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라가 급히 핸들을 꺾어 들어간 휴게소는 홍천이었다.
"부사장님 괜찮으세요?"
마영길은 뜨거운 어떤 것이 심장을 누르는 것 같았다. 박동이 불규칙하게 변하면서 쿵쿵대는 심장 소리가 귀안에서부터 들리는 듯했다.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린 박유라의 손등에 손가락을 올려놓으며 괜찮다는 시늉으로 톡톡 쳐 주었다.
"말 시키지 말고,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가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면서 혈관을 타고 넘어가는 핏덩이가 멈추어선 것인지, 아니면 덩어리째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한 순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지곤 했다. 술을 마신 후면 자주 이런 증상이 있었던 마영길이었다.
노면 사전 스캔 시스템으로 에어매틱 서스펜션 기술을 업그레이드해서 잔 속에 담긴 와인을 흔들림 없이 마실 수 있다는 S-클래스 벤츠가 휴게소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담배 한 대 줘봐."
박유라가 콘솔에 담긴 호프 한 개비를 꺼내 입으로 가져가 불을 붙였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의 필터를 마영길 쪽으로 뒤집에 건네주자, 마영길이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깊게 들이마신 연기을 천천히 내뱉으며 마영길은 입을 열었다.
"예상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아."
"댁에 무슨 일이 있으시대요?"
"응, 딸문제가..."
"이제 사모님은 괜찮으신가 봐요?"
"응, 그건 뭐 늘 그렇지 뭐..."
"근데 따님이 왜?"
"글쎄 안 좋은 촉이야. 기분 나쁜... "
박유라는 앞부분만 살짝 열리도록 선루프 버튼을 눌렀다. 마영길이 개인 에스코트용이라며 박유라에게 사준 차였다. 이렇게 갈아탈 일이 있을 때마다 박유라가 타고 나와 마영길을 태우고 그들의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이동해서 쉬다가 오는 용도였다. 그래서 박유라는 자신의 차보다 더 철저히 관리했다.
"집사람이 남자가 있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잇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잖아요. 오픈된 관계를 선언하셨다고..."
"그렇지, 근데, 그 남자를 민지가 만나고 있다는 거야."
"누굴요? 사모님 애인이었다는 분을 따님이요?"
"그런 거 같아..."
"정말? 그럼 그 남자분은 엄마와 딸을 동시에 만난단 말이에요?"
"동시는 아니고, 정리했다고 해."
"누가 누굴요?"
"집사람이 그 남자를 정리했다고 들었어."
"그런데 이번엔 따님을 만나고 있다?"
"그런가 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죠."
"나도 그러길 바라는데, 그 부분에서 촉이 안 좋다는 거야."
박유라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두 사람이 숨을 내쉴 때마다 차 안은 뿌옇게 연기가 흩어졌고, 박유라는 선루프를 더 활짝 열어야 했다.
"민지한테 전화 넣어봐."
박유라는 연기가 타오르는 담배를 손가락사이에 끼고 터치 스크린을 조작했다. 신호음이 울리자 박유라는 침묵을 유지했고 마영길은 입술에서 담배를 떼어냈다.
"응, 아빠..."
졸린 목소리였다.
"왜, 내가 깨웠니?"
"아냐, 좀 잤나 봐. 피곤해서."
"집이구나?"
"응..."
"여행 잘 갔다 왔고?"
"응, 회사복귀했더니 피곤했나 봐."
"그래 별일 없지?"
"무슨 별일이 있으려고? 아빤?"
"응, 아빠도 짬 내서 강원도 좀 갔다 오려고..."
"아, 그랬구나. 혼자 가?"
"아니, 회사 직원이랑. 한 이틀 있다고 오려고 가는 거야."
"그래 아빠도 가끔 쉬어야지. 맛난 거 많이 먹고 푹 쉬다가 와."
"그래, 정호랑도 잘 지내지?"
"응, 다음에 그런 저런 얘기해줄게."
"무슨?"
"그냥 아빠가 궁금해하는 그런 저런 얘기들... 전화로 말하기 곤란한 거 그런 얘기들 있잖아."
"아, 그래 알았어."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통화를 마치자, 마영길은 송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속시원히 터놓고 말하는 사이였지만 길게 말할 수 없는 통화의 특성상 몇 마디 건네 보면 감이 왔다. 딸애가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긴 하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건 숨길 건 숨기고 내보일 건 내보이는 그런 문제들을 내포했다. 언제나 딸이 내미는 카드를 보고 숨긴 카드를 짐작했다. 그런 식으로 마영길은 딸을 보살폈다.
"별일 없어 보이는 목소린데요?"
"그렇긴 하지? 근데 문제가 생긴 건 분명해. 터놓고 말 못 하는 어떤 문제가..."
다시 담배를 피워 문 마영길의 핸드폰에 문자가 떴다. 박소장이었다. 김철호와 마민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짧은 단문이었다.
'마민지라는 젊은 여자는 북토피아라는 웹소설 플랫폼 회사의 MD 겸 창립 이사로 있는 여잡니다. 김철호의 담당 MD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단순 비즈니스 관계일 수 있겠습니다.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워낙에 여자들이, 요일을 달리해서 여자들이 김철호의 집에 드나들고 있어, 그중에 마민지도 그런 부류로 끼어 있는 것으로 오인한 것 같습니다.'
소장의 말에서 앞뒤를 꿸 수 있었다. 마민지도 그런 여자들 중 한 명이다, 그와 같은 부류의 여자들이 아니다. 소장은 아니다 쪽, 즉 비즈니스관계 족에 무게를 두고 있었지만, 마영길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 부류의 여자들 중 한 명일까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마영길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걱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마누라를 남에게 주는 일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사생활 정도와 비교하면 문젯거리도 되지 않는 새발의 피와 같은 일이었으니까. 그건 혜원의 권리쯤으로 정당화해 주어야 자신의 행위 또한 정당화되는 주고받는 거래 같은 관계의 시작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혜연의 남자에 대해서는 속이 오히려 편했다.
그런데, 딸의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마영길이었다. 더구나, 아내의 남자를 딸이 또 만나고 있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박소장한테 전화 넣어봐."
마영길은 박소장에게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신호음이 울리고 박소장이 전화를 받았다.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오히려 늦은 시간에 문자를 드려서 성가시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괜찮아요, 밖입니다."
"마민지는 단순 비즈니스관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 확인 안 된 게 있긴 하지만 좀 더 조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철호가 포항 쪽에 갔다고 했죠?"
"네, 김철호 차에 gps수신기가 그쪽에서 잡혔고, 거제 남해 목포 서해안을 돌아 일주일 만에 귀가했으니까요."
"그때 그 젊은 여자도 함께였어요?"
"그게 사실 불명확합니다. 마민지가 회사에 휴가를 낸 기간과 김철호의 gps가 지방을 순회한 기간이 겹치긴 하지만, 같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어서 그렇습니다."
마영길은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뭣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난 건가요?"
"일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김철호가 쓰는 소설의 내용과 관련해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만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당일 두 사람 사이엔 부적절한 관계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마민지가 적극적으로 김철호를 유혹한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아, 그래요?"
마영길은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순간, 혜연의 말이 겹쳐 들렸다.
'넌 날 채워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줄 아니?'
혜원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렸다. 남녀관계에서 남자의 자존심을 한방에 훅 날려버린 그 말, 잊을 수없는 마영길의 자존심이었다. 그걸 다른 남자에게 뺏겼다는 스크래치가 마영길의 심장에 깊게 긁혀 들어갔던 것이다.
'이 자식은 뭐가 특별한 놈인가?'
마영길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분 나쁜 놈을 넘어 딸에 대해서는 저주받아 마땅할 놈이었다.
"내가 서울 가서 연락하겠소."
마영길은 전화를 끊었다. 착잡한 심정이었다. 자신과 혜연의 문제에 민지의 문제까지 연결되는 이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 제발 민지가 김철호와 엮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했다. 그러기 위해선 민지를 막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 어떤 관계로 발전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관계를 최대한 빨리 막아야 한다. 이게 마영길의 결론이었다. 차를 돌려야 했다. 하지만, 12시를 바라보는 이 시간에 돌아간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가까운 춘천으로 차를 돌렸다가, 내일 저녁 돌아가 민지를 만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춘천으로 가자."
마영길은 호프의 짧은 필터를 잡고 재떨이 눌러 껐다. 이어서 박유라도 자신의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 넣고 뚜껑을 닫았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 지금 이 시간은 기깔나게 즐겁게! 까르페디엠!"
박유라가 '비티에스 다이너마이트'라고 외치자 스피커에서 쿵쿵 음악이 울려 나왔다. 차는 휴게소에서 스스륵 미끄러져 나갔고 박유라의 콧속에서는 음악소리에 맞춰 노래가 흘러나왔다. 열린 천장 위로 밤하늘의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박유라는 고개를 까딱이며 얼굴에 미소가 번져 올랐다.
'Cos ah ak I'm in the stars tonight so watch me bring the fire and set the night a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