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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평전

최하림, 실천문학

by 별사탕 Mar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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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21년에 종로2가에서 태어나 마포구 구수동에서 버스에 받혀 죽었다. 48세. 


병약하게 태어나 솔직한, 외곬수의 성격으로 공부는 잘했으나, 진짜 잘하는 데 가서는 잘하는 게 아닌-고등학교도 선린상고 전수부(야간)에 합격했고- 그래서 수재는 아닌. 인정이 많으나 말수는 적어서, 여린 마음에 많은 여자를 쉽게 좋아했다. 모성애가 필요했던 장남. 위로 난 자식들이 수명이 짧아 후천적 장남이 되었던 셈.

6.25 전쟁중에 강제 지원의 명목으로 인민군에 끌려가 평안도 아래 개천에서 탈출하여 우여곡절 끝에 미군트럭을 얻어타고 서대문으로 직행, 충무로 어머니 집으로 갔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인민군 포로로 분류, 거제도로 수용된다.

4.19를 겪으며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해 몸으로 나아갈 것을 시로 호소함. 즉 사상을 실천하는 각성의 시기를 겪음. 김수영의 사회적 자아가 탄생함. 5.16을 겪으며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시가 나아갈 길을 참여의 입장에서 밀고 나감. 이어령과의 참여시 논쟁으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킴. 


그의 문학적 논평과 시는 그가 쉬지 않고 일생에 걸쳐 수행한 생계수단, 번역작업을 통해 얻어진 문학론이자 시론이라고 보인다. 김수영을 연구할 때 그의 번역작을 살펴봐야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론으로 평단의 선두에 선 것, 과거 그의 어떤 이력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문학공부를 독학으로 했기 때문이다. 


인민군에서 도망친 김수영이 왜 자기집(신혼집이 있는 돈암동)으로 가지 않았는지, 아마도 피난갔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아내 김현경은 시어머니와 나머지 시댁식구들과 안성으로 피난 가고 없었다. 이후 김수영은 거제포로수용소로 잡혀들어가 근 이 년을 생활했고, 그의 가족들은 김수영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찾지 않았다. 김수영이 풀려나 부산에 기거할 때도, 수복되어서 서울로 돌아왔을 때도 김수영은 아내를 찾지 않았고, 그의 식구들에게 아내가 어떻게 됐는지 안부를 묻지 않았다. 김수영은 은연중에 아내를 수소문했고 충격적이게도 선배 이종구와 동거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종구는 김수영이 선린상고 시절부터 알았던 2년 선배다. 또한 김현경의 먼 친척(이복 외삼촌, 즉 남이다.)이다. 일본에서 유학할 때, 동네 친구 고광호의 여동생을 만나러갈 때 대동하고 갔던 사람. 즉, 믿고 의지한 절친이었던 것.


그들이 동거하고 있던 방에 들이닥친 김수영.  김현경, 이종구, 김수영 셋은 모두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김수영은 간단하게 말했다. 

'가자!' 

김현경은 못 간다고 고개를 저었고, 김수영은 혼자서 그 방을 돌아 나와야 했다. 이런 삶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 가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김수영의 어릴 적 사실들에서 출발하여 어째서 풀의 시론까지 나아가게 되는지 그 계기와 변화과정을 풀어 썼다. 그러나, 그 중간 지점, 아이가 어른이 되는 그 중간과정(사상적 성장과정, 학습과정, 문학적 영향관계)이 없이 갑자기 비약되는 감이 있다.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은 거의 여자문제로 애달파하는 모습이 전부다. 언제 어떻게 그의 사상과 시가 싹텄고 성장했는지 정보가 부족하다. 문학과 관련하여 영향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그래서 그의 독학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독학은 번역을 통해서였고, 번역을 통해 익힌 이론들은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고찰할 필요가, 그래서 있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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