 피크닉

선택된 형식이 숨긴 내용

by 별사탕
이보석 역, 현대문학, 2017.

비간(畢贛) 감독의 '카일리 블루스'를 보고, 그 후속작 '지구 최후의 밤'(Long Day's Journey Into Night, 地球最後的夜晩, 2018)을 봤다. 둘 다 모호한 내용이다. 결국 이 걸 이해하기 위해, 감독 스스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노변의 피크닉'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79년에 타르코프스키감독에 의해 'stalker'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인과관계가 절묘하다. 71년 1월에 집필을 시작해서 그 해 말에 탈고했고, 다음 해에 출간되었는데,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79년의 일이다. 검열당국의 간섭이 심했다는 얘기, 실제로 보리스 스트루가츠키는 검열당국을 '코끼리 같은 존재'라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의 힘으로 옮길 수 없는 덩어리.


형제의 집필이 정부에 의해 탄압을 받았고, 감독 역시 추방당해 서방에서 창작을 하는 신세였으니, 이심전심의 작품이었다고 할 만하다.


작품의 내용은 별 것 없다. 외계인들이 지구에 와서 잠시 머물다 간다. 그 공간은 마치 사차원의 세계와 같은 이질적 공간이다. 지구인들은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주으러 다닌다. 그 지역에 들어가는 일은 생명을 걸어야 한다.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유전병에 시달리는 불가사의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레드릭의 직업이 그 지역에 들어가 흔적을 노획해 오는 일을 하는 스토커다. 그게 다다.


이 이야기가 주는 직접적 교훈은 '나는 내 영혼을 그 누구에게도 팔아 넘긴 적이 없으니까! 그건 내 것, 한 인간의 것이다!'라는 독백에 있다.


오히려 이 저작물의 가치는 작품 외적 현실에 있다. SF물은 검열에서 제외된다는 현실을 파악한 약은 도전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드러내 놓고 외치는 것, 인간의 권리와 주체성, 그것은 타의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권리를 가진다. 기본권, 인권이다.


비간은 그 표현 방식을 이어받고 있다. 자신의 저작물 속에 교묘하게 감추어 넣은 내용을 기괴한 형식으로 제출하는 데서 오는 이득을, 스트루가츠키 형제에게서 본받았다는 얘기다. 우회전략인 셈이다. 머릿말에는 버젓이 SF가 과학이나 신비한 현상을 그리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마치 무슨 SF 주제선언을 하는 듯한 형식을 취한 후에, 그에 걸맞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꾀가 숭악한, 약삭빠른 전략인 셈이다. 그래서 영화의 원제도 노변의 피크닉, ‘노변야찬路邊野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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