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공유하고 있는 불안은 이런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 행복이 어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깨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파탄의 조건을 안고 살아가는 현실에 초래할 미래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우리는 매년 정월이면 토정비결을 보고, 남자의 사주와 함께 그해의 운수가 어떻게 서로 얽히게 되는지를 점쳐 보는 것으로 액막이를 하는 것이다. 불행에 대항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헌신적이고 과학적인 예방법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남편을 포함해서 시댁의 대소사에도 정성을 다 하게 된 것도 하룻밤의 남자로 인한 부채의식애서이거나,지속적으로 관계해 온 남자들이 준 행복에 대한 반대급부 쯤으로 수용했다. 결국 현재의 삶을 더 반짝이게 만들어 준, 나를 드러낼 수 없었던 지난 삶의 보상쯤으로 치부했던 남자의 일이 일상에 정착되면서 처음 느꼈던 낯선 충격과 죄책감이 불러오는 불안에서 일정 부분 비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불안이 불러오는 떨림에 자신들이 끌려가는 쪽을 선택했고, 그 속에 한껏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으로 현실을 받아들여버린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도덕적 죄의식으로부터도 또한 멀어졌다. 그건 우리가 감춰놓고 들춰지거나 발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장치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만이 가지는 비밀의 단계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비밀이라는 프렌드십이 생겨난 것, 그래서 동창회는 중단없이 계속 이어져 왔고, 그래서 친목을 이유로 부정기적인 여행계획을 잡을 수도 있었다. 약자들의 무기는 언제나 연대였다.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데 밝았고 능통하게 된 것이다. 더할 수 없는 만족과 안정을 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어 왔던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지금을 사는 것이 대다수 여성의 일상일 것이라 생각했다. 각자 그들의 주변에서 웃고 떠들며 주워듣는 남자와 여자들의 연애사는 상상외로 캐주얼화 되어 있었다. 자신이 속한 연령대별로 온오프의 각종 사회관계망이 존재했고, 서로의 프로필을 확인한 후 몇마디 주고 받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면서 처음 본 사람들에게 서로의 필요를 주고받기 위해 자신을 한번쯤은 오픈하는 그런 사회가 된 것, 그것도 점점 나이가 내려가는 추세라는 사실이 그들에겐 오히려 더 충격적인 일이었다.
깨진 접시를 원상복구할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전과 같은 접시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은 한번 트이고 열리고 나면, 다시 막히고 닫힐 수는 없는 노릇인 것과 같았다. 어떻게 다시 바보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지점이 바로 이들이 살고 있는 지점이었다.
세상은 충분히 개인주의화 되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오픈된 공간에서 나무랄 사람이 어디에도 없는 명색으로나마 존중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된 것에 감사했다. 시스템은 몸의 문제와 직결되어 실행되었던 것이다.
"우린 우리니까, 우리로서 이만큼에서 만족하는 거라 이기야! 각자 남자들 잘 간수하고, 정혜는 또 다음을 기약하자. 그 땐 내가 멋진 파티 계획 세워 놓을 테니까, 세월이 간다, 우리도 곧 50 중반을 넘어간다, 그러다가 60고개 넘는다,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겠냐? 불 켜져 있을 때 많이 보자, 불 꺼지면 코 앞도 안보여."
내가 상기의 전화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영숙이 읊어대는 고별사가 끝나자 모두 함께 일어나 대문까지 나왔고, 엘리베이터에까지 줄줄이 따라 나온 친구들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 얼굴이 완전히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시 또, 어디서 그들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잠정적 이별이었다.
"좀 잤어? 어제 피곤했을텐데..."
차에 타자 상기가 걱정스런 말을 건넸다. 나는 좀 피곤했지만 견딜만했고, 어디로 이동할지 모르지만 차에서 눈을 좀 붙이겠다고 미리 이야기했다. 입에서 맥주 효모의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어디 가려고?"
"응, 좀 같이 갔으면 하는 데가 있어서..."
차는 영동대교쪽으로 턴을 한 후 대교 북단으로 올라갔다. 다시 북쪽 도로로 접어들어 일산 파주방향의 도로에 들어섰다.
"외곽이네?"
"파주에..."
"담배 한 대 줄래?"
상기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여서 몇모금 빨아당긴 후 내게 건넸다. 선루프의 문이 털컥하고 열리면서 차안의 공기가 천장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내가 뿜어낸 연기가 순식간에 밖으로 빨려나갔다.
"내일, 저녁 10시 비행기인 거 알지?"
"응, 그래서 오늘 하루는 온전히 나하고 있어줘야 돼."
"그러려고 하루를 뺐어. 내일은 언니네 가서 식사하고 공항가야지.. 정말 하루도 쉴 날이 없네."
"지금 쉰다고 생각해."
전화가 울렸다. 다니엘이었다.
"자기야, 나야, 다니엘..."
철호와의 일이 데자뷔되면서 상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응, 나 지금 상기랑 같이 있어."
"뎃츠오케이, 달링, 투마로우?"
"응, 그래, 내일."
"데이빗이랑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있다가 오라고."
안부 전화였다. 매일 틈만 나면 전화하던 3년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 떈 연애시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각성하게 만들었다. 연애시절, 그 떨리던 시절 연애, 예측하지 못했던 돌발상황들이 더 불안하고 즐거웠던 순수한 시절의 한 때였다.
"상기랑 인사할래?"
옆에 있던 상기가 먼저 아는 채하며 큰 소리로 떠들었고, 그에 맞게 다니엘이 응답을 하며 미국은 언제오냐 한국은 언제 오냐며 서로를 환대하며 웃었다. 이제 둘은 이면에 숨겨진 관계에서 벗어나 각자의 관계를 인정하고 그 둘만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 둘 사이에 나는 어떤 특별한 감정도 생기지 않는 무덤덤한 상태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여기에 철호를 끼워 넣으면 내 삶의 방향은 성공하는 셈이었다.
전화를 끊고, 간밤에 동창들과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가 계나의 에피소드 어디쯤에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벌판을 달렸고, 또 눈을 뜨니 옆으로 얕은 산들이 스쳐지나는 것이 보였다. 산들의 능선이 붉은 흙이 다 드러났고 그 산의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산에는 키작은 소나무들이 등고선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차가 흔들리며 커브를 돌았고 그렇게 몇번을 돌고 돌았다. 어디 굽은 길을 가는가 보다 하면서 다시 스르륵 눈을 감았다.
"일어나, 다 왔어."
나는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았다. 까만 빛을 내는 새 몇 마리가 산꼭대기를 맴돌았다.
"저기 보이지? 저 나무까지 갈거야."
차에서 내린 나는 놀랐다. 엄마를 묻은 묘지의 10배는 될듯한, 사방 전체가 새로 조성되고 있는 흙이 나대지로 온전히 다 드러나 있는 묘지였다. 이제 막 포크레인으로 산을 깎았는지 민둥산들이 사방을 둘러쳤고 그 중 차를 세운 주차장 옆으로 보이는 산은 정상까지 길게 계단을 만들어 놓고 중간중간에 길을 내고 소나무 전나무를 줄줄이 세워 놓은 모습이었다. 마치 산하나 전체가 전위예술의 퍼포먼스 공연장같단 생각이 들었다.
상기와 나는 나란히 첫계단을 밟으며 위로 올라갔다.
"4년전이었어. 누나한테 못 갔지?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여동생이 차를 샀다고 강원도 모시고 갔던 날이었어. 그렇게 강릉 바다에 한번 가자고 조르셨거든, 그래서 동생이 큰맘 먹고 새차를 샀어. 원래는 나도 같이 가려고 했거든. 근데 회사에 문제가 생겼어. 가면 안 되는 일이, 내가 미국 출장이 잦다고 그래서 사적인 용무를 본다고 감사실에 붙잡힌 거야. 갈 수 없었지. 그날 저녁에 동생 내외랑 어머니가 현장에 바로 돌아가셨대. 전화를 받고 덕분에 내 감사건은 삭제됐어. 여기 이 나무가 어머니고, 이쪽 두 그루는 동생 내외."
잦은 미국 출장은 나 때문이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챈 나는 뒤통수를 얻어 맞는 것 같았다.
"바보야, 왜 말 안 했어?"
"말하면 뭘하겠어? 이미 다 끝난 일인데. 내가 할 수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일이었어."
"바보, 나라도 달려 왔을텐데, 말하지, 말하지 그랬어!"
상기는 크면서 식구들과 소원한 상태로 살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잔잔한 정이라곤 없었고, 차라리 눈에 뵈이 않는 속정이 깊을지언정 겉으로 살갑게 대하고 그런 사이는 아닌 성격이었다. 늘 자신이 고아같다는 말을 수무살 시절때부터 했던 상기였다. 그정도로 그는 자신의 개인 신상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제 진짜 고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어떻게 살려고?"
"뭐 지금처럼 살아야지, 별 거 있겠어?"
덤덤히, 상기가 먼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원래 나로 돌아온거라 생각해."
"원래 너가 뭔데?"
"오랜 생각, 난 누구와도 같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혼자와서 혼자간다, 뭐 이런 생각?"
"그런 생각이 어딨어, 바보야!"
"그게 나야, 늘 혼자였던 나, 이제 그걸 완전히 인정하기로 한 거야. 진짜 혼자가 됐으니까."
팔을 뻗어 상기의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그를 품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그의 강마른 어깨뼈가 내 품으로 들어와 안겼다.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내가 미안해, 상기야, 내가 정말 미안해..."
그의 얼굴이 내 어깨 위로 닿았다. 그리고 내 어깨가 뜨끈해져 왔다. 상기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린 가족같은 모습으로 수목장을 한 일가의 나무 앞에 다 모였다. 그것이 쓸쓸하고 슬픈 일이라면 그렇게 보였을 것이고,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 모습으로 보였다해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따뜻하고 맑은 하늘이 구름 한점 없는 파란색이었다.
"나, 이제 회사같은 거 안 다녀도 돼. 백수야. 유족연금하고 사고 보상을 수억 받았거든. 내가 이렇게 빨리 부자가 될 줄은 나도 몰랐지. 누난 내가 하루 아침에 떼부자가 될 줄 알았어? 그랬다면 우리 서둘러 결혼도 하고 좋았을텐데... 우리 사이가 이렇게 안 됐을텐데, 누나도 그렇고..."
나는 상기의 몸을 끌어안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보다, 그의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더 슬펐던 이유는 나만이 알 수있는 그런 감정때문이었다.
"아이고, 요래 뽀얗고 인형같은 아가 우리 아를 좋아한다꼬? 니가 무신 타고난 복이 많은 갑다."
그의 어머니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내 나이, 스물 두살 때의 목소리였다. 순박하신 분, 자식을 위해 사신분, 그런 그가 사랑한 나, 나를 빼앗긴 현실을 미워한 그, 그와 나 사이에 끼어 있는 불순물은 돈도, 시간도 아니라 그의 앞에 있었던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였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종일 침대에 누워 지냈다. 울다가, 잠들었고, 다시 눈을 뜨면 울었다. 상기가 다가와 그러지 말라고 나를 안았고, 다시 그의 품에 안겨 또 울었다. 배달된 죽을 떠 주는 상기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말했고, 커피가 내앞에 밀려 나올 때도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한 것처럼,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뿐이었다.
"너 눈이 왜 그렇게 부었어?"
현관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언니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밖에서 많이 울어서 그래."
언니는 내 등을 토닥여 안아주며 나를 거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거실엔 모일 수 있는 식구들이 다 모여있었다. 오빠내외, 형부, 조카들, 이제는 부모 세대가 가고 없으니 그 또래와 같은 세대도 자리하기가 힘들었다. 우리끼리만 식사하자는 내 말에 그대로 따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모인 식구들이 언니가 차려놓은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티비를 보며 말을 보탰고, 아이들의 성장을 보며 그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삶은 밀려서 밀려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떠나가는 자와 남아 있는 자, 그리고 새로 떠밀려 들어오는 자들이 서로 순환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각자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일을 우리가 이어받고, 우리들 일을 다시 이들이 이어받으면서 가족의 역사는 계속되어야 했다. 그들이 굳건하게 지키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이었다.
나는 또 하나의 가족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야했다. 그 가족이 아무리 뒤얽힌 관계 속에 탄생했다 하더라도 지켜내야 할 생물학적 본능과 욕망이 내 속 깊은 곳에 존재한다는 것도, 내 남자들을 통해서 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욕망하는 그 어떤 방식에도, 쉽게 동의할 수 없었고 그들이 동행하고자 하는 그 어떤 목적지에도 쉽게 정착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내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저마다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듯 나 또한 내 삶을 꾸려나갈 뿐이다. 조각난 파편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삶이었다. 나는 그저 이 지리멸렬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생활인으로서의 내 일에 충실할 뿐이다. 그렇게 주사 바늘을 돌려 빼내며 뒤를 돌아보면, 나도 몰랐던 삶의 패턴이 생긴 것을 알았다. 결국 생은 돌고 돌아 한가지 패턴으로 정착한 자신만이 고스란히 남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나는 믿었다.
다시 공항에서, 우르르 몰려 나온 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작별했다. 어디선가 이 집안의 김서방, 김철호가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시선을 느끼며, 공항 검색대를 향해 걸어 들어 나갔다. 턱을 바짝 치켜 세우고 나이키의 화신이 되어 다리를 힘차게 앞으로 내밀었다. 힐의 뒷굽이 반질한 돌바닥을 때리며 또각또각 듣기에도 경쾌한 소리를 냈다. 이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 국경을 넘는 일은, 다니엘과 데이비드에게로 가야하는 청량한 내 마음의 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