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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연인

우산대로 김수영에게 맞은 아내, 김현경

by 별사탕


이 책을 읽어 보고 싶었던 이유는 '김수영평전'을 통해 그의 아내와 이종구의 관계에 대해 읽은 바 있어, 그랬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론 당시 현장에 있었던 그의 아내 김현경의 머릿속은 어땠을까, 하는 것이 궁금해서였다.

가난뱅아이 집안의 장손이었던 감수영과는 달리 김현경은 부잣집 딸이었고, 그의 친척 일가에는 월북 작곡가 김순남(조선의 음악천재 소리를 당시 쇼스타코비치로부터 직접 들었던 사람)이라든가,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의 차중락 같은 이름난 사람들이 있었다.


자, 본론. 6.25 피란시절 김현경은 부산 이종구의 집에 감금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인민군 징발에 끌려가다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당하는 신세가 된 김수영은 그 세월, 일년 6개월 차에 접어든 시기에 이종구의 집에 들이닥쳤고, 가자는 말에 집에 가 있으라는 말을 듣고 다시 결별. 그 후 6개월 뒤 우여곡절 끝에 김현경은 이종구로부터 탈출, 홀로 성북동에 방을 얻어 산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이종구는 김현경의 수양어머니(말이 좋아 수양이지, 아버지의 첩이었다.)의 배다른 아들이니 나이차로 인해 평소 아저씨라고 부르던 사이였다. 그런 그가 김수영을 김현경에게 최초 소개하며 둘이 사귀어 보라고 권유한 당사자였다. 김현경이 15세, 김수영이 21세 때였다. 어쨌든 이종구는 그의 지위를 이용해 김현경을 감금 폭행한 파렴치범인 셈이다. 위력에 의한 성폭행범. 이후 이종구는 방송에 나와 정치평을 하는 유명인이 되었으니 이종구의 삶 또한 파헤쳐 볼 일이다.

왜, 김현경은 김수영의 '가자!'는 말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을까?, 김현경의 글에 '이종구는 집착이 심했고, 김현경을 감시했다'고 써 있다. 즉답을 피한 김현경은 혹시 모를 불상사를 염려한 까닭일까, 그것도 딱히 정답이 아닌 것이 그후 환도 후 6개월을 더 이종구와 살았던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김현경은 김수영을 버린 셈이다.

그리고, 성북동으로 김수영을 불렀고, 둘은 재회한 후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같이 살게 되었다.


이 책은 이 외에도 소중한 증언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김수영의 시들이 어떤 연유에서 쓰였는지 시작의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김수영에 얽힌 단편적인 기억들을 정리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2010년도에 김현경의 증언을 녹취한 자료도 있으니, 그걸 열람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반대편 당사자가 직접 하는 말이 하나가 있고, 평전을 쓴 작가가 하는 말이 있지만, 이 두 말은 뉘앙스의 차이와 입장의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 분명 있다. 중요한 것은 김수영의 말은 없다는 것이다. 대신 그가 쓴 시는 우리에게 남아 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40명 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죄와 벌, 63.10)


내가 죽을 것을 각오해야 남을 죽일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너를 죽이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것은, 내 생명을 무릅쓰지 못했기 때문이고, 급기야 현장에 두고 온 종이우산까지도 아깝게 생각될 정도로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이 사건이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 La strada)'을 보고 나온 직후였으니, 잠파노가 보여주는 젤소미나에 대한 구속과 집착에서 이종구를 떠올렸고, '너는 왜 그의 손아귀로부터 빠져나오지를 못했느냐'는 질책을 담아 '여편네를 때려 눕'히는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현경의 글이 오히려 김수영의 시를 다시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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