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작별할 수 없는 감정
제주 4.3을 가장 디테일하게 쓴 이야기는 현기영이(순이삼촌, 1978)아니라, 김석범의 화산도(김환기 역, 1965-1997)다. 10권짜린데, 부피만큼이나 사건 진척이 속도감이 없어 좀 지루한 감이 있다. 그래도 제주도의 문화 풍습과 당시 상황을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살폈다는 데 탁월한 점이 있다.(김석범은 1925년 오사카 출생 교민으로 제주도에는 해방전 1년 산 경험이 전부이나, 해방이후 일본과의 단교로 밀입국한 제주도민으로부터 4.3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강은?
정심->인선->경하로 연결되는 아픔, 살아있는, 현존하는 고통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것을 한강은 '사랑'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한강은 연구하듯 공부해서 이 글을 썼다. 그래서 서사가 단순하기 그지 없다. 감정을 이미지화하고, 고통의 깊이를 더 했을 뿐, 그래서 감성소설이라고 할 밖에 도리가 없다.
죄다 자기를 고통이라는 감정 속에 가두어 버렸다. 소설가 주인공 '경하'는 도대체 왜 유서를 쓰고 있는지, 그래서 경하가 맞이하는 것은 죽음 속에서 느끼는 생명의 불꽃이란 말인지, 와 닿는 것이 안 보인다. 뼈대를 만들어 놓고, 살은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임금님의 옷을 입혀 놓은 듯하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감정은 풍부한...
(2023. 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