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플랭클, 이시형역, 청아출판사

by 별사탕
죽음의 수용소에서.jpg

정신분석학 하면, 프로이트나 융, 아들러 이런 선구자들을 기억하지만, 그들과는 다른 관점의 심리학, 정신분석('학'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의사로서 '치료'에 초첨을 둔 학문이기 때문에 구별함.)을 창시한 이가 프랭클이다.

대학에서 교수들이 프로이트를 언급할 때나 그들의 책을 읽을 때 머리 한 켠에서 커다란 거부감으로 떠올랐던 부분이 무슨, 항문기네, 외디푸스 콤플레스네 하던 용어가 함의하고 있던 내용들이었다. 한마디로 웃기고 자빠졌네, 서양놈들에겐 이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정서하곤 택도 없다, 하던 시절이 있었고, 플랭클이 창시한 제3의 정신과학, 로고테라피를 알게 된 책이다.


대학 때 수강했던 사회학 교수가 하는 말이, 자살하려는 놈이 찾아오면 창문을 열어주고 죽고 싶으면 뛰어내리라고 하면 뛰어내리는 놈 한 명도 없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이 '로고테라피'가 일종의 그런 류다. 불면증 환자가 오면, 잠을 자야지라고 하지 말고 어떡하면 잠을 안 잘까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처방이다.

이건 마치, 군대에서 배운 위병수칙과도 같다. 어둠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할 때에 무엇이 있다는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즉, 그 주변을 살피면 중심이 보인다는 것이다. 반대편을 공략하는 것!

무대공포증이 있는 사람, 대중 앞에서 말을 더듬는 사람 이들에게 내리는 처방이 무대에 올라가서 할 수 있는 최대 범위까지 몸을 떨어보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을 만큼 일부러 말을 더듬어 보라고 처방한다는 것, 이것은 의미치료(로고테라피)의 핵심 사례이다.


프랭클은 놀랍게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정신과의사다. 인간의 특징, 능력에 집행유예망상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속으로 '집행유예를 받을 수도 있다'는 희망(바보 같은 망상)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 나는 이것을 인간의 낙천주의적 세계관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나쁜 상황이 생겨도, 어떤 불의한 세력이 나를 핍박해도 속으론 그 반대의 생각을 바보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기에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랭클이 겪은 아우슈비츠에서의 생활에서 보고 배운 바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죽음의 순간에도 유머와 낙관을 잃지 않았던 인간의 모습이라고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일화가 있다. 범죄행위를 보고도 나 대신 누가 신고하겠지, 괜히 복잡한 일에 엮이기 싫다는 등의 이유로 아무도 신고하지 않는다는 일화, 그것이 거짓된 사실이라는 걸 증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중에 설치된 CCTV를 수십만 개 조사한 결과, 남의 불행에 돕지 않는 사람보다 돕는 사람이 월등히 많다는 것이 실재 화면을 통해 증명되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이 선하며 낙관적인 존재라는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웃으며 수긍하고 공감하며 박수쳐주는 것이 모자라고 바보 같은 짓이 아니란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죽음의 순간에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keyword
이전 03화검은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